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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를 본 사람과 맛본 사람

https://youtu.be/Gk-9Fd2mEnI 바나나를 본 사람과 맛본 사람 1992년 MIT Sloan 강연에서 스티브 잡스는 컨설턴트를 비판하며 ‘바나나 사진’ 이야기를 했다. 여러 회사를 넓게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몇 년 동안 직접 실행하고 그 결과와 실패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경험은 얇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를 두

https://youtu.be/Gk-9Fd2mEnI

1992년 MIT Sloan 강연에서 스티브 잡스는 컨설턴트를 비판하며 ‘바나나 사진’ 이야기를 했다. 여러 회사를 넓게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몇 년 동안 직접 실행하고 그 결과와 실패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경험은 얇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를 두고 “You never get three-dimensional.”이라고 표현했다. 바나나 사진을 아무리 많이 봐도 직접 맛본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나는 이 비유가 지금 한국의 인재 구조에도 꽤 정확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육의 성취 자체는 대단하다. OECD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의 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71%로 OECD 최고 수준이다. 대학원 교육 역시 경제적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 석·박사 학위자는 학사 졸업자보다 고용률이 7%포인트 높고 소득도 33% 높다. 따라서 이것은 ‘대학이나 대학원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학력이 능력을 얼마나 정확하게 대표하느냐다.

OECD는 한국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으며, 수학·국어·영어처럼 측정하기 쉬운 능력에 비해 창의성·비판적 사고·협업·커뮤니케이션 같은 상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역량이 희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위권 대학 입학 경쟁 역시 매우 치열해 학생과 가계의 부담을 높이고, 학생이 자신의 적성보다 대학 입학 가능성을 기준으로 전공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시장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보인다. OECD의 2023 성인역량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31%가 자신의 일자리보다 높은 학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OECD 평균은 23%였다. 전공과 실제 직무가 맞지 않는 비율도 한국은 49%, OECD 평균은 38%였다. 다른 OECD 분석에서도 한국은 학력·교육적 숙련 수준과 직무의 불일치가 44%로 OECD 지역 평균 35%보다 높게 나타났다.

더 직접적인 지적도 있다. OECD는 최근 한국 노동시장에서 학력과 출신기관의 명성이 실무 역량보다 크게 작용하는 구조를 문제로 짚었다. 과거 OECD 연구에서도 한국의 과잉학력 현상 배경으로 개인과 기업이 교육자격을 강하게 중시하는 현상, 대학 졸업자 선호, 교육과 실제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한국인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나나 사진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는 매우 정교하게 평가하면서, 실제로 바나나를 먹어보고 팔아보고 썩혀보고 다시 고르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SaaS를 공부하면 구독형 소프트웨어의 정의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SaaS를 팔아보면 고객이 왜 결제 직전에서 빠지는지, 유지율이 왜 무너지는지, 작은 기능 하나가 왜 운영비를 계속 발생시키는지 알게 된다.

SI 역시 책에서는 고객 맞춤형 시스템 구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실제로 해보면 요구사항 한 줄이 일정·개발원가·계약범위·유지보수·책임소재를 동시에 흔든다는 것을 경험한다.

코드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1년 동안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사용자 행동, 누적 데이터, 요구사항 변경, 외부 서비스 변경, 장애와 기존 설계의 기술부채가 돌아온다. 잡스가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판단을 내린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결과까지 소유하고, 자신의 실수에서 ‘scar tissue’를 얻어야 비로소 경험이 입체적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전 경험의 본질은 단순한 현장 경험이 아니다.

책임이 붙은 피드백 루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지식이 판단력으로 변한다.

그리고 AI 시대에는 이 차이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생성형 AI는 이미 글쓰기·요약·번역·코딩 등 다양한 지식노동의 생산비를 낮추고 있다. OECD가 정리한 실험 연구에서는 생성형 AI 사용으로 일부 전문 글쓰기 업무의 수행시간이 평균 40% 감소하고 품질이 18% 향상됐으며, 고객지원 업무 연구에서는 AI 도입 후 시간당 처리 생산성이 평균 약 14% 향상됐다. 특히 경험이 적은 노동자에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ILO는 2025년 전 세계 노동자의 약 4명 중 1명이 어느 정도 생성형 AI에 노출되는 직업에 종사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부분의 직업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업무 구성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OECD 역시 AI가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일부 작업을 맡게 되면서 인간이 더 높은 가치의 업무에 집중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즉 앞으로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으로 사람을 구별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OECD는 AI 시대에도 문제해결, 창의성, 혁신, 데이터 해석, 관리와 인간적 판단 같은 역량은 계속 중요할 것으로 본다. 실제로 AI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AI 모델 자체를 개발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AI를 자신의 업무 안에서 활용하고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앞으로 인재를 보는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을 공부했는가에서 끝나면 안 된다.

OECD 역시 한국의 교육·노동시장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직무역량 기반 채용, 현장훈련과 도제제도, 산업과 교육과정의 연결 강화를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즉 ‘스펙보다 실제 역량을 보자’는 이야기는 단순한 창업가의 감상이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 정책적 논점이기도 하다.

AI가 지식을 점점 더 싸게 만드는 시대라면, 한국의 인재 시스템도 이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선별하는 체계에서, 얼마나 깊게 현실을 경험하고 판단하며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체계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8월 27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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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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