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건설업을 오해한다.
탁상공론의 가능성 | 이재명은 건설업을 오해한다.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논쟁의 본질 “원가를 현실화하겠다.” 정책 언어로는 그럴듯하다. 실제 데이터에 기반해 공사비를 산정하겠다는 말은 언뜻 과학적이고 투명하게 들린다. 하지만 건설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안다.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지금 정부가 공공공사 원가 산정에서 표준품셈보다
이재명은 건설업을 오해한다.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논쟁의 본질
“원가를 현실화하겠다.”
정책 언어로는 그럴듯하다.
실제 데이터에 기반해 공사비를 산정하겠다는 말은 언뜻 과학적이고 투명하게 들린다.
하지만 건설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안다.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지금 정부가 공공공사 원가 산정에서 표준품셈보다 표준시장단가, 과거의 실적공사비 방식에 더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산정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건설업 전체의 가격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잘못 잡히면, 현장이 그 대가를 치른다.
표준품셈은 공사에 필요한 노무, 자재, 장비의 투입량을 표준화해 공사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물론 단점이 있다. 시장 상황을 즉각 반영하지 못할 때가 있고, 실제 현장과 괴리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표준품셈에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예측 가능성이다.
안정성이다.
공사를 맡는 기업이 최소한 어느 정도의 기준 위에서 견적을 낼 수 있다.
반면 표준시장단가는 실제 계약단가, 시공단가, 입찰단가 등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반영해 단가를 산정한다.
말만 들으면 더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 “시장 가격”이 어떤 시장에서 나온 가격이냐는 것이다.
경기 침체기에 살아남기 위해 출혈 입찰한 가격.
PF 위기로 유동성이 말라버린 시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낮춘 낙찰가.
일감을 끊기지 않게 하려고 마진을 포기한 단가.
그것도 모두 “실적”이다.
그리고 그 실적이 쌓이면 다음 공사의 기준이 된다.
이 구조에서는 현실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침체의 바닥이 표준이 된다.
실적 기반 가격 산정이 잘 작동하는 영역도 있다.
사이클이 짧고, 단가 변동이 제한적이며, 결과물이 비교적 표준화된 업종에서는 실제 계약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건설은 다르다.
건설업의 원가는 시간 위에 놓여 있다.
수주에서 착공까지 짧아도 몇 개월이 걸리고, 준공까지는 2년, 3년, 길게는 5년 이상이 걸린다.
그 사이 철근 가격이 튄다.
레미콘 단가가 오른다.
인건비가 바뀐다.
환율 하나에 수입 자재 가격이 출렁인다.
금리와 PF 시장 상황에 따라 현장의 금융 비용도 달라진다.
건설업의 원가는 고정된 숫자가 아니다.
시간, 물가, 금융, 인력, 하도급 구조가 겹쳐 움직이는 복합 변수다.
그런데 과거 낙찰 데이터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묶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발주 단가는 내려간다.
원청은 그 압박을 하도급으로 넘긴다.
전문건설사와 중소 건설사는 마진 없이 공사를 떠안는다.
현장은 원가를 맞추기 위해 사람을 줄이고, 공정을 압박하고, 자재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그 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부실 시공.
또는 한계기업의 도산.
둘 다 나올 수도 있다.
정책은 늘 좋은 말로 포장된다.
“데이터 기반.”
“시장 가격 반영.”
“원가 현실화.”
“공공 예산 절감.”
그러나 좋은 말이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건설업에서 원가 현실화란 단순히 과거 계약 데이터를 평균 내는 일이 아니다.
현장의 리스크를 반영해야 한다.
공사 기간 중 물가 변동을 반영해야 한다.
하도급 구조에서 가격 압박이 어떻게 전가되는지 봐야 한다.
PF 위기 이후 건설사의 유동성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도 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보지 않고 “실제 시장 가격”이라는 말만 앞세우면, 정책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왜곡한다.
지금 건설업은 정상적인 호황 국면이 아니다.
PF 위기의 후유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방 사업장은 멈춰 있고, 미분양 부담은 남아 있으며, 중소 건설사의 자금 사정은 빠듯하다.
이런 시점에 과거의 낮은 낙찰가를 기준으로 다음 공사의 원가를 낮추면, 그것은 효율화가 아니다.
버티던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곳은 현장이다
정책 결정자는 숫자를 본다.
현장은 그 숫자를 몸으로 받는다.
공사비가 낮아지면 서류상으로는 예산이 절감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비용이 발생한다.
하도급 단가가 눌린다.
숙련공을 쓰기 어려워진다.
공정은 빠듯해진다.
안전 비용은 후순위로 밀린다.
품질 관리는 형식이 된다.
그 결과가 부실이라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 결과가 도산이라면, 피해는 노동자와 협력업체에게 돌아간다.
공공공사의 원가 산정은 단순히 정부 예산을 아끼는 기술이 아니다.
현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최소한의 가격 질서다.
그 질서를 무너뜨리면, 겉으로는 공사비를 줄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을 아래로 떠넘긴 것뿐이다.
좋은 정책은 업종의 구조를 이해한 위에서 나온다.
건설업의 유동성을 알아야 한다.
수주 산업의 사이클을 알아야 한다.
원청과 하도급 사이의 가격 전가 구조를 알아야 한다.
공사 기간 동안 원가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아무리 “데이터 기반”이라는 말을 붙여도 오판이다.
표준시장단가 확대는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같은 침체 국면에서는 위험하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는 정책이 아니라, 침체기의 낮은 가격을 다음 기준으로 고정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이재명은 건설업을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채로 공사비 산정의 기준을 흔들고 있다.
현장은 그 값을 치를 것이다.
그리고, 그 값은 자칫 더 크게 돌아온다.
이재명 정부의 건설업 인식에는 오래된 프레임이 깔려 있다. 토건 카르텔, 낙하산 수주, 대형사 담합 — 진보 진영이 수십 년간 건설업에 붙여온 낙인이다. 그 감정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부패한 구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카르텔 혁파와 현장 죽이기는 전혀 다른 얘기라는 점이다. 실적품셈 전환으로 타격받는 건 로비력과 자금력으로 버티는 대형 건설사가 아니다. 중소 건설사, 전문건설사, 그리고 그 아래 하도급 체인 끝에 있는 일용직 노무자까지다. 카르텔은 살아남고, 현장이 쓰러진다.
감정은 이해하더라도 정책은 구조로 짜야 한다. 이번 결정은 감정이 구조를 이긴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