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또 내 컴 켜놨네.”
동생의 아주 비싼 그래픽카드를 훔쳤다 | “형 또 내 컴 켜놨네.” 내 위대한 첫 번째 AI 인프라 최적화는 깃허브 오픈소스나 클라우드 크레딧이 아니라, 당시 공익근무요원이었던 동생의 일과표 위에서 완성되었다. 낮 시간에 동생이 집을 비우는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해,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PC 전원에 손을 대기 직전 GPU를 선점하는 것. 그것이 MAEUM Runtime초기 7개월을 버텨낸
“형 또 내 컴 켜놨네.”
내 위대한 첫 번째 AI 인프라 최적화는 깃허브 오픈소스나 클라우드 크레딧이 아니라, 당시 공익근무요원이었던 동생의 일과표 위에서 완성되었다.
낮 시간에 동생이 집을 비우는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해,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PC 전원에 손을 대기 직전 GPU를 선점하는 것. 그것이 MAEUM Runtime초기 7개월을 버텨낸 나의 원시적인 ‘서버 인프라’ 구조였다.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화면을 뺏을 수 없다. 그러니 시작 자체를 봉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이 일화를 들은 누군가는 동생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내 대답은 명확했다.
“자기계발이었으면 비켜줬다. 게임이었으니까 안 비켰다.”
죄책감 없는 배려심 결여가 아니다. 한정된 유한 자원을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사람에게 우선 배분한다는 지극히 냉정하고 효율적인 판단. 훗날 비즈니스를 관통하게 될 ‘상인 정신(Merchant Mindset)’의 원형이바로 그 좁은 방구석, 동생의 그래픽카드 위에서 잉태된 셈이다.
이 ‘선점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내 사업 패턴으로 확장되었다. 지금도 나는 중요한 미팅이나 계약을 앞두고 상대방과 주변의 정보를 바닥이 보일 때까지 전부 털어낸다. GPU 선점이 곧 정보 선점이고, 판이 짜이기 전에 내가 먼저 공간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상대가 패를 돌리기 전에 이미 내 시나리오대로 판을 구축해 두는 것. 내 모든 전략의 출발점은 늘 ‘먼저 찾고 먼저 대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악한 선점 서사에는 거대한 반전이자, 지독한 부끄러움이 숨어 있다.
그 그래픽카드는 부모님이 사준 것도, 형인 내가 보태준 것도 아니었다. 문과생인 동생이 제 손으로 직접 주식을 굴려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스스로 벌어 구축한, 온전한 '동생의 피땀 눈물'이자 사유재산이었다.
그 애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모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시장에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있고, 자산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이 제 돈으로 산 소중한 컴퓨터였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자기 자원을 가로채고 장황한 사업 훈수를 두는 형을 향해, 동생은 진짜로 판을 엎거나 정색하며 막아서지 않았다. 겉으로는 저항하는 척하면서도, 들으면 졸려 죽겠는 형의 잔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다.
나는 내가 똑똑해서 자원을 선점한 줄 알았다. “더 가치 있는 곳에 배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대며 내 행동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사실은 동생이 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소중한 제 자산을 온전히 양보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독한 효율주의자인 내가 결국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순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재밌는 건, 이 치열한 자원 쟁탈전이 가능했던 진짜 이유가 내 동생의 기묘한 캐릭터성에 있었다는 점이다.
문과 출신인 동생은 형이 방구석에서 코드를 짜며 무슨 거창한 짓을 하는지 자세히 모른다. 그저 틈만 나면자기 컴퓨터를 가로채는 지독한 잔소리꾼 형일 뿐이다. 내가 옆에서 사업과 인생에 대한 장황한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 동생은 절대 중간에 말을 끊지 않는다. 예의를 갖춰 끝까지 다 들어준다. 다만, 들으면서 엄청나게 졸려할 뿐이다. 머리로는 형의 권위를 존중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해 눈풀린 표정으로 꾸벅꾸벅 조는 식이다.
GPU를 빼앗겨도 툴툴거리고 말 뿐, 진짜로 판을 엎거나 정색하며 막아서지 않았던 것도 같은 결이다. 겉으로는 저항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다 내어주는 순한 성정.
만약 동생이 독하게 맞서 싸우는 캐릭터였다면 이 GPU 일화는 그저 흔하디흔한 형제 싸움의 진흙탕 서사로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다 들어주면서 졸려하는 동생 덕분에, 자원을 악착같이 뺏어 쓰던 형의 선점은 얄미우면서도 어딘가 정겨운 서사로 치환된다.
철저하게 먼저 움직여 공간을 장악하는 형의 OS와, 밀고 들어오는 자극을 굳이 막지 않고 흘려보내는 동생의 OS. 우리는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운영체제를 탑재했기에 역설적으로 부딪히지 않고 완벽하게 굴러갔다.
동생은 여전히 내가 무슨 대단한 아키텍처를 만드는지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든 못하든, 내 비즈니스의 첫 번째 벤치마크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켜려던 동생의 손가락보다 반 보 앞서 작동했던, 그 치열했던 게임 시간 위에서 돌았다.
그러나 지독한 효율주의자인 내가 결국 또 한번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한 동생의 눈빛을 마주할 때다.
나는 늘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남보다 먼저 정보를 털고, 판을 짜고, 자원을 선점해 무언가를만들어내야만 내 존재 가치가 입증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성취를 쌓아 올리면서도, 정작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늘 길을 잃었다. 내게 삶은 늘 다음 단계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미완성의 퀘스트였으니까.
하지만 내 장황한 잔소리를 꾸벅꾸벅 졸아가면서도 끝까지 들어주던 동생은 달랐다.
그 애는 무언가를 독하게 빼앗거나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형에게 GPU를 양보하고 툴툴거리며 돌아서서도, 자기만의 작은 공간에서 금세 온전한 평온을 찾아내곤 했다. 거창한 비즈니스 모델이나 위대한 아키텍처 없이도, 동생은 이미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 채워진 영혼에서 나오는 여유와 무해함 앞에서, 나는 종종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원을 더 높은 값에 쓸 사람에게 배분한다는 나의 냉정한 오만함은, 어쩌면 결핍에서 비롯된 악착같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행복이 뭔지 몰라 세상을 아키텍처로 조립하려던 형과, 이미 행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알고 있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던 동생.
그 방구석 자원 쟁탈전의 진짜 승자는, 처음부터 그래픽카드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쥐고 있던 동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