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운더 블로그
·7분·에세이

고등학교 자퇴에 관하여 (2024년 작성글)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몇가지 미스테리가 있다. 한가지 미스테리는 17살 때와 18살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임에도 당시의 내가 어떻게 그런 일들을 견뎌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18살 때는 그 연도의 기억이 전혀 없다. 너무 고통스러워서였는지, 아니면 마음을 치료하는 것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 16살,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몇가지 미스테리가 있다.

한가지 미스테리는 17살 때와 18살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임에도 당시의 내가 어떻게 그런 일들을 견뎌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18살 때는 그 연도의 기억이 전혀 없다.

너무 고통스러워서였는지, 아니면 마음을 치료하는 것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16살,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무조건 학교의 기숙사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입을 위한 공부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두번째로는 당시 다소 소란스러웠던 집안의 분위기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7살때, 나는 지방의 한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튼 나는 1년동안 오로지 공부. 오로지 공부만 했다.

내가 해야할 본분은 공부였다. 그리고 나는 의대를 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수학이 약했다.

그래서 수학을 가장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수학 성적 1-1학기 내신 3등급에서,

1-2학기 1등급으로 전교 등수 한자릿수대의 성적으로 1학년을 마무리 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곳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생부가 중요했다.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오로지 공부만 하면 내가 원하는 의과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된 것은 지금 생각하면, 몇몇 학생에게 몰아주기식의 거짓 포장한 교내 활동 교외 활동 이력이 비양심적으로 기록되어있는 근사한 학생부가 정말 필요했다는 사실이었다.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 나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꽤 많은 책임들을 도맡게 되었다. 한번은 교내에서 과학경시대회를 열었다. 나는 당시 마음씨가 정말 착했던 그리고 꽤 친했던 한 친구와 같은 조를 이루어 대회에 참가하려고 했다.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좀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조를 이루는게 어떻겠니.” 그건 분명 나를 위한 말씀이셨다. 그래야 더 능력있는 친구들과 조를 짜서 수상을 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보통의 학교라면 모범생들은 조용히 공부하고,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은 따로 있는 것이 대부분 보통의 학교였다면, 당시 학교 분위기는 희한하게 공부를 잘하고 집도 잘사는 편인 아이들이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심한 패드립과 욕설의 주동자 노릇을 하는 분위기였다. 살레시오고등학교라는 학교였는데 아직까지도 주변 평판이 안좋다고 한다.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같은 조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공부를 잘했던 그 중 한명은 인성에 문제가 매우 많았고, 항상 약한 아이들을 주도적으로 따돌림하거나 괴롭히는 성향이 있었다. 나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나도 따돌림 당할 뻔 한적이 있었기에, 그리고 학기초에 비해 그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면도 있었기에, 나는 그 같은 조를 하면 어떻겠냐는 그제안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나 소심했던 것 같다. 선생님께 그렇게 말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냥 모든 친구들이 미워졌고, 그 학교가 미워졌다. 정말 오랫동안 그날 교무실에서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무렵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모든게 싫어졌다. 솔직히 모든게 무서워졌다. 그리고 약간의 피해망상 같은 것이 생겼다.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 내가 약해진,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주변 친구들도 나에 대해 걱정했다. 한편으로는 모범생이었고 학교에서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있었던 나에 대해 묘한 질투심을 갖고 있었던 아이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내 개인적인 망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학교 자체가 심한 욕이나 패드립이 일상인 분위기였다. 나는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나는 부모님께 정신과 상담을 요청했고, 고등학교는 2학년 봄에 자퇴했다.

나는 18살때, 2016년이 없다. 기억이 정말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나는 거의 1년동안 집에서 잠을 정말 많이 잤고,

여러 상담과 치료를 병행했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정말 힘드셨을 것이다.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했던 아들이 갑자기 그랬기 때문이다.

2017년에 나는 다시 일어서야 했다. 당연히 수능은 봐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검정고시를 보고, 근처 학원에 등록했다.

물론 고1때, 고2 과정 정도까지 선행학습도 스스로 어느정도 했었지만

나는 학업의 맥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2017년, 당시의 혼란한 한국의 정치 상황과 같이, 나의 마음도 안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결국 올림픽 정신으로 수능을 응시했고, 아쉬운 성적을 얻고 말았다.

2018년에는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독학으로, 인강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해 한 해 동안은 공부가 그 자체로 즐거웠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 훈련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그해 11월, 국어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모의고사 성적등으로 자신감이 있었기에, 서울대가 목표였다. 그러려면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맞춰야 했다.

결국 완벽주의에 휩싸인 공부방식과 목표는 나에게 독이 되고 말았다.

결국 1교시에 흔들린 멘탈은 나의 시험 전반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한 한달은 좌절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털고 일어나야 했다.

나는 결국 현실적으로 지방의 한 국립대를 들어갔고, 대학생활을 조금 맛보았다.

하지만 나는 항상 마음속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2019년 7월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대략 5개월 동안 마음을 비우고 공부했다.

그때 독서실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 친구는 지금도 서로 응원해주는 좋은 친구로 있다.

나는 이때 얻은 것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교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나이로 삼수 시절을 함께 고생한

그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나는 꽤 우수한 수능 성적을 얻었고, 혹시 몰라서 시험친 논술시험이 붙어 현재 대학교에 입학했다

여튼 돌이켜보면 10대 20대 초반까지는 정말 고생했다.

그후 대학생활은 코로나로 인해 아쉬운 측면도 있었지만,

그후 한 2년은 후회 안할 정도로 사교적이고 즉흥적이고 원만하게, 정말 즐겁게 보냈다.

대학시절 만난 그 수많은 친구들은 나에게 조금은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잘 모를것이다.

나는 현재의 대학교를 가서 정말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운동도 하고, 나 자신을 가꾸는 법도 익혔다

그리고 2024년,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지금 회계사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다가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를 나름 스스로 찾아보려다가 생각나서다.

이제 마음 다잡고 공부하자.

Daniel

2024. 9. 1. 3:29 ・ 비공개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4.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5월 23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L
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mail protected] 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