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 한국 시스템. 바뀌면 된다.
가끔은 자기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사람이 드문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아쉽다. 내가 말하는 ‘인생의 패배’는 돈을 못 벌거나 좋은 대학을 못 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그런 외형적 기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성공을 추구해온 나라에 가깝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71%로 OECD 평균 48%를 크게 웃돌며
가끔은 자기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사람이 드문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아쉽다. 내가 말하는 ‘인생의 패배’는 돈을 못 벌거나 좋은 대학을 못 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그런 외형적 기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성공을 추구해온 나라에 가깝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71%로 OECD 평균 48%를 크게 웃돌며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등학교조차 마치지 않은 25-34세 비율은 1%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거의 모두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학력을 쌓아왔다. (OECD)
그런데 이상한 데이터가 동시에 나온다. OECD 성인역량조사에서 한국 16-65세의 문해력·수리력·적응적 문제해결력은 모두 OECD 평균보다 낮았다. 특히 적응적 문제해결력에서는 성인의 37%가 Level 1 이하였는데 OECD 평균은 29%였고,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생겼을 때 문제를 다시 평가하고 전략을 수정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인 Level 4에 도달한 사람은 한국이 1%, OECD 평균은 5%였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단순히 노년층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16-24세 역시 문해력은 OECD 평균보다 높았지만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평균보다 낮았다. (OECD)
2026년 OECD 한국경제보고서는 이 문제를 더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한국 학생들의 막대한 교육투자가 대학입시 점수를 높이는 방향에 집중되어 있고, 그것이 비판적 사고와 자기주도 학습 역량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OECD는 고부담 시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책을 통한 학습에 지나치게 집중된 구조를 실제 경험과 자기주도 학습 쪽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OECD)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의 부재”를 생각한다. 물론 이 통계들이 “한국인은 철학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측정한 자료는 아니다. 그런 식으로 통계를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돈을 교육에 투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갖췄는데도, 변화하는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대응하는 성인 역량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교육해왔는지 묻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이 정답인가’는 아주 오래 배웠지만, ‘나는 왜 이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따르는 기준은 정말 내 기준인가’를 묻는 훈련에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시간을 쓴 것이 아닌가.
결과 역시 묘하다. 한국은 지난 30년 동안 훨씬 부유해졌고, 더 오래 살게 되었고, 교육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OECD가 2026년에 한국의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삶의 만족도는 2023년 10점 만점에 6.4점으로 OECD 평균 7.3점보다 낮았다.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가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한국은 약 80%, OECD 평균은 약 90%였다. OECD는 한국이 물질적·교육적 성취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삶의 만족, 정신·정서적 웰빙, 사회적 연결에서는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크다고 평가한다. (OECD)
그래서 내가 가끔 한국을 보며 ‘인생 패배자들의 국가 같다’고 느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풀었는데, 정작 자기 인생이라는 문제를 스스로 정의해본 적은 많지 않은 사회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 높은 연봉이라는 외부의 답안지는 그렇게 열심히 따라가면서도,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왜 살아가는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지, 성공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충분히 대화해보지 않은 사람이 다시 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고, 관리자가 되고, 임원이 되고, 관료가 되어 다음 사람에게 똑같은 정답을 전달한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남들도 다 한다”, “이 정도는 해야 성공한 것이다.” 왜냐고 물으면 논리가 아니라 관습이 나온다. 그러면 세대가 바뀌어도 시스템은 그대로 재생산된다.
나는 그게 가장 아쉽다. 학력이 낮은 사회가 아니라 철학이 부족한 고학력 사회, 공부하지 않은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 OECD조차 앞으로의 교육에서 청소년기에 정체성과 목적을 형성하고, 자기성찰과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I가 지식을 대신 찾아주고 정답 후보를 무한히 만들어주는 시대라면 이 능력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OECD)
결국 인생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남이 만들어놓은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상대로 끝까지 질문해봤는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스스로 답을 만들어봤는가. 나는 오히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 서로에게 삶의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라면, 아무리 높은 학력과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그 사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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