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 한국 사회는 왜 개혁을 피할 수 없는가
타산지석 — 한국 사회는 왜 개혁을 피할 수 없는가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의 돌이라도 내 옥을 가는 데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세상을 볼 때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부터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에서 어떤 단어를 뽑아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에서는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의 돌이라도 내 옥을 가는 데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세상을 볼 때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부터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에서 어떤 단어를 뽑아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에서는 협업을 볼 수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에서는 책임과 의사결정 구조를 볼 수 있다. 둘은 모순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 조직에서는 동시에 필요하다. OECD도 2026년 한국 보고서에서 직무의 난이도·책임·필요 기술·성과가 보상과 경력에 더 직접 반영되는 구조로 이동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에서는 검증을 볼 수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에서는 속도와 결단을 볼 수 있다.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이 두 변수는 동시에 존재하는데, 2025년 한국 벤처투자 총액은 13조6,244억원으로 전년보다 14.0% 늘었지만 창업 3년 이내 초기기업 투자 비중은 16.6%까지 내려갔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흐름을 직접 “검증된 성장기업에 대한 투자가 선호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에서는 집중과 전문성을 볼 수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에서는 분산과 위험관리를 볼 수 있다. 2025년 벤처투자에서도 초기기업에는 2조2,666억원이 들어간 반면 7년 초과 후기기업에는 7조4,156억원이 들어갔고, 후기기업 비중은 전체의 54.4%까지 올라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장을 정답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서 어떤 변수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긍정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례에서는 재현할 것을 찾고 잘못된 사례에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구조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관찰 대상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빨리 배우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과가 나는지, 어떤 방식으로 실패하는지 계속 관찰한다면 경험은 그냥 시간이 아니라 데이터가 된다. OECD 2026 보고서에서도 일하면서 반복적으로 학습하거나 성인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량이 더 높은 반면, 한국의 성인교육·훈련 참여와 ‘일하면서 배우기’ 지표는 OECD 내에서도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평생학습의 필요성이 커지는 동시에,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연공형 임금체계가 오히려 학습 유인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OECD는 한국의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와 연공형 임금이 평생학습 투자의 유인을 떨어뜨린다고 명시적으로 지적했다.
나는 여기서부터 한국 사회를 본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2024년 한국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4,872명이었다. 전년보다 894명, 6.4% 증가했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40.6명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연령별 사망원인이다. 2024년 10대, 20대, 30대, 40대의 사망원인 1위가 모두 자살이었다. 40대에서 자살이 암을 제치고 사망원인 1위에 오른 것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었다.
10대 사망 가운데 자살이 차지한 비중은 약 “48%”였다. 20대는 약 54%, 30대는 약 44%, 40대는 약 26%였다. 즉 20대에서는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었다.
국가 간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OECD 비교에서도 한국의 2024년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26.2명, OECD 평균은 10.8명이었다. 한국 수치는 OECD 평균의 약 2.4배다.
여기서 “한국 사회 때문에 모두 자살한다”고 단정하면 사실이 아니다. 국가데이터처 역시 자살에는 정신건강, 경제적 문제, 육체적 질환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사망원인통계만으로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특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하지만 다른 질문은 가능하다.
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같은 나라에서 동시에 자살이라면, 이것을 전부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는가.
최소한 이것은 개인 몇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선 사회적 데이터다. 2024년 한 해 14,872개의 서로 다른 개인사가 같은 통계 항목 안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2021년 4월 22일 평택당진항에서 일하던 23세 이선호 씨는 컨테이너 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를 제거하다 넘어진 벽체에 깔려 사망했다. 조사 결과 당시 작업은 사전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고, 이 씨는 기본적인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투입됐으며 컨테이너 자체 안전장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2022년 10월 15일에는 SPC 계열 SPL 평택공장에서 23세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여 사망했다. 그는 입사 2년 반 정도 된 사회초년생이었고, 사고 당시 사용된 기계에는 작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적 안전문제가 제기됐다.
2024년 6월 24일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는 화재로 2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최종 사망자 23명 가운데 외국인은 18명이었고, 이후 아리셀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것도 몇 개의 유명 사고만 골라놓은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이었다. 건설업에서 286명, 제조업에서 158명, 기타 업종에서 161명이 사망했다.
사업장 규모를 보면 605명 가운데 351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했다. 그중 5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는 174명으로 전년보다 22명, 14.5% 증가했다.
기업 규모와 현장 위험 사이의 문제가 단순한 추측도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2026년 공개한 2025년 누적 산업재해 통계에서 전체 사고사망자의 약 58%가 50인 미만 영역에서 발생했다.
대기업이라고 사고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고용노동부는 포스코이앤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2023년 1건, 2024년 3건, 2025년 5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밝히고, 55개 현장과 본사에 대한 감독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403건을 확인했다.
여기서 내가 보는 단어는 권한과 위험이다.
평택항에서 작업계획과 안전조치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과 실제 컨테이너 벽체 아래에 서 있던 23세 노동자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SPL에서 생산설비의 구조와 안전투자를 결정할 사람과 소스 교반기 앞에서 작업하던 23세 노동자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리셀에서도 생산·안전관리체계를 결정하는 경영진과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법원은 1심에서 경영진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인정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당시 최고 수준의 형량을 선고했다.
즉 생산의 위험을 몸으로 감당하는 위치와 생산의 조건을 결정하는 위치가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실제 사건으로 확인된다.
한국 청년들은 실제로 좋은 일자리를 오래 찾는다.
2025년 5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인구는 797만4천 명이었고, 고용률은 “46.2%”로 전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경제활동참가율도 49.5%로 0.8%포인트 떨어졌다.
최종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첫 임금근로 일자리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11.3개월이었다. 고졸 이하 청년은 평균 1년4.5개월, 대졸 이상은 8.8개월이 걸렸다.
비경제활동 청년 중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비율은 “14.5%”였다. 준비 분야는 일반기업이 36.0%, 일반직 공무원이 18.2%, 기능 분야 자격증 등이 17.8%였다.
OECD는 이 현상을 단순한 청년 개인의 선택으로 보지 않는다. 2026년 한국경제보고서는 임금, 고용안정성, 사회보호에 큰 차이가 있는 이중노동시장 때문에 청년들이 명문대와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과도하게 경쟁한다고 설명한다.
같은 보고서는 비정규직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많고 정규직이 대기업에 많으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낮은 질의 일자리 사이를 이동하면서 기업 특화 숙련을 쌓기 어렵고 더 생산적인 일자리로 올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실제 임금격차도 크다.
고용노동부의 2026년 발표 기준으로 2025년 6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정규직의 65.2% 수준이었다. 전년 같은 달보다 격차는 1.3%포인트 더 벌어졌다.
2025년 조사에서도 이 비율은 66.4%였다. 측정 방식과 시간제 근로 포함 여부에 따라 격차의 크기는 달라지지만, 고용형태에 따른 상당한 임금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공식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청년 입장에서 “아무 일이나 먼저 들어가서 경력을 쌓으면 된다”는 조언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OECD는 한국의 젊은 노동자들이 낮은 질의 일자리를 받아들이기보다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고 자격과 시험을 준비하는 현상을 직접 언급한다.
이것은 바로 ‘쉬었음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준다.
쉬고 있는 모든 청년이 합리적인 경제계산을 끝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임금·안정성·사회보호 차이가 큰 사회에서 더 나은 진입점을 기다리는 행동 자체는 경제적으로 설명 가능한 행동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연공성이다.
OECD는 한국 기업의 임금과 경력 progression에서 근속연수의 영향이 큰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026년 보고서도 연공형 임금에서 직무의 난이도·책임·필요기술·성과를 반영하는 직무 중심 구조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문제는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나 오래 근무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경험은 실제 자산이다. 같은 현장을 20년 경험한 사람이 신입보다 훨씬 좋은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속연수 자체와 현재 능력을 동일하게 취급할 때 문제가 시작된다.
OECD는 한국의 연공임금 구조에서 경력이 진행될수록 임금 상승이 생산성 상승보다 빨라지는 경우가 생기고, 이로 인해 기업이 50세 전후 정규직의 명예퇴직을 유도한 뒤 노동자가 더 낮은 임금의 두 번째 경력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즉 연공제가 무조건 기존 고령 근로자에게만 좋은 구조도 아니다.
한쪽에서는 내부자의 임금을 근속에 따라 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임금구조를 감당하지 못해 이른 퇴직을 유도한 뒤 다시 낮은 보상의 일자리로 보내는 역설이 생긴다.
OECD는 실제로 한국의 이중노동시장과 연공임금이 평생학습 유인을 줄인다고 본다. 이미 내부자가 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능력을 계속 쌓는 것보다 자리를 유지하는 보상이 커질 수 있고, 외부자에게는 장기적인 기업 특화 훈련을 받을 기회 자체가 약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보는 핵심은 능력과 자리의 분리 가능성이다.
처음에 실력으로 자리를 얻는 것과, 그 자리를 얻은 뒤 현재의 실력과 무관하게 계속 같은 권한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의 교육열을 단순히 부모 욕심으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OECD 2026 보고서는 한국의 대기업·중소기업 및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명문대 진학과 좋은 일자리 경쟁을 과도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직접 연결해서 설명한다.
대학의 서열은 실제 노동시장 결과에도 연결된다.
OECD가 인용한 연구에서는 한국의 상위권 대학 졸업자가 노동시장 진입 시점에 하위권 대학 졸업자보다 24.6% 높은 임금을 받고, 이 격차가 40~44세에는 **50.5%**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학생과 부모가 입시경쟁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적 집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입학한 대학의 이름이 수십 년 뒤 노동시장 보상까지 연결된다면, 경쟁에 참여하는 개인에게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하지만 사회 전체에서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OECD는 시험 중심 교육과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격 준비가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고, 실제 직무에서 필요한 좁고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제도적으로 배제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공무원 채용에서도 이런 문제가 관찰돼 시험 이외의 경력경쟁·개방형 채용 경로가 확대돼 왔고, OECD는 이런 대안경로가 이미 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내가 처음 이야기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능력’과 여기서 충돌이 생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발견하고 그 능력을 깊게 키우는 것보다, 사회가 인정하는 입장권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학습도 결국 시험에 맞춰진다.
한국에서 집을 이미 가진 사람과 이제 처음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에게 같은 집값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2023년 전체 가구의 무주택 비율은 **43.6%**였다. 그런데 가구주가 39세 미만인 청년가구의 무주택 비율은 2015년 약 65.9%에서 2023년 **73.2%**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 40~59세와 60세 이상에서는 무주택 비율이 완만하게 감소하거나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젊은 세대 전체가 가난하고 기성세대 전체가 부유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2023년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로 매우 높았고, 한국의 노인빈곤 역시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주택 진입이라는 특정 변수에서는 젊은 가구가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동시에 사실이다.
2024년 서울의 임차가구 비율은 **53.4%**였다. 2020년 기준 29세 이하 가구의 월세 비중은 **55.9%**로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이동도 실제 숫자로 확인된다.
2025년 1~9월 전국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전월세 계약 약 216만 건 가운데 월세 계약은 약 136만 건으로 **62.8%**였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러한 월세화가 청년층의 주거 안정과 자산형성 기회를 제한하는 구조적 변화라고 분석했다.
집의 질에도 차이가 있다.
2024년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전체 가구의 3.8%였지만 청년가구는 8.2%, 수도권 청년가구는 9.5%였다.
법적 의미의 일반 주택이 아닌 고시원·숙박시설 객실·일터 일부 공간 등의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비율도 전체 가구는 2.2%인데 청년가구는 5.3%, 수도권 청년가구는 5.7%였다.
면적도 다르다.
2024년 평균 주거면적은 자가가구가 81.3㎡, 전세가구가 63.5㎡, 보증금 있는 월세가구가 39.7㎡, 보증금 없는 월세가구가 25.2㎡였다.
주택가격과 소득의 관계를 나타내는 PIR도 전국 중위값이 2024년 6.3배였고, 수도권은 대체로 8~10배, 서울은 15~17배 수준으로 분석됐다.
즉 서울에서 중위 수준의 집을 노동소득만으로 새로 취득하려는 사람과, 이미 같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동일한 부동산 시장을 보고 있지만 경제적 효과는 반대다.
집값이 오르면 기존 보유자에게는 자산평가액 상승이다.
집을 사야 하는 무주택 청년에게 같은 상승은 필요한 초기자본과 대출부담의 상승이다. 39세 미만 무주택 비율이 73.2%까지 오른 현실은 이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다.
한국 가구의 평균 자산은 2025년 3월 말 기준 5억6,678만원, 평균 부채는 9,534만원, 평균 순자산은 4억7,144만원이었다. 하지만 평균값 하나만 보면 자산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조사에서 2024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0.325로 전년보다 상승했고, 소득 5분위배율은 5.78배, 상대적 빈곤율은 15.3%로 모두 전년보다 높아졌다.
노인층도 하나의 부유한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65세 이상 가구주 가구의 2024년 순자산은 평균 4억6,594만원이었지만,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39.8%였다. 높은 평균 자산과 높은 소득빈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기득권은 나이가 아니다.
기성세대를 적으로 만들면 현실 설명이 오히려 틀어진다.
진짜 질문은 “누가 늙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산과 자리와 제도가 한번 확보된 뒤 현재의 능력·책임·가치창출과 얼마나 독립적으로 계속 보상을 만들어내는가다.
나는 IT 외주 일을 하면서 이 구조를 직접 봤다.
내가 경험한 프로젝트에서는 실제 개발자가 고객 시스템과 코드를 가장 깊게 이해하는데도 가격, 일정, 계약조건과 핵심 의사결정은 여러 단계 위에서 정해지는 일이 있었다.
이 경험 하나만으로 한국 산업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하청 의존과 임금격차가 오래된 구조적 문제라는 연구는 존재한다. KDI 연구는 제조업 하청 중소기업 가운데 수급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많고, 하청의존도가 높을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커지는 관계를 분석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금도 하도급 대금, 기술자료·영업비밀 보호, 기술탈취를 별도의 핵심 정책영역으로 두고 있는 이유도 거래 당사자의 협상력이 대등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공정위 업무계획 역시 하도급 기술탈취와 중소기업 기술자료 보호를 주요 과제로 포함했다.
OECD 2026 보고서도 한국 노동시장 개혁을 설명하면서 원청과 하청을 포함한 간접고용 구조에서 사회적 대화와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문제를 별도로 언급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기업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착하다”가 아니다.
대기업은 자본, 브랜드, 대규모 영업망, 품질관리, 법적 책임, 프로젝트 조정능력이라는 실제 가치를 제공한다.
그러나 실제 가치를 만드는 위치와 협상력을 가진 위치가 지나치게 멀어질 때 문제가 생긴다.
내가 이전에 “원청 100, 1차 하청 70, 2차 하청 50, 실제 개발자 30”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내가 현장에서 체감한 구조를 단순화한 예시이지 한국 모든 계약의 공식 통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비유가 가리키는 질문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왜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라 같은 시간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크게 달라지는가.
왜 2025년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5.2% 수준인가.
왜 OECD는 한국의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사회 전체의 교육경쟁과 노동시장 진입지연에 연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보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만 하면 구조를 보지 못한다.
AI는 기존의 정해진 업무를 그대로 컴퓨터로 옮기는 것과 다르다.
어떤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지, 어떤 작업은 인간 판단을 남겨야 하는지, 정확도를 어디까지 요구할지, 데이터가 외부로 나가도 되는지, 추론비용이 얼마인지 계속 판단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인용한 AI 직무분석에서는 한국 고용의 약 **9.8%**가 AI에 의해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영역, **15.9%**가 AI를 통해 인간 업무가 증강될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추정됐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10%의 사람이 곧 해고된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역시 현 단계의 AI가 직업 전체보다 업무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경우가 많고, 기술의 영향은 직종과 기업의 도입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핵심은 전환이다.
AI가 문서 초안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문서 초안을 쓰는 시간을 보호할 것인지, 그 시간을 없애고 사람이 검증·의사결정·고객상담 같은 더 높은 단계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가 코드를 더 빨리 만들 수 있게 되면 기존 개발시간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가 반복적인 회계처리를 자동화한다면 반복처리 그 자체를 전문직의 정체성으로 보호할 것인지, 회계사가 판단·해석·감사·컨설팅으로 이동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이미 노동시장 숫자에서 시작되고 있다.
AI 자동화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보다 AI를 통해 증강될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 비중이 더 크다는 결과는, 현재 단계에서 “사람 대 AI”보다 AI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생산성 차이가 중요한 문제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따라서 AI 전환을 기존 조직의 보고체계 안에만 넣는 것은 위험하다.
현장의 데이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의사결정에서 빠진다면, 기술예산은 위에 있고 기술정보는 아래에 있는 기존 하청구조가 그대로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도 한국의 간접고용·하청구조와 노동시장 이중성을 별도의 개혁과제로 보고 있다.
한국의 벤처투자 시장 자체는 줄어들고 있는 시장이 아니다.
2025년 벤처투자액은 13조6,244억원으로 2024년 11조9,457억원보다 14.0% 증가했고, 투자 건수도 8,542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돈이 어디에 가는지를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창업 3년 이내 초기기업 투자비중은 2021년 19.2%, 2022년 26.9%, 2023년 24.6%, 2024년 18.6%, 2025년 **16.6%**로 내려왔다.
반대로 창업 7년 초과 후기기업 투자비중은 2021년 44.4%에서 2025년 **54.4%**로 높아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변화를 “검증된 성장기업에 대한 투자가 선호되는 현상”이라고 직접 해석했고, 초기투자를 늘리기 위해 2026년 모태펀드 초기창업 분야 출자를 두 배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한국 투자자는 새로운 기술을 싫어한다”고 과장할 필요가 없다.
정부 통계만 봐도 시장 전체의 투자금은 늘고 있지만 위험이 큰 초기단계에 배분되는 비중은 낮아지고 있는 현실이 확인된다.
AI 분야에서도 2025년 새로 확인된 유니콘 가운데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처럼 AI 반도체 기업이 포함됐다. 실제 깊은 기술을 쌓는 기업에도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반례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투자 받은 AI 회사는 가짜다”가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투자금과 밸류에이션을 기술적 깊이와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하지 말자는 것이다.
API를 이용하는 회사도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자체 모델을 가진 회사도 고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좋은 회사가 아니다.
결국 봐야 할 것은 비용, 데이터, 기술의 통제권, 고객가치, 재구매, 마진, 전환비용이다.
한국 영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2024년 한국영화 관객은 7,147만 명으로 전년보다 17.6% 늘었고, 한국영화 매출은 6,910억원으로 15.5% 증가했다. <파묘>와 <범죄도시4>는 각각 천만 관객을 넘었다.
하지만 전체 극장 관객은 1억2,313만 명으로 전년보다 1.6% 감소했고, 2017~2019년 평균과 비교하면 44.3% 낮은 수준이었다.
극장 매출도 1조1,945억원으로 전년보다 5.3% 감소했고, 팬데믹 이전 2017~2019년 평균보다 34.7% 낮았다.
흥행도 일부 작품에 크게 집중됐다.
2024년 전체 흥행 1위 <파묘>는 1,191만 명, <범죄도시4>는 1,150만 명, <인사이드 아웃2>는 880만 명, <베테랑2>는 753만 명을 모았다. 상위권에는 속편과 이미 알려진 IP가 여러 편 포함됐다.
이 사실만으로 “한국 영화는 창의성이 없다”고 말하면 지나친 일반화다.
<파묘>처럼 새로운 장르적 조합으로 큰 흥행을 만든 사례도 같은 해에 존재했다.
하지만 투자위축과 제작편수 감소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접 지적한다.
영진위는 팬데믹 이후 투자 위축으로 제작편수가 줄고, 흥행 양극화와 상영배정 편중으로 대작의 실패를 보완할 작품이 부족해졌다고 분석했다.
2024년 재개봉작은 228편으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였고, 재개봉 관객도 250만 명에 달했다.
즉 이 산업의 현실은 “재능이 없어졌다”보다 더 복잡하다.
시장 전체가 팬데믹 이전보다 작고, 큰 제작비를 걸기 어려워지고, 투자자는 더 확실한 결과를 원하게 되는 조건이 실제 숫자로 존재한다.
그 환경에서는 신인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는 비용이 더 비싸진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시장 축소가 리스크 허용도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는 경제적 추론이다.
한국 게임산업은 작은 산업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게임산업백서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은 약 23조원으로 전년보다 3.4% 증가했다.
그중 모바일게임 매출은 13조6,118억원, 전체의 59.3%였다. PC게임은 5조8,888억원으로 25.6%였다.
즉 국내 게임 매출의 절반 이상이 모바일 한 플랫폼 유형에서 나온다.
이 숫자만으로 “모든 회사가 같은 BM을 쓴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이미 가장 큰 시장이 어디인지 분명한 상황에서 예산을 모바일 중심으로 배분하는 경제적 유인이 강하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2025년 벤처투자에서 게임 분야 투자액은 2,710억원으로 전년 1,600억원보다 69.4% 증가했다. 즉 신규 게임에 대한 자본 자체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게임산업을 설명할 때도 “망했다”는 한 문장보다 구조를 봐야 한다.
23조원이라는 거대한 시장, 모바일 59.3%라는 플랫폼 집중, 신규 투자 증가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신인 디렉터와 개발자에게 어느 정도의 실패 예산과 의사결정권을 줄 것인지는 결국 기업의 선택이다.
2023년 국내 웹툰산업 매출은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웹툰산업 실태조사에서 2023년 산업 매출은 약 2조1,89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에는 웹툰산업 매출이 다시 2조2,856억원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4.4% 성장했다.
그런데 2023년 한 해 내내 작품을 연재한 경험이 있는 웹툰 작가의 연간 총수입 중위값은 3,800만원이었다. 산업 매출 2조원과 작가 한 사람의 소득은 서로 다른 지표다.
작업강도도 숫자가 있다.
2023년 조사에서 웹툰 작가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5.9일 창작했고, 일주일 내내 작업한다는 응답도 26.9%였다. 평균 작업시간은 하루 10.1시간 수준이었다.
계약구조도 하나가 아니다.
2023년 작품별 연재계약 형태가 54.8%, 근로계약이 25.9%로 조사되는 등 창작자는 플랫폼·CP·스튜디오와 여러 형태로 연결돼 있었다.
그러므로 “산업이 성장하면 창작자도 자동으로 강해진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산업 매출은 2조원을 넘었는데 연중 연재작가의 소득 중위값은 3,800만원이고 평균적으로 주 5.9일을 창작한다는 숫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것이 곧 플랫폼이 작가를 착취한다는 단일한 결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플랫폼은 유통, 결제, 추천, 해외진출, 마케팅이라는 실제 기능을 제공하고, 작가가 플랫폼과 계약하기를 선호하는 이유에도 더 많은 독자와 수익기회가 포함된다.
다만 산업의 성장률과 개별 창작자의 협상력·소득·휴식시간을 따로 측정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2024년 국내 대중문화예술산업 매출은 15조3,845억원으로 조사됐다. 2022년 11조4,362억원보다 34.5% 증가한 규모다.
산업이 작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숫자와 맞지 않는다.
소속 대중문화예술인도 1만2,092명으로 2022년보다 6.5% 늘었다.
하지만 조사된 연예인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315만1천원, 그중 예술활동 관련 소득은 평균 150만7천원이었다. 제작 스태프의 월평균 소득은 327만5천원이었다.
연습생은 963명으로 2022년보다 207명, 17.7% 감소했다. 이중 가수 지망생이 613명으로 63.7%였다.
동시에 표준전속계약서 체결률은 95.3%, 제작 스태프 서면계약률은 97.9%까지 올라갔다. 과거보다 계약의 형식적 투명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긍정적 데이터도 존재한다.
즉 K-pop 현실도 한 방향으로만 설명하면 틀린다.
산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고 계약제도는 개선되고 있으며, 동시에 개인의 예술활동 소득은 산업 전체 매출과 전혀 다른 규모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성공했으니 내부도 건강하다”도 틀리고, “산업 전체가 착취구조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데이터보다 앞서간다.
봐야 할 것은 매출 성장의 몫이 어떤 계약을 통해 누구에게 얼마나 이동하는가다.
한국 광고시장에서 온라인은 주변 채널이 아니다.
KOBACO의 2025 방송통신광고비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온라인 광고시장 규모는 10조1,011억원이었다. 2025년에는 10조7,204억원으로 약 6.1% 성장할 것으로 추정됐다.
즉 광고비의 중심이 이미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온라인 광고에서 노출, 클릭, 전환, 구매를 측정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CTR·CPA·ROAS 같은 지표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기술적으로 당연한 결과다.
이것을 “숫자를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틀린다.
오히려 숫자는 과거 광고산업이 알기 어려웠던 효과를 훨씬 정확하게 측정하게 해줬다.
다만 측정 가능한 단기성과와 장기 브랜드 기억이 같은 지표는 아니다.
따라서 광고산업에서 필요한 것도 양자택일이 아니다.
성과측정은 더 정밀하게 하되, 측정이 쉽지 않은 브랜드 자산을 없던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산재에서는 위험을 지는 사람과 조건을 결정하는 사람이 같은가를 물었다. 2025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605명 중 351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는 숫자가 이 질문의 배경이다.
노동시장에서는 현재의 능력과 현재의 보상이 얼마나 연결돼 있는가를 물었다. 2025년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의 65.2%였고 OECD가 정규·비정규 사이 임금·안정성·사회보호 차이를 ‘이중노동시장’으로 규정한 것이 배경이다.
주거에서는 이미 자산을 가진 사람과 이제 진입하는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가를 물었다. 39세 미만 가구주의 무주택률이 73.2%, 서울 PIR이 15~17배 수준이라는 숫자가 배경이다.
스타트업에서는 새로운 사람과 검증된 사람이 같은 자본 접근성을 갖는가를 물었다. 초기창업기업 투자 비중이 2025년 16.6%, 후기기업이 54.4%라는 숫자가 배경이다.
웹툰에서는 산업 매출의 성장과 창작자 개인의 경제상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물었다. 산업매출은 2조원을 넘었지만 연중 연재 작가 수입 중위값은 3,800만원이고 평균 창작일은 주 5.9일이었다.
영화에서는 위험을 감당할 여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물었다. 전체 극장관객이 팬데믹 이전 평균보다 44.3% 낮은 상황에서 투자와 제작편수가 위축됐다는 영진위의 분석이 배경이다.
AI에서는 누가 기술을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누가 기존 역할을 지키려고 하는가를 묻게 된다. 한국 고용의 9.8%는 AI 자동화 잠재력이 높고 15.9%는 증강 잠재력이 높다는 연구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산업을 보고 있는데 계속 같은 단어가 나온다.
권한. 책임. 위험. 보상. 진입. 자리. 자산. 학습. 전환.
기득권을 “돈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65세 이상 가구주의 평균 순자산이 4억6,594만원이면서 동시에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이 39.8%라는 통계가 존재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한 집단을 하나의 경제계층으로 묶을 수 없다는 뜻이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무조건 부당한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대기업에서 높은 생산성을 만들고 중요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높은 보상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전문직 자격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공부와 시험을 거쳐 복잡한 판단에 책임을 지는 의사·변호사·회계사에게 높은 보상이 돌아가는 것 자체는 경제적으로 이상하지 않다.
내가 말하는 기득권은 더 좁다.
과거에 확보한 자리·자격·자산·조직 내부의 지위가 현재의 능력과 책임을 계속 검증하지 않아도 보상을 만들어내는 상태다.
이 정의로 보면 문제의 초점이 세대에서 구조로 이동한다.
젊은 사람도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면 기득권이 될 수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계속 경쟁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면 기득권이라는 비판과 무관할 수 있다.
이 질문은 AI 시대에 특히 중요하다.
과거의 대규모 IT 프로젝트에서는 요구사항을 정리한 뒤 개발사에 넘기고 결과물을 검수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었다.
생성형 AI 프로젝트에서는 모델 성능과 가격이 빠르게 변하고, 데이터 상태에 따라 가능한 것이 매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정보를 갖는 순간이 늘어난다.
그런데 조직의 권한이 직급과 근속을 중심으로 고정돼 있으면, 정보와 권한이 서로 다른 곳에 있게 된다.
OECD가 한국의 임금·경력체계를 연공에서 직무·책임·기술·성과 중심으로 옮기라고 권고하는 이유도 현재 수행하는 일의 가치와 보상을 더 가깝게 연결하기 위해서다.
이 개혁은 젊은 사람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연공임금 때문에 50세 전후 정규직에게 명예퇴직이 집중되고 이후 더 낮은 임금의 재취업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OECD가 지적한 한국의 문제다.
즉 현재 능력에 맞게 역할과 보상을 재설계하는 것은 젊은 사람을 위해 고령자를 몰아내는 개혁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이 오래 일하면서 계속 학습하고, 직무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개혁에 더 가깝다.
산업재해 사례를 다시 보면 답이 간단하지 않다.
이선호 씨는 23세 일용직 노동자로 작업현장에서 위험을 감당했지만 작업계획과 안전체계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SPL 사고의 23세 노동자도 생산설비 자체를 설계하거나 기업의 안전투자 예산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아리셀 화재에서도 최종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책임을 두고 경영진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됐다.
자본을 가진 사람과 경영자가 아무 위험도 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가 역시 투자한 자본을 잃을 수 있고 형사·민사·행정상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확한 질문은 경제적 손실을 부담하는 위험과 신체가 죽거나 다치는 위험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가다.
2025년 605명의 사고사망자가 보여주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어떤 위험은 돈으로 회복할 수 없는 형태로 현장에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위험이 큰 자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안전투자와 보상과 의사결정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념보다 계약의 기본에 가까운 문제다.
노동시장 내부자는 이미 정규직, 근속연수, 기업복지, 사회보험과 조직 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외부자는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교육·시험·구직기간을 먼저 지불한다.
2025년 청년의 첫 취업까지 평균 11.3개월이 걸리고 비경제활동 청년의 14.5%가 취업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통계가 바로 이 진입비용의 일부다.
주택도 같다.
집을 가진 사람에게 가격 상승은 자산증가지만, 39세 미만 무주택가구 73.2%에게 같은 가격 상승은 앞으로 지불해야 할 가격의 증가다.
대학도 같다.
이미 상위권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평생 이력에 사용할 수 있지만, 다음 세대는 그 입장권을 얻기 위해 다시 경쟁해야 한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의 임금 프리미엄이 노동시장 진입 시점 24.6%에서 40대 초반 50.5%까지 커진다는 연구 결과는 그 입장권의 경제적 가치를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청년에게 “경쟁을 두려워하지 마라”고만 말하면 반쪽짜리 설명이다.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기존 사람이 경쟁에서 얻은 보상을 영구적으로 보호받고 신규 진입자만 계속 새 경쟁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순환하는 경쟁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25년 별도로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 연구를 발간했다.
정부가 하나의 독립 연구주제로 쉬었음 청년의 이전 일자리, 경제상태, 불안, 취업인식, 정책수요를 조사했다는 것 자체가 이 현상을 단순한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데이터처의 청년층 조사에서도 졸업 후 첫 취업까지 평균 11.3개월이 걸리고, 비경제활동 청년 상당수가 일반기업·공무원·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OECD는 더 직접적으로 한국의 젊은 노동자들이 낮은 질의 일자리를 받아들이기보다 노동시장 진입을 늦추고 자격을 높이는 쪽을 선택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쉬었음’ 안에는 건강 문제도 있고, 취업 준비도 있고, 번아웃도 있고, 적합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 집단 전체를 하나의 성격으로 묶으면 정책적으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이 부분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자살에는 정신건강, 인간관계, 질병, 경제문제 등 복수의 원인이 있다. 국가데이터처 역시 사망원인통계만으로 자살의 구체적인 개인별 원인을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산업재해는 안전관리, 기업규모, 업종, 설비, 교육, 작업계획 등 다른 변수에 의해 발생한다. 2025년 사고사망자가 건설 286명, 제조 158명, 기타 161명으로 업종에 따라 크게 나뉜다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청년의 비경제활동에는 취업준비, 육아, 질병, 휴식 등 서로 다른 상황이 섞인다.
저출생 역시 주거비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노동시장, 성역할, 교육비, 가치관과 같은 다양한 변수가 작동한다. OECD도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높은 주거비를 포함한 복합적인 문제로 분석한다.
그럼에도 이 데이터들을 한 글에 놓는 이유가 있다.
서로 원인은 다르지만 같은 사회 안에서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누가 진입비용을 내고, 누가 이미 확보한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를 함부로 하나로 묶지 않는 것과, 구조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을 비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여기까지 숫자를 놓고 나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청년의 39세 미만 무주택률은 높아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 사이에는 임금·고용안정·사회보호 격차가 크다.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5.2% 수준이다.
연공형 임금은 현재의 직무가치보다 근속연수의 영향력을 크게 만든다.
초기창업기업에 배분되는 벤처투자 비중은 16.6%이고 후기기업은 54.4%다.
청년은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11.3개월을 보낸다.
한국의 10대부터 40대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죽는 단일 사망원인은 자살이다.
산업현장에서는 2025년 한 해 605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이 숫자들이 모두 같은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안에 들어간 사람과 이제 들어오려는 사람의 조건이 크게 다른 사회라는 설명과는 상당 부분 맞물린다. OECD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명문대 경쟁, 수도권 이동, 주거비, 부모의 소득·자산에 따른 이동효과 차이를 하나의 구조적 문제군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OECD 2026 보고서는 수도권 이동이 과거처럼 모두에게 번영의 경로가 되지 않으며, 이동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이 부모의 소득과 자산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언급한다.
즉 같은 능력을 가진 두 젊은 사람이 있어도 부모의 자산, 주거기반, 교육기회, 첫 일자리의 질에 따라 그 능력을 발전시키는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이상적인 사회를 말할 때 계속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사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능력 자체보다 출발 위치가 너무 큰 역할을 하면 사람은 능력을 키우는 대신 입장권을 확보하는 데 에너지를 쓴다.
OECD가 한국 청년의 과도한 명문대 경쟁과 자격 준비를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연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개혁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술 때문에 어떤 업무가 사라진다고 하자.
사람을 그냥 버리는 것은 좋은 개혁이 아니다.
실업급여, 재교육, 직업훈련, 이동지원, 사회보험을 통해 그 사람이 다음 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 업무 자체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AI의 영향을 예로 들면 현재 연구는 한국 일자리의 9.8%에 자동화 가능성이 높고 15.9%에는 증강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업무구조가 실제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데 기존 업무 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실과 충돌한다.
정규직 보호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을 하루아침에 해고하기 쉽게 만들자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정규직에게 사회보험과 이동기회를 강화하는 동시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지나친 보호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OECD의 권고다.
연공서열도 마찬가지다.
나이 든 사람의 임금을 무조건 깎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직무의 책임·난이도·필요기술·성과와 보상을 더 직접 연결하자는 것이다.
주거도 마찬가지다.
집을 가진 사람을 벌주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주택의 자산가치를 영구적으로 끌어올리는 것만을 정책목표로 삼을 경우 아직 집이 없는 세대의 진입비용이 함께 상승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39세 미만 무주택률 73.2%와 서울 PIR 15~17배가 그 현실을 보여준다.
즉 사람은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기존 자리는 영구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부분이다.
직무 중심 임금체계로 옮기면 현재 연공체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던 일부 사람은 기대했던 미래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보호격차를 좁히면 기존 정규직 내부자는 자신의 상대적인 고용안정 프리미엄이 줄어든다고 느낄 수 있다. OECD도 이런 이유로 연공임금 체계가 특히 대기업 정규직과 노조 내부자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주택공급이 크게 늘고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낮아지면 기존 주택보유자는 기대했던 자산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 기존 업무로 돈을 벌던 기업과 직업은 매출 일부를 잃을 수 있다.
새로운 기업이 들어오면 기존 기업의 시장점유율도 줄어든다.
초기창업기업에 더 많은 정책자본을 배분하면 이미 검증된 후기기업에 갈 수 있었던 자본 일부가 더 위험한 곳으로 이동한다.
즉 진짜 개혁에는 항상 분배효과가 있다.
누구도 손해 보지 않고 모두의 기존 몫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까지 주겠다는 개혁은 현실에서 수학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실제로 피해를 본다.
그래서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피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변화 전체를 중단하면 기존 구조는 거의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새로 발견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OECD는 2026년 보고서에서도 다시 정규·비정규 격차 축소, 연공형 임금개혁, 사회보험 확대를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주거문제도 새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39세 미만 무주택가구 비율은 2015년 65.9%에서 2023년 73.2%로 오히려 높아졌다.
월세화도 이미 오래 진행됐다.
2025년 1~9월 확정일자 계약의 62.8%가 월세였고 국가데이터처는 청년층의 주거안정과 자산형성 기회를 제약하는 구조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산업재해도 오래된 문제다.
그런데 2025년에도 사고로 605명이 사망했고, 5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는 오히려 전년보다 14.5% 늘었다.
자살도 오래된 문제다.
그런데 2024년 자살자 수와 자살률은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고, 처음으로 40대까지 자살이 사망원인 1위가 됐다.
그러니까 “조금 더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개혁을 사회적 정의만의 문제로 볼 필요도 없다.
OECD 2026 한국 보고서는 제품시장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할 경우,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 2032년 GDP를 1.1%, 2060년 GDP를 8.8% 높일 수 있다고 추산한다.
같은 분석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연공형 임금체계의 개편, 여성·고령층의 노동공급 확대, 제품시장 규제개혁 등이 함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요소로 제시됐다.
즉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항상 경제적으로 보수적이고 안전한 선택도 아니다.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유지하는 비용은 매년 눈에 보이지 않게 누적된다.
청년이 첫 취업까지 11.3개월을 보내고, 좋은 일자리를 위해 시험 준비를 반복하고, 낮은 질의 일자리에서 숙련을 축적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생산성 측면에서 비용이다.
서울의 높은 주거비 때문에 노동자가 생산성이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거나 지나친 주거비를 부담하는 것 역시 노동시장 효율성의 문제다. OECD도 높은 서울 주거비가 노동 이동과 후생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개혁은 누군가에게 베푸는 복지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자원을 현재 가치가 더 높은 곳으로 다시 움직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능력이 다른데 모두가 같은 보상을 받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정말 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권한과 보상을 받는 사회를 원한다.
직무의 책임, 난이도, 기술, 성과에 따라 보상하라는 OECD의 직무 중심 임금 권고도 같은 방향이다.
하지만 그 보상은 현재의 가치와 계속 연결돼 있어야 한다.
과거에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가장 많은 결정권을 가질 이유는 없다.
과거에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능력을 증명한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 뒤 수십 년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현재 가장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과거에 회사가 혁신적이었다고 해서 현재의 시장지위를 규제로 영구보존해야 할 이유도 없다.
과거에 집을 샀다는 사실이 다음 세대의 노동소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계약도 아니다.
즉 성과는 보상하되, 보상을 영구적인 신분으로 만들지는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
이 질문은 조직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팀에 20년 경력의 관리자가 있고 5년 경력의 기술자가 있다고 하자.
사람을 관리하고 고객과 협상하는 일은 20년 경력자가 더 잘할 수 있다.
새로운 AI 모델과 데이터 파이프라인 설계는 5년 경력자가 더 잘할 수도 있다.
건강한 조직은 둘 중 누가 더 높은 인간인지 정하지 않는다.
문제별로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결정권을 준다.
연공형 구조에서는 모든 중요한 결정이 직급 하나를 따라갈 위험이 있다.
OECD가 직무의 책임·기술·성과를 임금과 경력에 더 많이 연결하라고 권고하는 이유 중 하나도 직급과 실제 업무가치를 더 가깝게 맞추기 위해서다.
나는 이것이 사회 전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이 더 잘하면 올라와야 한다.
기존 사람이 여전히 더 잘하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핵심은 나이가 아니다.
계속 증명할 수 있는 구조인가다.
스타트업이 정말 혁신을 원한다면 초기기업이 실패할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한다.
2025년 초기창업기업 투자비중이 16.6%로 내려간 상황을 정부 스스로 ‘검증된 성장기업 선호’라고 평가하고 초기투자 확대책을 내놓은 이유도 새로운 기업에 자본이 충분히 흐르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관객시장이 팬데믹 이전보다 크게 축소되고 투자와 제작편수가 줄어들면 신인의 실패를 감당할 여력이 줄어든다. 영진위도 투자위축과 제작편수 감소를 2024년 산업의 중요한 문제로 적시했다.
웹툰에서도 산업매출이 증가한다고 작가가 무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균 주 5.9일, 하루 10.1시간이라는 작업량은 창작의 지속가능성 역시 산업성과만큼 봐야 한다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실패를 허용한다는 말은 실패한 사람에게 평생 돈을 주자는 뜻이 아니다.
작게 실패하고, 데이터를 가져오고, 다시 도전할 통로가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타산지석의 논리가 여기에도 있다.
실패가 끝이면 실패에서 배울 경제적 이유가 줄어든다.
실패 뒤 다시 시도할 기회가 있을 때 실패는 데이터가 된다.
2024년 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10대 사망의 약 48%, 20대의 약 54%, 30대의 약 44%가 자살이었다.
이 숫자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하나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이 숫자를 집값 하나로 설명해서도 안 된다.
산업재해와 자살을 같은 원인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 숫자를 보고도 개인의 정신력 이야기만 하는 것도 데이터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설명이다.
같은 사회에서 청년의 무주택률이 높아지고,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크고,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월세화가 진행되고, 산업현장에서 수백 명이 매년 사고로 사망한다는 조건들을 함께 보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나는 이 모든 현상을 하나의 단순한 공식으로 묶지 않는다.
다만 젊은 사람이 자기 능력을 발전시키면 미래가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사회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만들면 세대전쟁만 남는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39.8%라는 사실만 봐도 기성세대 전체를 하나의 기득권 집단으로 묶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개혁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구조여야 한다.
현재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는 70세에게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OECD도 연공임금 때문에 50세 전후 퇴직이 발생하는 한국 구조를 바꾸고, 나이가 아니라 직무가치에 따라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만드는 방향을 권고한다.
반대로 젊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자리를 줄 수도 없다.
실력이 없으면 배우고 증명해야 한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은 세대교체 그 자체가 아니다.
능력, 책임, 위험, 보상 사이의 연결을 다시 만드는 것이다.
산업이 자동화되면 사람의 생계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자동화할 수 있는 반복업무를 사람에게 계속 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노동자에게 전환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력이 사라진 기업을 영원히 시장에서 보호할 수는 없다.
연공임금에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전환기간을 둘 수 있다.
하지만 직무와 성과의 관계가 약한 구조를 다음 세대까지 계속 넘길 이유는 없다.
주택가격 조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에는 급격한 부채위험을 관리할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주택보유자의 자산가격을 계속 상승시키는 것이 국가의 영구적인 의무일 수는 없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기존 구조를 보존하는 것은 다르다.
AI 시대의 전문직이 가장 좋은 예다.
AI가 반복적인 문서작업과 분석작업 일부를 자동화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노동시장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그렇다고 변호사, 회계사, 의사, 개발자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판단과 설명, 검증, 고객관계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
이때 전문직이 가져야 할 선택은 기술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 위로 올라가는 것이어야 한다.
회계사가 AI보다 엑셀 입력을 더 많이 하는 것을 경쟁력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개발자가 AI보다 보일러플레이트 코드를 더 빨리 타이핑하는 것을 전문성으로 삼을 이유도 없다.
전문성은 반복작업의 독점이 아니라 새 도구가 생겨도 더 높은 수준의 판단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한다.
과거에 큰 기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미래에도 큰 기업일 권리는 없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한때 투자를 많이 받았다고 다음 투자와 시장점유율을 보장받을 이유는 없다.
2025년 벤처투자가 13조6,244억원까지 회복되고 AI반도체·데이터·클라우드 분야에서 새로운 유니콘이 등장한 것은 산업 내 권력도 계속 이동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다.
좋은 시장은 기존 회사를 일부러 무너뜨리는 시장이 아니다.
새로운 회사가 더 잘하면 올라올 수 있는 시장이다.
그리고 기존 회사가 여전히 더 잘하면 계속 이기면 된다.
과거에 어떤 시험에 합격했는가.
과거에 어떤 회사를 다녔는가.
과거에 집을 언제 샀는가.
과거에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는가.
그 모든 것은 중요한 데이터다.
하지만 사회의 권한과 보상을 영구적으로 결정하는 신분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무엇을 알고 있는가.
현재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현재 어떤 책임을 지는가.
현재 어떤 위험을 감당하는가.
현재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OECD가 한국의 연공 중심 임금·경력체계에서 직무가치·책임·기술·성과 중심으로 이동하라고 권고하는 것도 결국 과거보다 현재의 일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자는 구조적 개혁이다.
한국에는 이미 너무 많은 데이터가 쌓였다.
2024년 자살자는 14,872명이었고 10대부터 40대까지 자살이 사망원인 1위였다.
2025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605명이었고 351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죽었다.
39세 미만 가구주의 무주택률은 2023년 73.2%였고, 2025년 1~9월 전월세 계약의 62.8%는 월세였다.
청년은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11.3개월을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5.2% 수준이다.
OECD는 한국의 임금·고용안정·사회보호 격차가 큰 이중노동시장이 청년의 과도한 좋은 일자리 경쟁을 만든다고 진단하고 있다.
OECD는 연공형 임금이 평생학습을 약화시키고 조기퇴직까지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초기창업기업에 가는 벤처투자 비중은 16.6%까지 낮아졌고 정부는 검증된 성장기업 선호가 나타난다고 평가했다.
한국 영화 전체 관객은 아직 팬데믹 이전 평균보다 44.3% 적고 투자위축과 제작편수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웹툰산업은 2조원을 넘었지만 연중 연재 작가의 연소득 중위값은 3,800만원이고 평균적으로 주 5.9일을 창작한다.
대중문화예술산업은 15조원을 넘었지만 조사된 연예인의 예술활동 관련 월평균 소득은 150만7천원이었다.
온라인 광고시장은 10조원을 넘기며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했다.
AI는 이미 한국 일자리의 일부를 자동화하고 더 많은 일부를 증강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데이터 앞에서 “지금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에는 비용이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내 결론은 결국 여기까지 온다.
개혁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직급의 권한이 줄어들 수 있다.
내가 하던 업무를 AI가 더 빨리 할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전문직 업무의 일부가 자동화될 수도 있다.
내 회사보다 더 효율적인 새로운 회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기대했던 주택 자산수익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
연공서열에서 기대했던 미래 임금이 바뀔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시장점유율이 새로운 경쟁자 때문에 줄어들 수도 있다.
그것이 개혁이다.
아무도 손해 보지 않고, 아무도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고, 기존의 모든 자리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까지 주는 개혁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은 보호하되 자리는 보호하지 않아야 한다.
산재 피해와 실업 위험으로부터 사람은 보호해야 한다. 2025년에도 산업현장에서 605명이 사망했다는 현실은 안전망과 안전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업무 자체를 영원히 보호할 필요는 없다.
전문성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더 잘하는 반복업무까지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영구보존할 필요는 없다.
경험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판단능력과 무관하게 연공만으로 권한과 보상이 자동으로 계속 올라가는 구조를 영원히 유지할 필요는 없다. OECD가 바로 그 구조의 개혁을 반복해서 권고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정규직 임금의 65.2%만 받고 이동사다리까지 약한 이중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보호의 정의가 될 수는 없다.
집을 가진 사람의 삶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39세 미만 무주택률이 73.2%이고 서울 PIR이 15~17배인 상황에서 모든 정책이 기존 자산가치의 상승만을 목표로 할 수는 없다.
기존 기업도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업이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르게 만들었다면 소비자가 그쪽으로 이동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
창작자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는 작품만 만들도록 산업 전체를 굳혀버리면 결국 새로운 창작자와 새로운 IP가 들어올 공간이 줄어든다.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의 투자·제작 위축과 웹툰 작가의 높은 작업강도는 실패와 창작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나는 결국 기득권의 반대말이 박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잘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간다.
현재 책임지는 사람에게 보상이 간다.
위험을 지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보상과 보호가 간다.
새로운 사람이 더 잘하면 들어올 수 있다.
기존 사람이 계속 잘하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배운다.
기존 일이 사라지면 새로운 일을 배운다.
실패하면 데이터를 가져와 다시 한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넘겨준다.
타산지석.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에서는 협업을 배우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에서는 책임을 배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에서는 검증을 배우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에서는 속도를 배운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에서는 전문성을 배우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에서는 위험관리를 배운다.
좋은 것에서는 가져오면 된다.
잘못된 것에서는 고치면 된다.
작동하지 않는 것은 버리면 된다.
더 좋은 것이 나오면 바꾸면 된다.
그리고 그 변화가 나에게 불리하더라도, 사회 전체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변화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너무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살.
산재.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지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연공서열.
청년 무주택.
월세화.
초기기업의 자본 접근.
산업의 플랫폼화.
AI가 가져오는 업무 재편.
이것을 다 보고도 기존 이해관계를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어느정도는 닥치고 개혁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에게만 개혁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까지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