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손님이 유명하다고 해서, 가게 주인이 메뉴판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 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손님이 유명하다고 해서, 가게 주인이 메뉴판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젠슨황은 대단한 사람이다. NVIDIA도 대단한 회사다. 문제는 그가 대단하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언론이 그를 다루는 방식이다. 요즘 한국 언론에서 젠슨황은 산업 뉴스의 인물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벤트처럼 소비된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에 갔는지,
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손님이 유명하다고 해서, 가게 주인이 메뉴판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젠슨황은 대단한 사람이다.
NVIDIA도 대단한 회사다.
문제는 그가 대단하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언론이 그를 다루는 방식이다.
요즘 한국 언론에서 젠슨황은 산업 뉴스의 인물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벤트처럼 소비된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한국을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뉴스가 된다.
물론 그런 장면도 뉴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사라진다.
젠슨황은 왜 한국에 왔는가.
NVIDIA는 한국에서 무엇을 팔고 있는가.
한국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주고 있는가.
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이 말은 비하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정확한 표현에 가깝다.
한국에는 HBM이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있다.
현대차, 네이버, 통신사, 제조업, 게임사, 로봇 기업이 있다.
정부는 AI 인프라를 원하고, 기업들은 AI 전환을 원한다.
전력과 데이터센터 수요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이 그를 왕처럼 띄워준다.
NVIDIA 입장에서 한국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다.
한국은 고객이면서 공급망이고, 데이터센터 수요처이면서 제조업 실험장이고, 동시에 홍보 무대다.
이보다 맛있는 시장이 얼마나 있을까.
이는 젠슨황이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그는 NVIDIA의 CEO다.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것이 그의 일이다.
CEO가 자기 회사의 칩을 팔고,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확장하고, 고객을 락인하고,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NVIDIA가 아니다.
문제는 그 움직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한국의 문장이다.
한국 언론의 문장은 자꾸 이렇게 흘러간다.
“젠슨황이 한국을 찾았다.”
“AI 황제가 한국을 주목했다.”
“한국의 위상이 올라갔다.”
하지만 산업적으로 더 정확한 문장은 이쪽이다.
“NVIDIA가 한국의 HBM, 전력, 데이터센터, 제조업, 클라우드, AI 전환 예산에 접근하고 있다.”
이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한국이 선택받은 존재가 된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한국이 자산을 가진 협상 주체가 된다.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여기 있다.
한국이 가진 카드를 보도하지 않고, 외국 CEO의 호감만 보도한다.
한국은 약한 나라가 아니다.
반도체 메모리 공급망의 핵심 국가이고, 제조업 현장을 가진 나라이고, 고밀도 디지털 인프라를 가진 나라다. 자동차, 로보틱스, 클라우드, 게임, 통신, 콘텐츠 시장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이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NVIDIA는 무엇을 파는가.
한국은 무엇을 사는가.
누가 전기를 쓰는가.
누가 데이터센터 비용을 부담하는가.
CUDA와 NVIDIA 생태계 락인은 어떻게 줄일 것인가.
HBM 공급망에서 한국은 어떤 협상력을 확보하는가.
한국 스타트업과 국산 AI 인프라에는 무엇이 남는가.
AMD, 국산 NPU, 온디바이스 AI는 어떤 헷지 전략으로 병행되는가.
이 질문들이 빠진 채로 “젠슨황이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반복되면, 뉴스는 산업 분석이 아니라 무료 홍보가 된다.
손님이 유명하다고 해서, 가게 주인이 메뉴판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한국은 NVIDIA를 환영할 수 있다.
협력할 수도 있다.
GPU도 살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환대는 외교다.
계약은 전쟁이다.
인프라는 자산이 될 수도 있고, 종속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이 NVIDIA와 협력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협력의 언어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의 언어로 협력하면, 한국은 고객으로만 남는다.
“우리 자산에 접근하려면 조건을 봅시다”의 언어로 협력하면, 한국은 협상 주체가 된다.
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더더욱 가게 주인처럼 행동해야 한다.
주방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
원가가 얼마인지 알아야 한다.
전기료를 누가 내는지 알아야 한다.
손님이 단골이 되는 것인지, 가게를 통째로 장악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손님의 미소를 받아쓰기보다, 가게의 가격표를 보여줘야 한다.
젠슨황은 영업을 잘하고 있다.
NVIDIA는 자기 이익을 정확히 보고 있다.
이제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문제는 한국 언론이 자꾸 주방장을 웨이터처럼 보도한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26살이다.
배고플 나이다.
배고프다는 말은 밥을 못 먹었다는 뜻만은 아니다.
아직 더 가져야 하고, 더 만들어야 하고, 더 팔아야 하고, 더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다.
상인은 원래 배고프다.
그리고 젊은 상인은 더 배고프다.
그래서 보인다.
누가 무엇을 팔러 왔는지.
누가 무엇을 공짜로 가져가려 하는지.
누가 손님처럼 들어와서 어느 순간 가게의 구조를 바꾸려 하는지.
젠슨황도 상인이다.
그는 자기 회사의 물건을 팔러 온 사람이다.
다만 그 물건이 GPU이고, CUDA이고, AI factory이고, 데이터센터이고, 생태계 락인일 뿐이다.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상인이 배고픈 것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상인은 배고프다.
문제는 배고픈 상인이 식탁 앞에 앉았는데,
식탁의 주인이 자기 음식값을 모르는 경우다.
젠슨황에게 한국은 맛집이다.
그리고 나는 26살의 상인이라서 안다.
배고픈 상인은 빈 식탁 앞에 앉지 않는다.
그가 웃고 있다면, 그 앞에는 반드시 먹을 것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