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연대기
문득 든 생각, 성공이란 무엇일까 | 아버지,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연대기 늦은 밤, 방바닥을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를 바라봤다. 단단한 외골격과 여러 개의 다리, 위험을 감지하면 몸을 숨기는 오래된 본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작은 벌레는 수억 년 전의 조상과 비교해도 생존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이 벌레는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환경에 몸을 맞추며 살아남아 내 눈
늦은 밤, 방바닥을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를 바라봤다.
단단한 외골격과 여러 개의 다리, 위험을 감지하면 몸을 숨기는 오래된 본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작은 벌레는 수억 년 전의 조상과 비교해도 생존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이 벌레는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환경에 몸을 맞추며 살아남아 내 눈앞에 보인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넓은 우주의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한낱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낱 벌레보다 무슨 대단한 우위를 가졌길래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을까
오랜 역사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 즉 인류 역시 스스로를 지키고 세대를 잇는 과정에서 인간의 육체야말로 가장 중요한 형질이었을 것이다.
추위를 견디는 몸, 맹수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다리, 질병을 이겨 내는 면역력이 삶과 죽음을 갈랐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몸을 바꾸는 대신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을 기르는 대신, 상징과 지위를 상징하는 옷을 만들었다.
맹수보다 빨리 달리는 대신,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여 운송수단을 발명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얻는 대신,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들을 지었고, 이는 고도 문명 체계의 상징이다.
이에 모자라 인간은 사고와 사유의 확장을 위해서 컴퓨터와 AI 라는 도구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간은 혼자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생존에 유리한 능력은 점점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신뢰를 쌓는 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유연성,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고 해결하는 사고력. 이는 모두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 점차 추상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진화는 유전자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세대를 잇는 언어와 교육, 관계와 문화를 통해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대개 생물학적 번식은 DNA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인간은 몸만 물려주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오며 얻은 생존의 지혜도 함께 건넨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실패를 견디는 힘,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 말로 가르친 것뿐 아니라 매일의 행동으로 보여 준 것까지 다음 세대의 내면에 남는다.
유전자는 몸을 만들지만, 기억은 한 사람의 삶을 계속 움직인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노동을 밥으로 바꾸고, 시간을 집과 옷과 교육으로 바꾸며, 한 생명이 세상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몫을 감당해 온 주변 모든 존재의 이름이다.
세상은 성공을 숫자로 측정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 얼마나 널리 이름을 알렸는지 평가한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 인류는 오랜 기간 역사속에서 그들의 희노애락으로 바로 그 성공을 증명해왔다.
이는 매우 본질적이다.
당신은 다음 생명을 살아가게 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대답을 끝냈다.
그 돈은 단순히 소비되고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밥이 되었고, 집이 되었으며, 옷과 책과 교육이 되었다. 아픈 날의 치료가 되었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 사람의 노동은 그렇게 다른 한 사람의 생존과 가능성으로 변환되었다.
사유는 결국 생존 이후에야 가능하다.
누군가 오늘의 무게를 견뎌 주었기에 다음 세대는 내일을 상상할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노동으로 내어 주었기에 다른 누군가는 배우고, 꿈꾸고, 세계를 질문할 수 있었다.
그 존재의 이름이 바로 우리 곁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단지 생명을 탄생시킨 사람이 아니다.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고, 가르치며, 아직 혼자 설 수 없는 존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성공은 세상이 매긴 순위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 정설일지도 모른다.
한 인간이 자신의 시간과 노동, 책임과 사랑을 다음 세대의 미래로 바꾸어 냈다면, 그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과업을 이미 이루어 낸 것이다.
수십억 년 전 최초의 생명으로부터 이어져 온 바통은 단 한 번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은 자신의 몸을 복제하며 그 바통을 다음 세대에 넘겼다.
기억을 전하고, 지혜를 전하며, 삶을 견디는 태도와 책임의 방식을 전한다. 한 세대의 노동은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되고, 한 사람의 삶은 또 다른 사람의 가능성이 된다.
그 긴 연대기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하나의 개인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을 미래의 생들의 토대로 바꾸는 존재의 고유명사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는 가장 오래된 것은 재산도, 지위도, 세상의 명성도 아니다.
자식의 기억, 그리고 가족의 기억일 것이다.
기억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인물로 남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식의 말투와 습관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위기의 순간 내리는 판단 속에 아버지의 일부가 계속 살아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가르친 말뿐 아니라, 묵묵히 견뎌 낸 시간까지 자식의 삶 어딘가에 스며들어 다음 시간을 움직인다.
그 순간 아버지의 삶은 한 사람의 삶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식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가고, 자식의 선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꼭 세상 전체에 이름을 남길 필요는 없다.
단 한 사람의 삶에 자신을 남겼다는 사실 하나로 성공이라는 이름을 남긴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이 아버지가 되었고, 그 자식이 아버지를 기억한다면, 그는 이미 성공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앞서 나갔는지는 더 이상 본질이 아니다.
한 생명을 먹여 살렸고, 보호했고, 자신의 시간을 그 생명의 미래로 바꾸었으며, 마침내 그 존재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책임을 다한 아버지는 성공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무언가를 더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되고, 자식의 삶 속에 기억되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 아닐까.
방 안의 벌레는 오늘도 수억 년 전과 비슷한 몸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몸을 넘어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른 인간의 미래로 바꾸는 존재를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세상에 이름을 남겨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의 삶에 자신을 남김으로써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