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다시 서사가 필요하다.
한국에는 다시 서사가 필요하다.오랫동안 한국의 서사는 분명했다.가난에서 벗어나야 했다.더 잘사는 나라를 따라잡아야 했다.선진국이 되어야 했다.목표는 단순했고, 그래서 강했다.산업도 교육도 외교도 개인의 삶도 어느 정도는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공부해서 더 나은 삶으로 올라가고, 기업은 수출해서 외화를 벌고, 국가는 더 강해지는
한국에는 다시 서사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한국의 서사는 분명했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다.
더 잘사는 나라를 따라잡아야 했다.
선진국이 되어야 했다.
목표는 단순했고, 그래서 강했다.
산업도 교육도 외교도 개인의 삶도 어느 정도는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
공부해서 더 나은 삶으로 올라가고, 기업은 수출해서 외화를 벌고, 국가는 더 강해지는 것.
좋든 싫든 한 시대를 움직인 거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국은 결국 그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된 다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정책은 있지만 하나의 방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
AI를 키워야 한다.
반도체를 지켜야 한다.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청년을 지원해야 한다.
전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것들은 목적지가 아니라 계기판에 가깝다.
국가는 숫자 몇 개를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GDP를 위해 살아가지도 않는다.
결국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다음 시대의 한국이 더 이상 '추격자의 나라'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한국은 굉장히 뛰어난 추격자였다.
남들이 만든 산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었고, 더 빠르게 생산했고, 더 싸게 공급했고, 때로는 결국 선두까지 올라갔다.
조선도 그랬고 자동차도 그랬고 반도체도 그랬다.
문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추격에는 한계가 있다.
앞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두에 가까워질수록 따라갈 길은 사라진다.
그 순간부터 국가는 남들이 이미 만든 정답을 푸는 능력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한국은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추격자의 나라에서, 설계자의 나라로.
설계한다는 것은 반드시 세계를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개념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을 어떤 제도에 담을지 설계하는 것.
고령화와 저출산을 먼저 경험한 국가로서 다음 사회의 모습을 실험하는 것.
AI 시대에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
도시를 다시 설계하고, 교육을 다시 설계하고, 기업과 노동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것.
그리고 그중 잘 작동하는 것을 다른 나라가 가져다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20세기의 한국이 물건을 수출했다면,
21세기의 한국은 시스템도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만 글로벌해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람과 자본과 기술과 문화가 한국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도 훨씬 더 열려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만 한국의 미래를 만드는 구조로는 인구 감소 시대를 버티기 어렵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창업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계 어디에서든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은 동시에 세계 어디에서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확장은 반드시 영토의 확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21세기의 국가는 사람, 기업, 기술, 문화,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작은 영토는 반드시 약점만은 아니다.
오히려 거대한 실험실이 될 수도 있다.
정책을 빠르게 실험하고,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고,
도시 단위에서 새로운 제도를 시험하고,
성공한 모델을 세계로 확장하는 국가.
한국은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사회가 공유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정책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이해할 때 움직인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 더 큰 방향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움직인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산업 정책과 교육 정책과 외교 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힘이 분산된다.
반대로 하나의 서사가 만들어지면 서로 다른 정책들이 같은 방향을 향하기 시작한다.
산업 정책은 무엇을 키워야 하는지 알게 되고,
교육은 어떤 사람을 길러야 하는지 알게 되고,
이민 정책은 어떤 사람을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되고,
외교는 무엇을 위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서사는 장식이 아니다.
서사는 국가의 의사결정 함수다.
한국은 이미 한 번 거대한 전환에 성공했다.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이동했고,
산업국가에서 기술국가로 이동했고,
문화적으로도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에 가까운 곳까지 올라왔다.
다음 전환은 어쩌면 더 어렵다.
이번에는 따라갈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재미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제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길을 새로 만들 것이냐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 이상 "우리도 저 나라처럼 되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만들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가 아직 풀지 못한 문제 중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 30년 뒤,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바라보며
"저 방식은 한번 따라 해볼 만하다"고 말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에는 다시 서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 서사는 아마 이런 방향이어야 한다.
추격자의 나라에서,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나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