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운더 블로그
·8분·정치·시사·조회

기술의 시대,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학교 공교육은 중요하다. | 기술의 시대,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학교 공교육은 중요하다. 물론 나는 조금 희한한 사례다.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정해진 교육과정 밖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직접 배우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공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공교육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삶의 기반이다. 친구들을 매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학교 공교육은 중요하다.

물론 나는 조금 희한한 사례다.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정해진 교육과정 밖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직접 배우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공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공교육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삶의 기반이다.

친구들을 매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이며,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다. 가정환경이나 경제적 조건에 관계없이 아이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장 보편적인 사회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해야 한다.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아니, 교육이란 무엇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기관과 교육법인은 기술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 전달만을 교육이라고 부르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정보는 이미 어디에나 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검색할 수 있고, 인공지능에게 질문할 수 있으며, 세계 최고의 강의와 자료에 몇 초 만에 접근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와 교사가 지식을 독점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제 지식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그렇다면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인간이 지식과 기술을 다룰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의 교육이 최소한 세 가지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는 누구나 실패한다.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취업에 실패할 수도 있다. 사업이 무너질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다. 자신이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다.

실패한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다.

100억 원을 잃어도, 1,000억 원을 잃어도, 1조 원을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물론 실제로 그만큼의 돈을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삶을 다시 건설할 수 있는 정신과 역량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육은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운 것으로 만들었다.

틀리면 감점되고, 뒤처지면 낙오하며,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환경에서는 실패를 통해 배우기보다 실패를 숨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교육기관은 학생이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시도하며, 실패가 자신의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무너진 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은 혼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혼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성격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매일 만나고, 갈등하고, 협력하며, 관계를 배우는 작은 사회다.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는 경험,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역할을 나누는 경험,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경험은 책만으로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이제 교육은 한 국가의 국민만을 만드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전쟁, 감염병, 기술윤리, 빈곤과 불평등처럼 오늘날의 문제는 국경 안에서만 해결할 수 없다. 학생들은 자신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세계와 연결된 시민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세계시민의식은 거창한 구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시작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나와 다른 사람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과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확대한다.

그러나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지 못한다면, 확대되는 것은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탐욕과 폭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기술의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을 이해하는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한 번 배운 지식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직업은 계속 바뀌고, 산업은 재편되며, 오늘의 전문지식이 몇 년 뒤에는 낡은 지식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기존의 업무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모든 것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니다.

필요할 때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고, 좋은 질문을 만들고, 직접 시도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다시 학습하는 힘이다.

하지만 학생이 정해진 시간표와 정해진 교재, 정해진 문제와 정해진 정답만을 따라간다면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기르기 어렵다.

교육기관은 학생에게 답을 계속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한다.

“이것을 외워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는 무엇이 궁금한가.”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배운 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

교사의 역할 역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에서, 학생이 자신의 학습 경로를 설계하도록 돕는 안내자와 코치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술은 점점 더 많은 지적 노동을 대신할 것이다.

계산하고, 번역하고, 글을 쓰고, 코드를 만들고, 자료를 분석하는 일까지 인공지능이 빠르게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인공지능보다 더 빨리 계산하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세계를 이해하며, 약한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질문하고 배우는 사람.

이 세 가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공교육의 역할은 모든 학생을 똑같은 답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삶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기술의 시대에 교육기관과 교육법인이 해야 할 일은 더욱 분명하다.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만 집착하기 보다는, 어떤 기술과 환경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 앞으로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문제를 보면 해결하려고 한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24시간 잠도 안자고 그것만 몰입한다.

즉, 돌진형이다.

때때로 주변 사람을 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다.

왜냐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점을 해결해야한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인생이 즐겁지 않은가? 아니다. 그 문제를 푸는게 너무 재밌다.

도파민이 터진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상을 얻고, 감사의 한마디를 듣는 것.

인생에서 이보다 감격적인 순간이 없다.

솔직하게는 나는 글을 읽고 이해하고 쓰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어머니 오피셜로 만 2살에 글자인 한글을 읽었다고 한다. 엄마가 책을 소리내서 많이 읽어줬다. 소리와 감각으로.

그리고 유치원때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는데 그게 나랑 잘 맞았던 것 같다. 6-7살(한국나이) 동안의 유치원 시절, 이미 초등학교 6학년 전과정에 해당하는 학습을 했다.

그러나 항상 느끼는 점은 나는 당연하게도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삶들을 배운다는 점이다.

나는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세상에 어떤 이력을 남기고

결국 노인이 되어 어떻게 해야

웃으며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8월 5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L
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mail protected] 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