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가능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요즘 가장 놀라운 것은 어떤 사건의 결과가 아니다. 그 일이 운명이었는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일이었는지, 혹은 말도 안 되게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었는지도 사실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더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그런 가능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사람은 자신이 살아본
가능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요즘 가장 놀라운 것은 어떤 사건의 결과가 아니다.
그 일이 운명이었는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일이었는지,
혹은 말도 안 되게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었는지도 사실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더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그런 가능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사람은 자신이 살아본 세계를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은 과장이라고 생각하고,
본 적 없는 관계는 이야기 속 설정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떤 감정은 시간이 쌓여야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오래 보고,
하나씩 알아가고,
수많은 장점과 단점을 확인하고,
그렇게 충분한 근거가 모여야 비로소 어떤 확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인 다음에 결과가 온다고 생각했다.
관찰하고,
판단하고,
이해한 뒤에,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반대의 순서도 존재할 수 있었다.
결론이 먼저 도착하고, 이유가 나중에 충족되는 경우.
처음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아주 빠르게 어떤 방향을 직감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원래 있던 감각에 하나씩 이유가 충족되기 시작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런 부분 때문이었구나.
내가 의식적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이미 어딘가에서는 읽고 있었던 걸까.
물론 그렇다고 처음의 감각이 반드시 옳다는 뜻은 아니다.
직감은 틀릴 수도 있고,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도 있으며,
우연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이미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가장 놀라웠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 움직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지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자기 자신만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 앞에서의 나,
아직 겪지 않은 사건 속의 나,
아직 선택하지 않은 세계에서의 나는
나조차 모른다.
그래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때때로 그 사람을 알아가는 일보다 더 큰 사건이 된다.
내 안에 존재하지만 한 번도 꺼내지지 않았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특별해서일 수도 있고,
타이밍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말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나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굳이 지금 모든 것을 규정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이전보다 세계를 조금 더 넓게 보게 되었다.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경로 하나가 생겼다.
전에는 영화나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능성이 100%가 된 것은 아니다.
단지 0%라고 믿었던 것이 0%가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세계 전체를 바꾼다.
지도에 없던 길 하나가 생긴 것과 같다.
당장 그 길로 갈 필요는 없다.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길도 존재한다.
나는 요즘 그것이 가장 신기하다.
운명을 믿게 된 것도 아니고,
우연을 믿게 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됐다.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무언가를 얻는 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사실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버리는 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