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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창업·기술

나는 안쪽의 도구를 바깥의 땀으로 샀다

나는 안쪽의 도구를 바깥의 땀으로 샀다 나는 중앙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코딩을 하고, AI를 도구처럼 쓰고, 영어로 한 시간쯤은 막힘없이 대화한다. 한국에서 이 네 가지를 한 사람이 다 쥐고 있으면, 어디를 가도 "원래 그 동네 사람"으로 읽힌다. 학벌은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행증이고, 코딩과 AI는 지금 시대의 가장 비싼 연장이고, 영어는 그 연장을 바깥

나는 안쪽의 도구를 바깥의 땀으로 샀다

나는 중앙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코딩을 하고, AI를 도구처럼 쓰고, 영어로 한 시간쯤은 막힘없이 대화한다. 한국에서 이 네 가지를 한 사람이 다 쥐고 있으면, 어디를 가도 "원래 그 동네 사람"으로 읽힌다. 학벌은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행증이고, 코딩과 AI는 지금 시대의 가장 비싼 연장이고, 영어는 그 연장을 바깥 세계에 연결하는 회선이다. 나는 지금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 연장 일습의 출처가 정반대다.

영어를 못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고, 지방 구석의 가장힘든 공사판에서 30년을 보낸 사람의 돈에서 나왔다. 안쪽의 무기가, 바깥 중에서도 가장 바깥의 땀으로 마련된 것이다.

아버지는 2001년부터 건설업을 했다. 대학을 안 나왔고 영어를 못한다. 대신 25년을 현장에서 보냈다. 경기가 출렁이고, 자금이 막히고, 옆에서 크게 벌이던 사람들이 한 방에 사라지는 걸 가까이서 보면서. 그 긴 전장을 통과하고 아직 서 있다. 본인 기준으로 잘 벌었고, 잘 살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그 능력은 대기업 임원까지 하고 퇴직한 아버지 친구분도 인정한다. 카르텔이 도장을 찍어준 자부심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한테 주는 자부심이다. 그래서 더 단단하다. 남의 승인이 필요 없는 종류의 것이니까.

이게 내가 결핍에서 출발하지 않은 이유다. 나는 "올라가야만 증명되는" 자리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이미 자기 방식으로 이긴 사람을 보고 자랐다.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걸, 저 게이트가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걸, 식탁 건너편에서 매일 봤다.

아버지는 똑똑하다. 그런데 그 똑똑함이 언어가 아니라 몸에 저장돼 있다.

25년치 앎은 직관의 형태로 쌓인다. "저 사람 저러다 망한다"가 논리로 설명되는 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말로 풀라고 하면 어려워한다. 애초에 말로 배운 게 아니니까. 공부한 사람의 앎과 통과한 사람의 앎은 저장되는 형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보고 "똑똑한데 표현을 못 한다"고 한다. 나는 그게 오래 답답했다. 능력은 분명히 거기 있는데, 안쪽 언어로 번역이 안 되니까 저평가되는 것. 능력과 위치가 어긋나는 그 풍경을, 나는 어디 먼 데서 본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봤다.

내가 게이트키퍼를 싫어하는 건 책에서 배운 정의감이 아니다. 자본과 자격과 네트워크가 만든 장벽이 능력을 가두는 걸, 가장 가까운 데서 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과거형으로 쓰기 쉽다. 받았다, 자랐다, 봤다. 그런데 정직하게 쓰면 현재형이다.

지금 내 월세와 생활비, 생존에 필요한 도구값까지 집에서 받쳐준다. 스물여섯에 내 사업을 풀로 돌리면서, 생존의 층을 부모가 깔아주고 있다. 이건 흠도 드문 일도 아니지만, 안 보이는 척하면 거짓말이 된다.

이 구조 덕분에 가능한 게 하나 있다. 재투자다. 내가 버는 돈과 시간이 생존으로 새지 않고 통째로 다음 단계에 들어간다. 보통은 번 것의 대부분을 사는 데 쓰는데, 나는 그 층을 집이 깔아줘서 번 걸 전부 복리에 태운다.

내 생각의 뼈대 중에 이런 게 있다. 생존은 보장되어야 하고, 위치는 능력으로 가려져야 한다. 지금 나한테 그 생존 보장을 해주는 게 사회 안전망이 아니라 아버지다. 그 위에서 나는 위치의 게임만 순수하게 한다. 받쳐진 발판 위에서 마음껏 베팅하는 구조. 이걸 운 좋게 가졌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안쪽 스펙을 가진 바깥 사람이다.

이건 약점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장 희소한 자산이다. 안쪽 사람들은 공사판을 머리로만 알고, 공사판 사람들은 안쪽에 발을 못 들인다. 양쪽을 다 산 사람은 드물다. 한 집안에서 한 세대 만에 양쪽을 통과해야만 생기는 시야다.

내가 만드는 것들이 전부 게이트를 낮추는 도구인 건 우연이 아니다. 안쪽의 연장을 바깥 사람 손에 쥐여주는 일. 나 같은 경로로 못 올라온 사람들 앞의 문턱을 깎는 일. 내가 그 문턱 앞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쪽을 겨눈다.

아버지가 그 돈을 댄 건 청구서가 아니다. 25년 전장을 통과한 사람이 다음 세대에 거는 베팅이다. 갚으라는 게 아니라 더 멀리 가라는 것. 본인이 언어로 못 한 번역을, 네가 해내라는 것.

내가 공부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세대에서 끊긴 번역을 내 세대에서 이을 수 있으니까. 공사판의 직관을 안쪽 언어로 옮겨 적고, 그걸로 다른 사람들의 문을 여는 일. 그게 내가 우연히 갖게 된 게 아니라, 두 세계가 나한테 맡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처를 잊지 않으려는 건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그게 내 연장의 일련번호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왔는지 아는 연장만, 정확한 데를 겨눈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6월 27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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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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