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온도
여름 새벽 4시, 비 온 뒤의 청량한 바닷가 |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온도 여름 새벽 4시, 비 온 뒤의 청량한 바닷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보통 아티스트 이름을 댄다. 한로로, HONNE, wave to earth.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건 특정 아티스트가 아니라 어떤 “온도”다. 그 온도를 가진 곡이라면 누가 부르든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온다. 그 온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온도
여름 새벽 4시, 비 온 뒤의 청량한 바닷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보통 아티스트 이름을 댄다. 한로로, HONNE, wave to earth.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건 특정 아티스트가 아니라 어떤 “온도”다. 그 온도를 가진 곡이라면 누가 부르든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온다.
그 온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 장면을 그려본다
여름 새벽 4시쯤. 창문은 열려 있고,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공기는 살짝 차갑다. 방은 어둡고 조용한데, 바깥에서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와 커튼이 천천히 움직인다.
여기에 한 장면을 더해야 완성된다. “바닷가”, 또는 “비가 막 그친 직후의 거리.”
새벽 바닷가에서는 수평선이 살짝 밝아오고, 파도 소리가 멀리서 규칙적으로 들린다. 비 온 뒤 거리는 공기가 씻겨 투명하고, 가로등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어른거린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 “무언가가 한 번 지나간 직후의청량함”이다. 파도가 빠진 뒤의 모래, 비가 쏟아진 뒤의 거리. 격렬한 게 끝나고 남은 잔잔함. 그래서 그 안에 안도감이 깔려 있다. “지나갔다”는 감각.
사운드의 결
이 온도를 가진 곡들은 사운드도 닮아 있다.
보컬은 멀리서 들리듯 살짝 떨어져 있다. 감정을 쏟아붓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담담하게 부른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마음에 닿는다.
악기들은 빽빽하지 않게 띄엄띄엄 놓여 있다. 사이사이로 공기가 통한다. 잔향이 길어서 공간이 넓게 느껴진다. 좁은 방이 아니라 탁 트인 곳에서 부르는 듯한 거리감.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비워낸다.
시원함, 그게 핵심이다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한 단어를 고르라면 — “시원함“, 또는 “청량함”.
답답하지 않고, 무겁지 않고, 습하지 않다. 끈적하게 감정을 짜내지 않는다. 발라드처럼 가까이서 호소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바람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우울하지 않다. 아련한데 우울하지 않고, 잔잔한데 답답하지 않고, 밝은데 마냥 밝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딘가의 온도.
결국 이 곡들이 만들어내는 감각은 — “괜찮아질 것 같다”는 예감. 지금 당장 행복하진 않아도 곧 그렇게 될 것 같은. 비가 그친 뒤 공기처럼, 파도가 빠진 뒤 모래처럼.
이 온도의 곡들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 거야’가 정확히 이 온도다. 멜로디는 비교적 밝고 가볍지만 가사는 마냥 가볍지 않은. HONNE의 곡들도 마찬가지다. 멜랑콜리한 사운드 위에 따뜻한 메시지가 얹어진다.
이 결을 따라가면 wave to earth가 있고, 일본 쪽으로는 Lamp, mei ehara, Vaundy, 그리고 녹황색사회(緑黄色社会)가 있다. 한국에서는 Adoy, 백예린이 비슷한 공기를 만든다.
특히 녹황색사회는 이 온도의 정수에 가깝다. 長屋晴子의 청량하면서 살짝 허스키한 보컬, 밴드 사운드인데도 답답하지 않고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편곡. ’식사(Mela!)’나 ‘사랑이야’ 같은 곡들이 정확히 그 “잔잔한데 시원한, 그리고 괜찮아질 것 같은” 예감을 들려준다.
장르적으로 따져보면 결국 “시티팝”의 DNA다. 여백 있는 편곡, 건조하고 청량한 보컬, 멜랑콜리하지만 산뜻한 무드. 80년대 도쿄의 야경에서 시작된 그 감각이 지금 새벽 바닷가의 공기로 흘러와 있다.
그래서
나는 슬픈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련한 청량함은 최고로 친다.
나는 “비에 씻긴 청량한 공기”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 한 번 지나간 자리에 남은 정적, 그 안에 스며있는 옅은 빛, 그리고 곧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
그 온도의 노래가 있으면 꽤 숨이 시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