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결제일
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없을까. 가끔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결정들은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결정하는 순간에는 그 무게를 전부 느낄 수 없는 것 아닐까. 회사를 접는 결정.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결정. 오랫동안 만든 것을 포기하는 결정. 많은 사람의 미래가 걸린 결정. 그 순간에는 생각해야 한다. 돈을 계산하고, 가능성을
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없을까.
가끔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결정들은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결정하는 순간에는 그 무게를 전부 느낄 수 없는 것 아닐까.
회사를 접는 결정.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결정.
오랫동안 만든 것을 포기하는 결정.
많은 사람의 미래가 걸린 결정.
그 순간에는 생각해야 한다.
돈을 계산하고,
가능성을 비교하고,
시간을 보고,
위험을 따지고,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슬퍼할 여유가 없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감정을 처리할 차례가 오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직업을 연구한 사례들을 보면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외과의사들은 수술 중 좋지 않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당장 다음 판단을 해야 한다.
충격을 받았다고 해서 멈춰 있을 수 없다.
몇 분 뒤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먼저 상황을 처리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불안, 죄책감, 슬픔, 자기반성 같은 감정이 찾아온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을 없애는 것보다, 감정을 인식하면서 당장의 행동과 분리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책임이 커질수록 필요한 능력은 무감각함이 아니라
감정을 잠시 뒤로 보내는 능력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이 끝난다.
회의실에서 사람들이 나간다.
서류에 서명이 끝난다.
전화가 끊긴다.
수술실의 불이 꺼진다.
혼자 남는다.
그제야 조금 전까지 숫자였던 것들이 다시 사람이 된다.
직원 수라는 숫자는
각자의 생활이 되고,
철수라는 단어는
그곳에서 보낸 몇 년의 시간이 되고,
투자금이라는 숫자는
누군가가 걸었던 미래가 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내가 정말 그 결정을 내렸구나.
이 감정은 반드시 후회는 아닐 것이다.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슬플 수 있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울 수 있다.
옳고 그름과
무겁고 가벼움은
서로 다른 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결정을 내린 뒤 찾아오는 슬픔을
그 결정이 잘못됐다는 증거로 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결정한 것의 의미를
뒤늦게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보며 냉정하다고 말한다.
수백 명을 정리한 CEO.
한 사업을 없앤 창업자.
위험한 선택을 한 의사.
한 시대의 방향을 결정한 사람.
결정하는 장면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모든 사람이 돌아간 뒤의 밤.
결과가 확정된 뒤의 주말.
몇 달이 지나 우연히 옛 사진을 발견한 순간.
그때 비로소 그 결정의 감정이 도착할 수도 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다.
단지 감정을 느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먼저 결정하고,
먼저 책임지고,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자신에게 미뤄두었던 감정을 받는다.
큰 결정에는 가끔
늦게 도착하는 감정이 있다.
나는 그것을
감정의 결제일
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