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한국어를 더럽혀왔다
한국 정치는 한국어를 더럽혀왔다 한국 정치를 오래 보고 있으면 정책이나 제도보다 먼저 피로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언어다. 정치가 사용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원래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던 단어들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 ‘민생’, ‘개혁’, ‘공정’, ‘정의’, ‘책임’, ‘통합’, ‘국민’, ‘상식’ 같은 말들이다. 본래 이런 단어들은 현
한국 정치는 한국어를 더럽혀왔다
한국 정치를 오래 보고 있으면 정책이나 제도보다 먼저 피로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언어다. 정치가 사용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원래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던 단어들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 ‘민생’, ‘개혁’, ‘공정’, ‘정의’, ‘책임’, ‘통합’, ‘국민’, ‘상식’ 같은 말들이다. 본래 이런 단어들은 현실을 설명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연결하고,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논의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이 단어들이 실제 의미보다 진영의 구호로 소비되어 왔다.
문제는 정치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은 단어를 서로 정반대의 뜻으로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단어 자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누구나 ‘민생’을 말하지만 정작 어떤 사람의 삶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인지는 흐릿하고, 누구나 ‘개혁’을 말하지만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공정’을 외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하고, ‘책임’을 말하면서 정작 문제가 생기면 상대를 탓하고, ‘통합’을 말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더 강한 적대적 언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말과 행동의 간격이 계속 벌어지면 사람들은 결국 단어를 믿지 않게 된다.
그러면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치적 신호가 된다. 어떤 사람이 ‘개혁’이라는 말을 했을 때 우리는 그 개혁의 내용부터 묻지 않고 그 사람이 어느 편인지부터 판단한다. ‘공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보다 어느 진영이 사용하는 단어인지부터 떠올린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표현을 들으면 실제 국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기대하기보다 또 하나의 정치적 수사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단어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소속을 표시하는 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망가지면 사회 전체의 사고 능력도 같이 떨어진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비교하며, 문제를 정의한다. 그런데 문제를 설명하는 단어 자체가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있으면 논쟁은 쉽게 감정싸움으로 변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효과적인지, 어떤 선택에 어떤 비용이 발생하는지를 논의하기보다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상대편인지가 먼저 중요해진다. 결국 언어의 붕괴는 토론의 붕괴로 이어지고, 토론의 붕괴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한국 정치가 한국어를 더럽혀왔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너무 많은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했고, 너무 자주 실제 행동과 반대되는 의미로 소비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중요한 단어일수록 오히려 공허하게 들리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정의’를 말하면 사람들은 의심하고, ‘공정’을 말하면 비웃고, ‘개혁’을 말하면 또 무슨 이해관계가 숨어 있는지부터 찾는다. 원래 가장 무게가 있어야 할 단어들이 가장 가벼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치는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정치의 대체는 단순히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구호를 반복하는 정치에서 정의를 설명하는 정치로,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에서 사실과 결과를 보여주는 정치로, ‘국민’이라는 거대한 추상어 뒤에 숨는 정치에서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비용과 편익이 발생하는지를 말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민생을 살리겠다’고 말한다면 어떤 계층의 소득과 비용이 어떻게 변하는지 말해야 한다. ‘개혁하겠다’고 말한다면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책임지겠다’고 말한다면 어떤 결과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것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 ‘공정하다’고 주장한다면 그 공정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기준이 자신과 상대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가 다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해야 단어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다. 한 사회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서로 합의하는 방식이며, 다음 세대에게 사고의 틀을 전달하는 도구다. 정치가 언어를 계속 구호와 선동의 재료로 소비한다면 그 피해는 정치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언론으로 번지고, 온라인으로 번지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로 번진다. 결국 모든 사람이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떠올리는 사회가 된다.
나는 한국 정치의 개혁이 제도나 선거 방식에서만 시작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말한 것은 지키고, 단어를 사용했으면 그 의미를 설명하고, 주장했으면 결과로 증명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치가 다시 언어를 현실과 연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책임’, ‘공정’, ‘정의’, ‘개혁’ 같은 단어들도 다시 원래의 무게를 되찾을 수 있다.
한국 정치는 한국어를 너무 오래 소비해왔다. 이제는 정치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치는 대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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