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길은 두 개뿐이어선 안 된다
취업과 창업 사이에 사람이 있다 |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길은 두 개뿐이어선 안 된다 취업과 창업 사이에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 밥벌이를 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여겨진다. 하나는 취업, 다른 하나는 창업. 취업하면 근로자가 된다. 창업하면 사업자가 된다. 제도도, 사회적 시선도, 금융도, 보험도, 세금도 대체로 이 두 단어를 중심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그런데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
한국에서 밥벌이를 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여겨진다.
하나는 취업, 다른 하나는 창업.
취업하면 근로자가 된다. 창업하면 사업자가 된다.
제도도, 사회적 시선도, 금융도, 보험도, 세금도 대체로 이 두 단어를 중심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그런데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는 회사에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 누군가는 외주를 받으며 자기 제품을 만든다. 누군가는 프리랜서로 생계를 버티다가 법인을 세운다. 누군가는 창업에 실패한 뒤 다시 취업하려 한다. 누군가는 플랫폼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자기 서비스를 키운다.
이들은 근로자이기도 하고, 사업자이기도 하며, 둘 다 아니기도 하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길은 두 개뿐이어선 안 된다.
취업과 창업이 모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 둘 사이를 오가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한쪽에서 미끄러져도 다른 쪽으로 건너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제도는 그 전환을 너무 비싸게 만든다.
회사를 나오면 보호망이 약해지고, 사업자를 내면 자동으로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커진다. 창업에 실패하면 다시 취업하기 어렵고, 취업하면 다시 창업할 시간과 신용과 자유가 부족하다.
결국 문제는 “취업이냐 창업이냐”가 아니다.
문제는 두 길 사이에 사람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제도는 사람보다 신분을 먼저 본다
한국의 노동·복지·세금·신용 제도는 오랫동안 표준적인 근로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전통적 고용관계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문제는 오늘날의 많은 일이 이 경계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고용보험 역시 기본적으로 “근로자 등과 사업주가 공동 부담하여 마련한 기금”으로 실업 예방, 고용 촉진, 직업능력개발, 실직근로자의 생활안정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제도라고 설명된다. 이 제도의 출발점은 여전히 고용관계와 피보험자격이다. 
물론 한국에 아무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고용24는 자영업자 고용보험을 “사장님 본인에 대한 고용보험”으로 설명한다. 근로자 없이 혼자 사업을 하거나 50인 미만 근로자를 고용한 자영업자는 일정 요건 아래 가입할 수 있다. 폐업하면 실업급여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있다”와 “충분하다”가 다르다는 점이다.
자영업자 고용보험은 자동으로 따라붙는 보호가 아니다. 가입해야 하고, 보험료를 내야 하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고용24에 따르면 자영업자 구직급여는 1년 이상 가입하고 매출액 감소 등의 이유로 폐업한 경우에 지급되며, 기준보수의 60%를 가입기간에 따라 120일에서 210일 동안 지급하는 구조다. 보험료를 체납하거나 수급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지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유의사항도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더 정확한 말은 이것이다.
한국에서 사업자등록을 하는 순간 모든 보호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보호가 자동권리에서 별도 가입, 별도 증명, 별도 요건 충족의 문제로 바뀐다.
이 차이는 크다.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제도 안에 먼저 들어와 있고, 예외적으로 빠진다.
사업자·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바깥에 있고, 스스로 요건을 증명해야 들어간다.
이 구조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기존 분류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솔로 파운더.
프리랜서 개발자.
외주를 받으며 자기 제품을 만드는 사람.
N잡러.
플랫폼 노동자.
개인사업자이지만 사실상 특정 회사에 종속되어 일하는 사람.
근로계약은 없지만 노동시간과 수입을 플랫폼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사람.
법인은 없지만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
사업자는 냈지만 아직 매출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
이들은 모두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시장이 이미 변했다는 증거다.
국제노동기구 ILO는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 사례를 다룬 정책 브리프에서, 코로나19 이후 플랫폼 노동자가 빠르게 늘었고, 이들이 고용상 지위와 행정적 복잡성 때문에 사회보험 보장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이에 대응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플랫폼 노동자에게 확대했고, “노무제공자” 개념과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활용해 플랫폼 사업자가 노무 제공 내역과 소득 자료를 신고·징수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확장해 왔다. 
ILO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좁은 의미 플랫폼 노동자는 2022년 79만 5천 명으로 추정되었고, 넓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자는 2022년 290만 명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 중 고용계약을 체결한 비율은 약 6%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나온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이 문제는 소수의 예외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취업과 창업 사이, 근로자와 사업자 사이, 독립과 종속 사이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제도는 여전히 묻는다.
“너는 근로자인가, 사업자인가?”
“둘 중 하나를 골라라.”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이 취업과 창업 사이를 오갈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유”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취업이 거의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한 번 그 트랙을 벗어난 사람이 다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공백기는 의심받고, 창업 경력은 종종 “왜 회사에 오래 있지 않았나”라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회사는 창업 경험자를 능동적인 사람으로 보기보다 “언젠가 다시 나갈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창업한 사람은 실패했을 때 신용, 현금흐름, 인간관계, 심리적 안정성을 동시에 잃는다. 개인 보증, 미수금, 세금, 임대차, 거래처 채무, 낮아진 신용평가, “사장이었던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남는다. 그 상태에서 다시 취업하려 해도 사회는 그 사람을 안정적인 지원자로 보지 않는다.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실패 이후에 회복할 길이 너무 좁다는 점이다.
좋은 사회라면 사람이 회사에 다니다 창업할 수 있어야 한다.
창업하다 실패하면 다시 취업할 수 있어야 한다.
외주로 버티며 다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회사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다시 조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환의 순간마다 비용이 너무 크다.
고용형태가 바뀔 때마다 보험이 흔들린다.
소득 형태가 바뀔 때마다 세금과 신용이 흔들린다.
사업자등록을 했다는 이유로 대출 심사와 임대차와 소득 증빙이 복잡해진다.
창업 경력은 도전의 증거가 아니라 이탈의 흔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도전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도전할 수 있는 사람만 도전한다.
이미 자산이 있거나, 가족의 지원이 있거나, 실패해도 버틸 여유가 있는 사람만 도전한다.
그 사회에서 창업은 자유가 아니라 특권이 된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보호의 기준이다.
지금의 많은 제도는 고용형태를 먼저 본다.
근로자인가.
사업자인가.
지역가입자인가.
직장가입자인가.
자영업자인가.
노무제공자인가.
예술인인가.
특수고용직인가.
물론 행정은 분류가 필요하다. 제도는 아무 기준 없이 작동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분류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배제하는 문턱이 될 때다.
국민건강보험도 직장가입자,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같은 자격 구조를 갖고 있고,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은 피부양자로 취득 신고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건강보험은 상대적으로 보편성이 강하지만, 보험료 산정과 자격 구조는 여전히 소득과 고용상태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더 직접적으로 고용형태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도 예술인, 노무제공자, 플랫폼 종사자 쪽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 왔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7월부터 노무제공자, 즉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고용보험이 적용된다고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변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왜 사람은 보호받기 위해 먼저 특정한 분류에 들어맞아야 하는가?
왜 일하는 방식이 바뀔 때마다 보호망도 흔들려야 하는가?
왜 제도는 “이 사람이 위험에 처했는가”보다 “이 사람이 어느 신분인가”를 먼저 묻는가?
진짜 필요한 것은 제3의 신분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신분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가는 보호망이다.
오늘은 회사에 다니고, 내일은 개인사업자를 내고, 다음 달에는 외주를 받고, 그다음 달에는 다시 취업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의료, 실업, 산재, 연금, 직업훈련, 재기지원이 매번 끊기거나 약해져서는 안 된다.
사람의 삶은 연속적인데, 제도는 자꾸 끊어 읽는다.
그 간격에서 사람이 다친다.
다른 나라들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 국가는 이 문제를 “근로자냐 사업자냐”의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보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영국에는 employee, worker, self-employed라는 고용상 지위 구분이 있다. GOV.UK는 고용상 지위가 직장에서의 권리와 사용자 책임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worker는 employee만큼 모든 권리를 갖지는 않지만, 완전한 자영업자와도 다르다. 일정한 통제와 종속성이 있는 사람에게 일부 노동권을 인정하는 중간 범주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AB5는 또 다른 방식이다. 캘리포니아 Franchise Tax Board는 AB5가 노동법, 실업보험법, 산업복지위원회 임금명령의 목적상 근로자인지 독립계약자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ABC 테스트 적용을 요구한다고 설명한다. 캘리포니아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도 독립계약자와 근로자 구분에서 ABC 테스트를 안내한다.  
프랑스의 micro-entrepreneur 제도는 1인 사업자가 비교적 단순한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일정 매출 기준을 넘으면 다른 세제 체계로 넘어가는 구조를 갖는다. 프랑스 공식 행정포털 Service-Public은 micro-entreprise 제도가 연간 매출액 기준에 따라 적용되고, 일정 기간 기준을 초과하면 실제 과세체계로 전환된다고 설명한다. 
유럽연합도 플랫폼 노동 문제를 별도로 다루고 있다. EU Directive 2024/2831은 플랫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지침으로, 알고리즘 기반 기술이 디지털 노동 플랫폼의 성장과 새로운 위험을 만들었고, 규제되지 않을 경우 감시, 권력 불균형, 의사결정의 불투명성, 노동조건과 건강·안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사례들이 말하는 방향은 하나다.
현대 노동은 더 이상 “회사 안의 근로자”와 “완전히 독립한 사업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일한다.
그리고 법은 그 사이를 봐야 한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한 불평이 아니다. 국제기구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비표준 노동과 사회보장 사각지대를 중요한 정책 문제로 다뤄 왔다.
OECD는 사회보호의 미래를 다룬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사회보호 제도가 전형적인 전일제 종속근로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고, 자영업이나 온라인 긱워크 같은 비표준 노동은 보장 공백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OECD 평균으로 전체 노동자의 약 16%가 자영업자이고, 임금근로자 중 약 13%가 임시계약 노동자라는 설명도 제시한다. 
더 중요한 것은 OECD의 정책적 결론이다. OECD는 고용형태 사이에서 사회보장 기여와 보호를 가능한 한 조화시키고, 종속과 독립의 경계에 있는 노동자들을 표준 사회보호 체계 안에 포함하는 것이 보호 공백을 줄이는 데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자발적 가입 방식은 비표준 노동자에게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위험이 큰 사람만 가입하려는 역선택 문제가 생기고, 충분히 높은 가입률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ILO도 플랫폼·긱 노동자의 사회보호 문제에서 고용상 지위 분류가 핵심이라고 본다. ILO는 많은 법체계에서 노동·사회보호가 종속고용인지 독립노동인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사회보호뿐 아니라 최저임금, 산업안전보건, 단체교섭권 같은 노동보호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문제는 사람들이 게을러서도, 도전정신이 없어서도, 창업을 몰라서도 아니다.
문제는 일하는 방식은 이미 바뀌었는데, 보호의 원리는 아직 과거의 표준 고용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제는 “예외 추가”가 아니라 “원리 재설계”다
한국도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 고용보험이 있고, 노무제공자 고용보험이 있고,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산재·고용보험 확대도 있었다. ILO도 한국이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보험 확대를 위해 법 개정과 디지털 행정 방식을 활용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은 대체로 기존 구조에 예외를 덧대는 방식이었다.
근로자 중심 제도가 있다.
그 바깥에 자영업자 예외를 만든다.
또 그 바깥에 예술인 예외를 만든다.
또 그 바깥에 노무제공자 예외를 만든다.
또 그 바깥에 플랫폼 종사자 예외를 만든다.
이 방식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 해결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사람은 계속 새로운 형태로 일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플랫폼 노동자만 문제가 아니다. 내일은 AI 프리랜서, 원격 마이크로서비스 노동자, 1인 SaaS 운영자, 크리에이터-개발자, 계약형 연구자, 글로벌 외주형 창업자, 자동화 도구를 운영하는 1인 법인 대표가 늘어날 수 있다.
매번 새 직군이 나올 때마다 예외 조항을 하나씩 붙이는 방식으로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법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사람은 근로자인가 사업자인가?”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사람은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가?
소득이 불안정한가?
업무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
특정 거래처나 플랫폼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가?
실직이나 폐업 때 회복 가능한가?
재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과 현금흐름이 있는가?
보호는 신분이 아니라 위험을 따라가야 한다.
제도는 명칭이 아니라 실질을 봐야 한다.
취업과 창업 사이의 이동을 막는 것은 노동법만이 아니다.
금융과 신용평가도 큰 장벽이다.
창업자는 소득이 불규칙하다.
매출은 있어도 순이익이 낮을 수 있고, 순이익은 있어도 증빙이 복잡할 수 있다. 법인과 개인의 돈 흐름이 분리되어 있으면 오히려 개인 신용에서는 불리하게 보일 수 있다. 사업 초기에는 카드, 대출, 임대차, 보증, 세금, 보험료가 모두 압박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근로자는 월급이라는 단순한 증빙이 있다.
금융기관은 월급을 안정성으로 읽는다.
그러나 미래의 생산성, 제품 개발 능력, 고객 확보 능력, 기술력, 반복 매출 가능성은 기존 신용평가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현재 월급이 없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된다.
사업을 만들어 고용과 부가가치를 만들려는 사람도, 사업자라는 이유로 더 큰 위험군으로 묶인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은 실제 역량과 무관하게 금융시장에서 더 오래 벌을 받는다.
이 구조에서는 창업이 사회 전체의 혁신 경로가 아니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고위험 도박이 된다.
물론 금융기관이 위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출과 보증은 현실의 손실 가능성을 봐야 한다.
하지만 신용평가가 “사업자였던 적이 있는가” 또는 “소득이 월급 형태인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사회는 새로운 일의 방식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앞으로의 신용평가는 더 정교해져야 한다.
매출의 반복성, 고객 유지율, 계약의 질, 세금 납부 이력, 디지털 매출 데이터, 제품 자산, 지식재산권, 소액 반복 수익, 글로벌 결제 내역, 플랫폼 수익의 안정성 같은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
사람이 회사를 나오면 곧바로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재기지원은 복지가 아니라 생산성 정책이다
창업 실패자를 돕자는 말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다.
이것은 생산성 정책이다.
실패한 창업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 고객, 제품, 세금, 계약, 고용, 자금흐름, 법률 리스크를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사회가 그 사람을 완전히 낙오시키면, 그 경험도 함께 버려진다.
문제는 실패한 사람에게 무조건 돈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회복 가능한 구조다.
폐업 후 일정 기간의 소득 공백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채무조정과 재창업·재취업 지원이 연결되어야 한다.
창업 경력이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으로만 읽히지 않아야 한다.
개인 보증과 사업 실패가 한 사람의 평생 신용을 과도하게 망가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패 후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률·회계·금융 상담이 제공되어야 한다.
고용24의 자영업자 고용보험도 생활 안정과 재취업·재창업을 지원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이 방향은 옳다. 다만 이것이 일부 가입자와 일부 요건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의 전환 안전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사람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사회도 배운다.
사람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사회는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이 문제의 해법으로 “근로자와 사업자 사이의 제3 범주”를 말한다.
그 방향은 필요하다. 영국의 worker 같은 중간 범주도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의 신분 하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분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사업자.
제3 노동자.
이렇게 세 칸을 만들어도, 현실은 다시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
문제는 칸의 개수가 아니라, 보호가 칸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핵심은 “제3의 신분”이 아니라 “이동 가능한 권리”다.
고용보험 가입 이력은 고용형태가 바뀌어도 누적되어야 한다.
직업훈련 권리는 회사 소속이 아니어도 작동해야 한다.
산재 보호는 계약명칭보다 실제 위험을 봐야 한다.
실업급여는 정규직 이직만이 아니라 사업 실패와 소득 급감의 현실을 더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연금은 일의 형태가 바뀌어도 예측 가능해야 한다.
신용평가는 창업 경험을 단순 위험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길을 바꿀 때마다 권리가 끊기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어디서 일하든 최소한의 권리가 따라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이미 변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제도 밖에서 이상하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현실 밖에 서 있는 것이다.
1인 창업자는 예외가 아니다.
프리랜서는 임시방편이 아니다.
N잡러는 불안정한 청년의 이상한 선택이 아니다.
플랫폼 노동자는 과도기의 부작용만이 아니다.
외주를 받으며 자기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은 회색지대의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경제의 실제 구성원이다.
법은 이들을 비정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법은 이들을 임시 예외로만 다루지 말아야 한다.
법은 이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업자를 근로자로 볼 수는 없다.
모든 프리랜서를 회사 노동자로 재분류하는 것도 해법은 아니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실제로 사업 리스크를 감수하며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사업자등록자를 독립사업자로 보고 보호 밖에 두는 것도 현실을 왜곡한다.
계약서에 프리랜서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실제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업자등록증이 있다고 해서 협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플랫폼 앱을 켜고 끌 수 있다고 해서 생계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법은 명칭보다 실질을 봐야 한다.
그리고 실질을 보되, 사람의 이동을 막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단지 굶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선택이 평생의 낙인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취업을 했다고 창업의 길이 닫히지 않고, 창업을 했다고 취업의 길이 닫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 1인 파운더로 일하고 있다.
자체 프로덕트를 만들고, 외주도 받고, 파트너십도 만들고, 시장을 확인하고, 다시 제품을 고친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느낀다. 지금의 제도는 나 같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설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일하게 된다.
한 회사에 평생 머무는 사람만으로 사회를 설명할 수 없고, 전통적인 자영업자만으로 창업을 설명할 수도 없다.
한국이 진짜로 창업국가가 되고 싶다면,
창업을 영웅담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창업은 어렵고, 힘들고, 실패한다.“
즉, 실패해도 회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진짜로 노동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근로계약서 안에 있는 사람만 보아서는 안 된다.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의 위험을 봐야 한다.
취업과 창업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길이 아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오갈 수 있어야 하는 두 경로다.
그 사이에 외주가 있고, 학습이 있고, 실패가 있고, 회복이 있고, 다시 도전하는 시간이 있다.
두 개의 길이 진짜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일이 사람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사람답게 산다.
법은 거기에 닿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