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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정치·시사

교권 추락은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의 문제이고 책임이다. | 교권 추락은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교권이 추락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많은 사람은 너무 쉽게 원인을 학생에게서 찾는다. 학생이 예전보다 버릇없어졌고, 참을성이 없어졌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실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이 편하고 쉬울 뿐,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학생은 원인이 아니라

“교권이 추락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많은 사람은 너무 쉽게 원인을 학생에게서 찾는다. 학생이 예전보다 버릇없어졌고, 참을성이 없어졌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실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이 편하고 쉬울 뿐,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지금의 교실을 만든 건 학생이 아니다. 그 구조를 설계하고 유지해 온 어른들이다. 교사, 공교육 시스템, 학부모, 그리고 그 위에서 정책을 만드는 사회 전체가 지금의 현실을 만든 주체다.

학생은 그 구조 안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교권 추락을 학생 탓으로 돌리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작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끝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의 구조 속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맞고 있는 쪽도 학생들이다.

이건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이라고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서울의 학교면 뭔가 다를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원의 밀도와 주변 환경의 차이가 있을 뿐, 시스템 자체의 품질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곧, 매우 뛰어나게 해도 구조적으로 얻는 보상이 크지 않고, 반대로 튀거나 문제를 만들면 손해를 보기 쉽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에서 평균을 넘는 헌신과 실험, 강한 책임감을 지속적으로 기대하는 건 무리다. 개인의 사명감으로 버티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선의에 기대어 돌아가면 안 된다.

결국 지금의 공교육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운이 좋은 것이고,

아니면 감수해야 하는 구조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에서는 필연적으로 사교육이 커진다.

사교육이 성장한 이유를 단지 부모의 불안이나 과열 경쟁 때문이라고만 말하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시장이 공교육보다 더 빠르게 수요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학생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사교육은 즉시 상품을 만들고, 만족도가 떨어지면 도태된다. 경쟁은 품질을 끌어올리고, 생존 압박은 서비스의 밀도를 높인다.

그래서 사교육이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결과다.

누가 더 착해서도 아니고, 누가 더 교육철학이 깊어서도 아니다.

그냥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그렇게 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더 나은 교육이 존재하는데,

그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자본이 불균등하다.

이 지점에서 사회는 자주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한다.

사교육을 줄이자고 하고, 규제하자고 하고, 입시 시장을 억누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좋은 교육에 대한 수요 자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비싼 과외를 붙일 수도 있고, 정보력으로 우회할 수도 있고, 아예 해외 교육으로 빠질 수도 있다.

늘 그렇듯 규제의 빈틈을 가장 잘 활용하는 쪽은 이미 자본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이다.

반대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그나마 제한된 비용으로라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교육 규제는 평등을 만드는 정책이 아니다.

대개는 격차를 없애는 대신, 격차를 덜 보이게 만드는 정책에 가깝다.

표면은 정리되지만, 실제 불평등은 더 음성화되고 더 교묘해진다.

그러니 사회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좋은 교육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좋은 교육이 더 넓게 퍼지게 만드는 일이다.

사교육이 보여준 높은 밀도의 교육 자원, 빠른 피드백, 경쟁을 통한 품질 개선, 맞춤형 접근 같은 요소를 어떻게 더 싸고, 더 넓고, 더 평등하게 공급할 것인가에 있다.

즉,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민주화다.

좋은 교육의 민주화.

돈이 많은 집 아이만 더 좋은 설명을 듣고, 더 정교한 피드백을 받고, 더 높은 밀도의 학습 관리를 받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정”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진짜 공정은 모두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데서 오지 않는다.

위에 있는 질 높은 자원에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하게 만드는 데서 온다.

나는 교권 문제도 결국 이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교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를 학생 개인의 태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존중은 강요해서 생기지 않는다.

신뢰할 수 있는 역할, 의미 있는 기능, 그리고 납득 가능한 품질이 있을 때 형성된다.

지금처럼 공교육이 실질적 신뢰를 잃고, 학부모는 불안하고, 학생은 학교 밖에서 더 중요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느끼는 구조에서는 교권만 따로 세울 수 없다.

교권은 구호로 복원되지 않는다.

교육 시스템 전체의 신뢰가 회복되어야 같이 회복된다.

결국 질문은 단 하나다.

어떻게 하면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교육의 질에서 밀려나지 않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공교육이 최소한 “기본값으로 신뢰 가능한 시스템”이 되게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남는 건 개인의 각자도생뿐이다.

돈이 있는 집은 탈출 경로를 찾고, 없는 집은 체념을 배운다.

그리고 사회는 그 격차를 보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도덕적 언어를 덧칠하게 된다.

하지만 덧칠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그건 어른들이 만든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결국 좋은 교육을 원하는 사람에게 남는 선택지는 점점 단순해진다.

비싸게 버티거나,

아예 떠나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다른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되는 구조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접근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은 문만 열어둔다고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경쟁이 없으면 질은 결국 멈춘다. 잘 가르치는 곳과 못 가르치는 곳이 같은 대우를 받는 구조에서는, 더 잘하려는 동기도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누구나 좋은 교육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안에서는 학교와 교사, 교육기관 사이의 품질 경쟁이 분명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좋은 교육에는 더 큰 보상이 돌아가고, 나쁜 교육은 개선되거나 도태되어야 한다. 그래야 전체 수준이 올라간다.

접근성 없는 경쟁은 교육을 특권으로 만들고,

경쟁 없는 접근성은 교육을 하향 평준화로 끌고 간다.

프랑스 등의 유럽식 교육모델은 이 가운데서도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참고할 만하다.

다만 그 모델 자체를 그대로 답으로 볼 수는 없다. 교육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더 좋은 교육이 살아남는 구조여야 한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4월 9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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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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