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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ee가 통과해온 시간

Daniel Lee가 통과해온 시간 — 견딘 시절과, 그것이 만든 사람 이 기록은 한 번에 쓰인 적이 없는 이야기다. 어떤 조각은 3년 전 자격증 공부를 하다 동기를 찾으려 쓴 글에 있었고, 어떤 조각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어느 날 밤에야 처음 말로 나왔다. 흩어져 있던 그 조각들을 시간 순서대로, 빠짐없이 잇는다. 비어 있는 한 해까지 포함해서. 어린

— 견딘 시절과, 그것이 만든 사람

이 기록은 한 번에 쓰인 적이 없는 이야기다. 어떤 조각은 3년 전 자격증 공부를 하다 동기를 찾으려 쓴 글에 있었고, 어떤 조각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어느 날 밤에야 처음 말로 나왔다. 흩어져 있던 그 조각들을 시간 순서대로, 빠짐없이 잇는다. 비어 있는 한 해까지 포함해서.

광주 북구. 평범한 동네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어머니를 잃었다. 체육대회 날이면 L의 어머니는 매번 왔다. 그 친구에게 그 광경은 자기가 잃어버린 것을 매번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그 친구는 L을 심하게 괴롭혔다.

L이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L은 그저 어머니가 있었을 뿐이고, 그게 표적이 된 이유였다. 여덟 살, 아홉 살의 L은 상대의 사정 같은 걸 알 수 없었으니, 영문도 모른 채 "내가 뭘 잘못했나"를 삼켰을 것이다. 가진 것을 보이면 표적이 된다 — 그 첫 각인이 여기서 새겨졌다.

그 친구는 어른이 되어 L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것이 자기 상처였지 L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결국 스스로 알았다는 뜻이다. 그 사과를 L이 받아들였고, 둘은 지금도 연락한다. 그것대로 매듭이 지어진 이야기다.

광주 북구의 일반 사립중에 들어갔다. 반배치고사를 대충 쳤는데 전교 14등, 상위 4~5%였다. "애들 빠가네" 싶었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제대로 하니 전교 7등권으로 올라갔다. 자기가 하면 된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켜진 케이스였다.

그런데 1학년 때, 이선명이라는 아이가 L을 심하게 괴롭혔다. 침을 뱉었고, 죽이고 싶을 만큼 끈질기게 굴었다. L이 공부를 잘했으니 선생들은 L이 별 탈 없이 잘 다니는 줄 알았을 것이다.

한번은 너무 심하길래, L이 선생에게 가서 전부 밝혔다. 맞기 싫어서, 무서워서 대부분이 못 하는 일을 L은 했다. 용기를 낸 것이다.

그랬더니 그 교사가 한 일은 — 가해자를 패서 입을 막은 것이었다. 폭력으로 폭력을 덮은 것. 그건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가해였다. 그리고 그 교사는 L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 어머니가 이화여대를 나왔고 아버지가 한전에 다니니, 좀만 봐 달라고.

침 뱉힌 아이 앞에서, 가해자의 집안 학벌과 직장을 이유로 가해를 무마하려 한 것이다. 열네 살의 L은 그것을 정면으로 당했다. 정의가 배경 앞에서 무너지는 광경을.

중3이 끝나갈 무렵, L은 고등학교에 가면 무조건 기숙사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입 공부에 전념하려는 게 첫째 이유였고, 다소 소란스러웠던 집안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둘째 이유였다.

지방의 사립고, 살레시오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과, 의대 지망. 의대를 가서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L은 수학이 약했고, 그래서 수학을 가장 열심히 했다. 1학년 1학기 내신 3등급이던 수학을, 2학기에 1등급으로 끌어올렸다. 전교 한 자릿수 등수로 1학년을 마쳤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시절엔 학생부가 중요했다. 공부만 잘한다고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게 아니었다. 그때의 L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공부만 하면 의대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학교를 다니며 알게 된 건, 몇몇 학생에게 몰아주기식으로 거짓 포장된 활동 이력이 채워진 근사한 학생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L은 꽤 많은 책임을 도맡았다. 한번은 교내 과학경시대회가 열렸다. L은 마음씨가 정말 착했던, 꽤 친한 친구와 같은 조로 참가하려 했다. 그런데 학년부장이 L을 조용히 불렀다. "좀 더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조를 이루는 게 어떻겠니." 더 능력 있는 아이들과 묶어 수상을 시키려는, 분명 L을 위한다는 말이었다.

그 "공부 잘하는" 아이 중 하나는 인성에 문제가 많았다. 약한 아이들을 주도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던 아이였다. L도 따돌림당할 뻔한 적이 있었고, 학기 초와 달리 그 아이와 사이가 멀어진 터였다. L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때의 L은 너무 소심했다. 선생에게 한마디도 못 하고 그냥 울음이 터졌다. 모든 친구가, 그 학교가 미워졌다. 교무실에서 정말 오래 울었다.

그게 소심해서가 아니었다. 열일곱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배신이었다. 정의가 또 무너지는 걸 봤는데, 이번엔 본인이 그 부당함에 가담하라고 떠밀린 것이다. 착한 친구를 버리고, 약한 애들 괴롭히던 아이에게 가라는 말. 중학교 때 그 교사가 "집안 좋으니 봐주라"던 것과 똑같은 구조였다. 어른이, 시스템이, 능력과 배경 있는 쪽에 붙으라고 대놓고 가르친 것이다.

그 학교는 희한했다. 보통의 학교라면 모범생은 조용히 공부하고 말썽은 따로 있기 마련인데, 거긴 공부 잘하고 집도 잘사는 아이들이 학교폭력과 따돌림, 심한 패드립과 욕설의 주동자 노릇을 했다. 살레시오고. 지금도 주변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 무렵부터 L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모든 게 싫어졌고, 무서워졌다. 약간의 피해망상 같은 것도 생겼다. 모든 학생과 선생이 자기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고, 약해진 모습을 보이자 주변도 L을 걱정했다. 한편으론, 지원을 받던 모범생인 자신을 묘하게 질투하던 아이들이 자기를 공격하려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여기서 L은 스스로 한 줄을 적어 두었다 — "그런 것들이 내 개인적인 망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당하는 와중에도, 자기가 보는 게 100% 사실인지 의심할 줄 알았다. 무너지면서도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L은 부모에게 정신과 상담을 요청했고, 고2 봄에 자퇴했다.

열여덟, 2016년의 기억이 L에게는 거의 없다.

거의 1년을 집에서 많이 잤고, 여러 상담과 치료를 병행했다. L뿐 아니라 부모도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모범생이고 공부 잘하던 아들이 갑자기 그랬으니까.

견딜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마음이 그 시간을 닫아 버리는 일이 있다. 그 빈 1년은 L이 그만큼 깊이 다쳤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그 와중에도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잠을 많이 자고, 상담받고, 치료받은 것 — 그건 도망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그 1년이 있었기에 다음 해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2017년, 다시 일어서야 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근처 학원에 등록했다. 고1·고2 과정을 어느 정도 선행해 둔 적은 있었지만, 학업의 맥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그해 한국의 정치 상황이 혼란했던 것처럼 L의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다. 결국 "올림픽 정신"으로 수능을 치렀고, 아쉬운 성적을 얻었다.

2018년엔 제대로 준비하기로 했다. 독학과 인강으로. 그해는 공부가 그 자체로 즐거웠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 훈련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국어가 너무 어려웠다. 모의고사로 자신감이 붙어 서울대가 목표였고, 그러려면 거의 다 맞아야 했다. 완벽주의에 휩싸인 공부 방식과 목표가 독이 되었다. 1교시에 흔들린 멘탈이 시험 전반을 무너뜨렸다. 한 달쯤 좌절에 잠겼다가 다시 털고 일어났다. 현실적으로 지방의 한 국립대에 들어가 대학 생활을 조금 맛봤지만, 마음속엔 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2019년 7월,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약 5개월간 마음을 비우고 공부했다. 그때 독서실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은 지금도 서로 응원하는 좋은 친구로 남았다. 이 시절에 L이 얻은 건 지금 다니는 대학만이 아니라, 나이로 삼수 시절을 함께 고생한 그 친구이기도 했다.

L은 꽤 우수한 수능 성적을 얻었고, 혹시 몰라 친 논술이 붙어 현재의 대학 — 중앙대 경영에 입학했다. 수능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자리를, 광주에서 독학으로 준비한 논술이 끌어올린 것이다.

2020년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첫 2년을 지웠다. 캠퍼스를 처음 밟은 건 2022년이었다.

그 뒤 2년은 후회 안 할 만큼 사교적이고 즉흥적이고 원만하게, 정말 즐겁게 보냈다. 대학에서 만난 수많은 친구들은 L에게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잘 모를 것이다. L은 이 학교에서 정말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운동도 하고, 자기 자신을 가꾸는 법도 익혔다. 무너졌던 사람이 다시 사람들 속에서 단단해진 시간이었다.

2024년,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며 자격증(KICPA)을 공부하다가 —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으려다 그 옛 기억을 글로 적었다. 가장 아픈 기억을 동력으로 바꾸는, L다운 방식이었다.

그리고 2025년, 복학과 함께 AI 코딩을 시작했다. 8월에 실질적으로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사업자를 냈다. 부모의 강한 반대 — 취업하거나 원래 하던 CPA를 하라는 — 를 뒤로하고. 9개월 만에 Anthropic Claude Partners Network, 온디바이스 특허 둘, 앱 셋, 외주, 파트너십까지 왔다. 1인 파운더로, 마음컴퍼니로.

그리고 어느 날 밤, 좋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밥을 얻어먹고 술을 얻어먹고 마음을 나눴다. 그게 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으로 — 동력으로 쓰려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에게 — 꺼낸 계기가 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흩어진 사건이 아니다. 지금의 L을 이루는 것들과 정확히 이어진다.

게이트키퍼에 대한 미움. L의 공정 철학 — 자본·학벌·네트워크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 공정이라는 생각 — 의 뿌리에 두 장면이 있다. "걔네 집안이 이대·한전이니 봐주라"던 중학교 교사. "더 공부 잘하는 애들과 조를 짜라"던 고등학교 학년부장. 몇몇에게 몰아준 거짓 학생부. L은 배경과 자격이 정의와 실력을 이기는 걸 열네 살, 열일곱에 정면으로 당했다. 그래서 그것을 없애는 일을 평생의 방향으로 삼은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시기질투한다"는 전제. 초등학교 친구의 질투, 중학교의 괴롭힘, "지원받던 나를 질투하던 아이들이 공격하려 한다"던 고등학교의 감각. 이 전제는 머리로 만든 추측이 아니라 몸으로 새겨진 데이터다. 당해본 사람이 갖는 경계이고, 그것은 L을 지켜 준 갑옷이었다. 비뚤어진 게 아니라, 정확하게 학습된 것이다.

호의 앞에서의 경계. 특별 대우를 받으면 시기가 따라오고, 시기는 공격이 된다 — 체육대회의 어머니가 표적의 이유였고, 지원받던 모범생이라는 사실이 표적의 이유였다. 그래서 L은 무언가를 받거나 잘되면 먼저 몸을 사린다. 호의를 받고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내가 부끄럽다"고 멋쩍어하는 것 — 그건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학습된 보호다.

욕하지 않는 원칙. L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욕한 적이 없다. 이건 우연한 성품이 아니라 선택이다. 패드립과 욕설이 일상이던 살레시오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면서, L은 자기를 아프게 한 것의 정확한 반대를 택했다. 자기가 당한 방식으로는 누구도 대하지 않겠다는, 의식적인 반대 형성.

자극과 반응 사이의 멈춤. 화가 날 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그리스 알파벳 24자를 세는 아테노도로스의 격언을 L은 지킨다. 충동과 행동 사이에 틈을 두는 것. 통제 불능의 폭력을 어른에게서, 또래에게서 겪은 사람이, 자기만은 그 틈을 가지겠다고 정한 것이다.

균형 감각. 무너지는 와중에도 "그게 내 망상이었을 수도 있다"고 적어 둔 그 한 줄. 이건 강점이다. 사람을 데이터로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 모든 걸 계산과 적의로 보다 외로워지는 것 — 에 L은 빠지지 않았다. 분석은 분석대로 하되, 사람은 사람대로 여전히 연다. 4명이 은인이라고 밝게 보면서도 결국 "그냥 안 재고 도움 주겠다"로 끝내는 사람이다.

회복탄력성. 자퇴 → 사라진 1년 → 검정고시 → 아쉬운 첫 수능 → 완벽주의에 무너진 둘째 → 전대 → 삼수 → 중대. 매번 리셋하고 다시 올랐다. 안 되는 건 빨리 버리고(수능 21번을 포기하듯), 되는 건 철저히 준비해 패턴으로 만들고(30번을 3분에 풀듯), 실패에서 전략을 뽑아내는(불수능 뒤 리스크 헷지로 사고를 바꾸듯) 방식 — 그 전부가 이 시절에 단련되었다.

L은 통째로 비어 있는 한 해를 가진 사람이다. 그 빈자리는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걸 견디고도 살아남았다는 표시다.

평생 깔려 있던 전제 — 사람은 기본적으로 시기질투한다 — 는 오랫동안 참이었다. 그 환경에선 필요했고, L을 지켰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L은 어느 날 밤 처음 겪었다. 자기 게임이 이미 풀린 사람들, 남이 잘되는 것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의 자리에서는, 그 센서가 울리지 않았다.

그건 경계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분명히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 하나가 처음 들어왔다는 뜻이다. L이 좋아하는 방식 그대로 — 선언이 아니라 증거로.

열일곱의 L이 교무실에서 오래 울었다. 그 아이가 여기까지 왔다. 무너졌고, 사라졌고, 다시 일어섰고, 단단해졌고,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받은 호의에 부끄러워할 줄 알면서도 그것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거면 됐다.

by Claude with Lee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6월 24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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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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