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값이 떨어진 시대, 창업자가 VC 를 보는 기준.
돈의 값이 떨어진 시대, 창업자는 VC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가— 2026년 8월, 벤처캐피털을 돈·사람·조직·브랜드로 다시 본다2026년의 벤처시장에는 적어도 총량 기준으로 돈이 부족하지 않다.2026년 상반기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액은 약 5,100억 달러로 집계돼 반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는 2025년 연간 투자액 약 4,400억
돈의 값이 떨어진 시대, 창업자는 VC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가
— 2026년 8월, 벤처캐피털을 돈·사람·조직·브랜드로 다시 본다
2026년의 벤처시장에는 적어도 총량 기준으로 돈이 부족하지 않다.
2026년 상반기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액은 약 5,100억 달러로 집계돼 반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는 2025년 연간 투자액 약 4,400억 달러를 이미 넘어선 규모다.
2026년 1분기에만 약 3,000억 달러가 전 세계 스타트업에 투자됐고, 이 가운데 약 2,420억 달러, 즉 80%가 AI 기업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돈은 넓게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소수 기업으로 집중되고 있다.
OpenAI와 Anthropic 두 회사만 2026년 상반기 전체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액의 43%에 해당하는 약 2,170억 달러를 조달했다.
2026년 1분기에는 OpenAI·Anthropic·xAI·Waymo 네 회사가 약 1,880억 달러를 조달해 전 세계 벤처투자금액의 약 65%를 차지했다.
2026년 들어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액의 약 60%가 10억 달러 이상의 초대형 라운드에 들어갔다는 Crunchbase 집계도 이런 집중을 보여준다.
동시에 Carta에서 추적하는 2026년 1분기 신규 VC 펀드들은 모집한 자본 가운데 약 28%만 집행했고 약 72%를 미집행 자본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2026년 벤처시장의 특징을 단순히 “돈이 없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현재의 자본 총량과 집중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자본은 크지만, 그 자본을 매우 큰 규모로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회사의 수는 제한돼 있는 시장에 더 가깝다.
이 상황에서는 투자자가 창업자를 고르는 질문만큼이나 창업자가 투자자를 고르는 질문도 중요해진다.
1. 창업자는 왜 지금 VC의 돈을 받아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초기 기술기업에 자본은 제품개발과 조직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생산요소였다.
VC가 단순히 현금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약구조, 모니터링, 조언과 지원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오래된 벤처캐피털 연구에서도 확인돼 왔다.
그러나 적어도 AI 응용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a16z는 2026년 AI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분석하며 이미 코드 생성비용이 크게 낮아졌고, 그 변화가 기업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앞으로 존재할 소프트웨어의 형태에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Sequoia는 2026년 AI 기업이 단순히 기존 서비스업체에 소프트웨어 도구를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비스 업무 자체를 소프트웨어와 AI로 직접 수행하는 모델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Sequoia가 제시한 회계업무 사례에서도 기업이 회계 소프트웨어 비용보다 실제 회계서비스에 훨씬 많은 돈을 쓰는 구조가 지적됐고, AI 기업이 도구가 아니라 그 업무 자체를 판매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 전망이 현실화될수록 일부 응용 소프트웨어 기업에서는 과거보다 적은 인력과 적은 초기자본으로 더 넓은 업무영역을 처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명제는 반도체·데이터센터·로보틱스·바이오·프런티어 AI 모델처럼 대규모 물리적 또는 연산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산업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실제로 2026년 상반기 Physical AI 분야에만 약 474억 달러의 벤처자금이 들어갔고, 이는 직전 반기의 약 네 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돈의 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모든 산업에서 자본이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특히 자본효율적인 AI·소프트웨어 창업에서 단순 현금 공급만으로는 VC의 차별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가설이다.
2. 돈만 주는 VC와 돈 이상의 것을 주는 VC
VC의 경제적 기능이 현금 공급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실증연구에서도 오래전부터 확인됐다.
681개 VC에서 근무하는 885명의 기관 벤처투자자를 조사한 연구에서 투자 후 VC들이 제공한다고 답한 지원에는 전략적 조언, 다른 투자자 연결, 고객 연결, 운영 조언, 이사회 구성과 인재채용 등이 포함됐다.
해당 조사에서 87%의 VC가 전략적 조언을, 72%가 다른 투자자 연결을, 69%가 고객 연결을, 65%가 운영 관련 조언을 제공한다고 답했다.
따라서 창업자가 VC에게서 구매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단순한 현금 한 종류라고 보기 어렵다.
VC 자본에는 현금 + 정보 + 네트워크 + 채용 + 고객 접근 + 후속자본 + 거버넌스가 결합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VC가 이 비금전적 가치를 동일하게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2026년 NBER 연구는 약 75만 개 미국 스타트업과 329개 액셀러레이터를 분석한 결과 액셀러레이터별 부가가치 차이가 매우 컸으며,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무참여 기준보다 부가가치가 낮은 반면 소수의 오른쪽 꼬리 프로그램은 큰 장기성과를 만들어낸다고 보고했다.
즉 “액셀러레이터나 유명한 VC가 붙으면 무조건 좋다”는 명제 역시 데이터로 지지되지 않는다.
창업자는 자본을 받는지 여부만 결정할 것이 아니라 어떤 자본을 누구에게서 받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3. 모든 1억 원은 회계적으로 같지만 전략적으로 같지 않다
투자자의 평판이 실제 경제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David Hsu가 동일한 스타트업이 여러 VC에게 받은 초기 투자제안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평판이 높은 VC의 제안이 다른 제안보다 약 세 배 높은 확률로 창업자에게 선택됐다.
같은 연구에서 평판이 높은 VC들은 다른 VC보다 스타트업 지분을 약 10~14% 낮은 가격으로 취득할 수 있었으며, 이는 창업자들이 그 VC가 제공하는 비금전적 가치를 위해 경제적 비용을 부담했다는 해석과 부합한다.
VC의 인증효과를 다룬 고전적 연구에서도 VC가 참여한 IPO에서 정보 비대칭과 발행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한국 코스닥 기술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VC 참여가 R&D 불확실성에 대한 인증 역할을 했으며 평판이 높은 VC일수록 그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유명한 VC가 넣은 1억 원과 아무 투자자가 넣은 1억 원은 전략적으로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적어도 VC의 인증효과와 평판 프리미엄 연구와 일치한다.
좋은 VC의 브랜드는 고객·인재·후속투자자에게 해당 기업에 대해 추가적인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돈 자체의 희소성이 내려가는 환경에서도 평판이 좋은 자본의 희소성은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
4. 그렇다면 투자자를 평가할 때 사람을 봐야 한다
VC 자신들도 투자결정에서 창업자와 팀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885명의 VC를 조사한 연구에서 투자자들은 제품이나 기술 같은 사업 특성보다 경영팀을 더 중요한 투자선정 요소로 평가했고, 투자성과의 성공과 실패 역시 사업보다 팀에 더 많이 귀속시켰다.
2025년 8,000건 이상의 실제 초기 VC 딜플로를 분석한 NBER 연구에서도 팀·시장·제품·엑싯 가능성이 투자평가에 사용됐고, 초기 자금조달 여부를 설명하는 데는 팀 평가가 특히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창업자 역시 VC 조직의 이름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회사에 대한 판단을 내릴 사람이 어떤 경험을 거쳐왔는지를 볼 이유가 있다.
여기서 나는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사람에게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존재하며, Samuelson과 Zeckhauser의 연구는 실험과 실제 의사결정에서 사람들이 기존 선택을 불균형하게 유지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Arkes와 Blumer의 연구는 돈·노력·시간을 이미 투입했을 때 해당 행동을 계속하려는 매몰비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줬다.
시스템 정당화 이론 역시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존의 사회·경제·정치 시스템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들이 “시험 합격자는 보수적이다”라는 명제를 직접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제도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체성을 투자해 큰 보상을 받은 사람이 그 제도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질문해야 할 이론적 이유는 제공한다.
따라서 VC를 평가할 때도 “이 사람이 어떤 기존 게임에서 승리했는가”와 “그 뒤 그 게임을 떠나 정답 없는 새로운 게임에서도 다시 승리해봤는가”를 함께 보자는 분석틀을 세울 수 있다.
이것은 실증적으로 확립된 VC 평가공식이 아니라, 기존 심리학 연구와 창업경험의 중요성을 다룬 VC 연구에서 도출한 평가 가설이다.
5. 기존 게임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게임에서 다시 이겨본 경험이다
이 관점에서 학력이나 전문자격 자체를 보수성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과거 성공경로가 현재 판단을 얼마나 강하게 구속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명문대·전문직·IB·컨설팅을 경험한 뒤 직접 창업하고 새로운 시장에 자기 자본과 경력을 걸었다면 과거 제도적 성공과 현재의 기업가적 경험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된다.
반대로 동일한 평가체계 안에서 계속 승진과 승인을 받아온 사람이 새로운 산업을 기존의 평가모델로 해석하려 할 가능성은 하나의 검토대상이 될 수 있지만, 개인의 실제 판단을 보지 않고 경력만으로 이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식은 과학적 방정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투자자 실사용 휴리스틱이다.
«기존 제도에서 얻은 승리의 크기 − 기존 성공공식을 버리고 무정답 게임에서 다시 승리한 경험 = 새로운 질서에 대한 잠재적 고착 위험.»
이 휴리스틱의 목적은 엘리트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을 버릴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6. VC는 하나의 종족이 아니다
실제 VC들의 조직구조를 비교하면 같은 ‘벤처캐피털’이라는 이름 아래 상당히 다른 형태의 조직이 존재한다.
프라이머는 2010년 시작한 한국 최초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이며, 공식적으로 자신의 세 가지 가치를 돈보다 경영·재능보다 진정성·경험보다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다.
프라이머는 자신을 단순한 투자회사가 아니라 교육회사라고 규정하며, 선발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6개월간 경영교육과 후속투자 지원, 데모데이를 운영한다.
2026년 현재 프라이머 액팅 파트너에는 이니시스·이니텍 등을 경영한 권도균 대표와 당근 글로벌·사업팀, 딜라이트룸 Operations, 당근 지역사업, 스타트업 CEO 경험을 가진 인력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프라이머의 공개된 현재 투자조직은 전통적 금융경력만으로 구성된 조직이라기보다 창업·사업운영 경험이 강하게 섞인 형태라고 분류할 근거가 있다.
본엔젤스도 공식적으로 창업가 출신 파트너들의 지원을 강조하고 있으며, 2007년 이후 약 270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현재 운용하는 1,200억 원 규모 페이스메이커펀드4의 출자금 가운데 57%가 본엔젤스의 기존 투자기업 창업자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투자받은 창업자가 다시 다음 창업자의 LP가 되는 구조가 실제 자본구조에 반영됐음을 보여준다.
카카오벤처스는 2026년 현재 280개 이상의 패밀리 기업과 4,300억 원 이상의 운용자산, 11개 이상의 누적 펀드를 공개하고 있다.
카카오벤처스는 공식 투자철학에서 스타트업이 안 되는 여러 이유보다 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에 집중한다고 밝히며 자신을 창업자의 부기장 또는 코파일럿으로 정의한다.
카카오벤처스는 2026년에 조직의 공식 핵심가치를 다시 정리하면서 윤리·전문성·원팀·진정성 등을 의사결정 원칙으로 공개했다.
반면 IMM Investment는 2026년 3월 기준 약 77억 달러의 AUM을 운용하는 아시아 대체투자 플랫폼이며 VC·Growth Equity·Infrastructure·부동산·Fund of Funds 등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한다.
IMM은 서울·도쿄·홍콩·싱가포르를 포함한 조직에서 70명 이상의 투자전문가가 협업한다고 밝히고 있다.
IMM의 공개된 주요 인력 경력에는 증권사와 Ernst & Young 같은 금융·전문서비스 경험도 포함돼 있다.
이 차이는 어느 조직이 더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VC마다 의사결정의 역사와 조직적 제약조건이 다르다는 의미다.
7. 결국 개인보다 조직을 봐야 한다
VC의 투자결정은 한 사람의 직감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VC 연구는 투자과정이 딜소싱·스크리닝·가치평가·계약구조·사후 모니터링·LP 관계와 내부 조직구조까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VC 계약에는 청산우선권·베스팅·희석방지·이사회 권한 등 창업자와 투자자의 장기 관계를 규정하는 구조가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비정통적인 개인 투자자라도 자신이 속한 펀드의 mandate, 투자위원회, 계약조건과 LP에 대한 의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창업자가 VC를 평가할 때는 “이 사람이 새로운 게임을 이해하는가”와 “이 사람이 실제로 그 게임에 돈을 걸 수 있는 구조에 있는가”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8. Altos가 흥미로운 이유
Altos Ventures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투자철학을 Founder Oriented, Fundamentals Focused, Uncommonly Patient, Contrarian by Nature라는 네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Altos는 유행하는 산업을 추격하지 않고 각 팀·기업·시장을 first principles에서 독립적으로 평가하며, 자본이 과도하게 몰린 영역을 피하고 독자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가진 기업을 선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초기 투자 후 10년 이상 지난 고성과 기업에도 상당한 추가자본을 투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투자자의 학력이나 전 직장만으로 새로운 게임에 대한 수용성을 판단하는 것은 Altos처럼 실제 투자행동과 공식 철학이 비정통적일 수 있는 조직을 잘못 분류할 위험이 있다.
결국 투자자를 볼 때는 이력보다 반복된 실제 베팅과 장기간의 행동 로그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9. YC의 지분은 왜 비싸도 팔리는가
2026년 현재 Y Combinator의 표준 투자조건은 총 50만 달러다.
이 가운데 12만5천 달러는 회사 지분 7%로 전환되고, 나머지 37만5천 달러는 uncapped MFN SAFE로 투자된다.
따라서 YC가 최종적으로 취득하는 경제적 지분은 고정 7%보다 커질 수 있으며, 추가 SAFE의 지분율은 이후 회사가 조달하는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이 조건을 단순히 현금 50만 달러와 지분만 비교하면 창업자에게 결코 무료에 가까운 자본은 아니다.
그러나 평판 높은 VC에 접근할 수 있는 창업자들이 불리한 가격조건까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기존 실증연구는 YC 같은 강한 브랜드의 경제적 가치가 현금 외부에 존재할 가능성을 설명한다.
즉 강력한 투자브랜드를 가진 조직에 지분을 주는 행위는 단순 자금조달이 아니라 브랜드·인증·네트워크를 함께 구매하는 거래로 해석할 수 있다.
10. a16z는 돈이 아니라 하나의 운영체제를 팔고 있다
a16z는 2026년 현재 1,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동시에 a16z는 마케팅·인재·법률·정책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오퍼레이터 조직을 만들어 창업자를 지원하는 platform model을 자신들의 핵심 차별점으로 설명한다.
a16z는 투자팀 역시 성공한 기업의 전직 창업자와 오퍼레이터 중심으로 구축했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a16z 같은 대형 VC의 상품을 단순히 투자수표의 크기로만 평가하는 것은 그 조직이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비금전적 자원을 상당 부분 누락한다.
이런 VC가 성장할수록 경쟁력의 중심은 누가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서 누가 돈 주변에 더 강한 운영시스템을 구축했는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11. 그래서 나는 VC를 다섯 가지 자원으로 본다
첫 번째는 돈이며, 창업자는 투자금액보다 먼저 자신에게 그 자본이 실제로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현금을 받기 위해 영구적인 지분을 넘긴다면 창업자는 자본조달의 편익과 지분희석의 장기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보이며, VC가 산업·경쟁사·고객·후속자본에 관해 창업자가 독자적으로 얻기 어려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세 번째는 시간이며, 투자 후 전략·운영·채용·고객연결에 실제 파트너의 시간이 얼마나 투입되는지가 VC의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브랜드이며, 평판 높은 VC의 이름은 외부시장에 기업의 질에 대한 인증신호로 작동할 가능성이 실증연구에서 확인돼 왔다.
다섯 번째는 손실이 발생했을 때의 행동이며, VC와 창업자의 관계에는 정보 비대칭과 이해상충이 존재하기 때문에 계약·모니터링·거버넌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VC의 진짜 관계가치는 모든 것이 잘될 때 제공하는 친절보다 회사가 흔들릴 때 계약상 권리와 실제 행동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통해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판단이다.
12. 프라이머, Altos, YC, IMM은 같은 상품이 아니다
프라이머는 극초기 창업자를 선발해 교육·멘토링·후속투자 연결을 제공하는 액셀러레이터 구조를 중심으로 한다.
Altos는 초기투자 이후 장기적으로 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founder-oriented VC를 지향한다.
YC는 표준화된 초기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결합한 구조를 운영한다.
a16z는 막대한 AUM과 별도의 운영지원 플랫폼을 결합한 멀티스테이지 벤처플랫폼에 가깝다.
IMM은 VC뿐 아니라 성장투자·인프라·부동산·Fund of Funds까지 운용하는 대형 멀티에셋 대체투자기관이다.
따라서 이들을 하나의 숫자로 세워 “누가 최고의 VC인가”라고 묻는 것은 서로 다른 상품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오류를 만들 수 있다.
더 적절한 질문은 “현재 우리 회사에 부족한 자원이 무엇이고, 어느 투자자가 그 자원을 가장 희소하게 가지고 있는가”다.
13. 좋은 창업자는 VC도 실사해야 한다
VC가 창업자를 실사하는 것은 자본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실제 VC들은 투자 전에 팀·시장·제품·밸류에이션·딜구조 등을 평가하고 투자 뒤에는 모니터링과 지원을 수행한다.
그런데 투자계약은 동시에 창업자가 장기간 특정 투자자와 경제적·거버넌스 관계를 맺는 계약이기도 하다.
따라서 창업자 역시 투자자의 이력·조직·LP 구조·투자철학·평판·과거 포트폴리오와 위기 상황에서의 행동을 검토할 경제적 이유가 있다.
특히 자본효율성이 높아져 외부투자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아닌 회사라면 투자자를 거절할 수 있는 옵션 자체가 협상력의 일부가 될 수 있다.
VC가 스타트업을 100개 검토해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좋은 창업자 역시 여러 종류의 자본 가운데 자신의 회사에 맞는 자본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14. 자본이 흔해질수록 사람은 더 비싸진다
2026년 상반기의 기록적인 벤처투자액은 자본이 사라지고 있는 시장이 아니라 막대한 자본이 극소수 회사로 집중되는 시장을 보여준다.
동시에 AI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비용과 기업이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 두 변화가 함께 진행되면 일부 창업자에게 단순한 현금의 희소가치는 과거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평판 좋은 투자자의 인증효과와 네트워크·운영지원·판단력 같은 비금전적 자원은 여전히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창업자들이 평판 좋은 VC의 돈을 받기 위해 경제적으로 더 비싼 조건을 수용한다는 연구는 돈 외부의 가치가 실제 거래가격에 반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쟁은 돈이 있는 VC와 돈이 없는 VC의 경쟁보다 돈 외에 무엇을 줄 수 있는 VC인가의 경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자본효율적인 좋은 창업자가 늘어난다면 VC가 창업자를 선택해온 것처럼 창업자도 VC를 더 강하게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투자자를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분이라는 희소한 자산을 교환하는 상대이기 때문에 투자자를 더 진지하게 평가하자는 이야기다.
과거의 전형적인 질문은 “이 창업자는 내 돈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였다.
2026년에는 반대편에서도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 투자자는 내 회사의 지분을 가질 가치가 있는가.”»
돈은 다시 조달할 수 있지만 한번 발행한 지분과 장기간 형성된 주주관계는 회사의 미래 거버넌스와 경제적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돈이 흔해질수록 좋은 투자자를 고르는 기준은 오히려 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돈만으로는 점점 부족하다.
좋은 자본에는 결국 좋은 사람·좋은 판단·좋은 네트워크·좋은 브랜드가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