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다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표현보다,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나는 본다. 누군가를 약자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을 나보다 낮은 위치에 놓고 바라보게 될 수 있다. 보호한다는 말에도 때로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시선이 섞인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관계가 아
약자를 보호한다는 표현보다,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나는 본다.
누군가를 약자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을 나보다 낮은 위치에 놓고 바라보게 될 수 있다. 보호한다는 말에도 때로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시선이 섞인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나는 사람을 먼저 동등하게 본다.
돈이 많든 적든, 학력이 높든 낮든, 직업이 무엇이든, 말을 잘하든 못하든, 사회적으로 힘이 있든 없든 그것이 인간의 높낮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에는 분명한 격차가 있다. 가진 자원도 다르고, 출발선도 다르고, 정보와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와 시스템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스템의 목적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며 위에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동등한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먼저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이라고 본다.
필요한 것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고, 동정이 아니라 존중이며, 일방적인 보호가 아니라 공정한 규칙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약자를 보호한다기보다,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 것.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선택으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같은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평등에 더 가깝다.
나는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다. 누군가를 약자라고 규정한 뒤 보호해야 한다는 감각보다, 각자를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보고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와 규칙을 먼저 본다.
그리고 나는 이 성향을 미리 인정한다.
내가 모든 가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이 더 잘 보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돌봄을 먼저 보고, 누군가는 자유를 보고, 누군가는 공동체를 보고, 누군가는 안전을 본다.
시스템 설계자가 자신의 가치관을 완성된 정답이라고 믿는 순간, 시스템은 그 한 사람의 세계관에 갇힌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지 않는 것까지 억지로 대신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은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이 한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관점으로 질문하고, 수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스템은 설계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나는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답을 더해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 설계자의 역할이다.
나는 차가운 사람, 따뜻한 사람 둘 중 하나라기 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금속, 철이나 쇠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말이 느리다고 해서 생각까지 얕다고 보지 않는다.
표현이 서툴 수 있고, 문장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까지 가볍게 취급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말을 천천히 이어가고, 한 문장을 끝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보자. 많은 사람은 중간에 말을 대신 완성하거나, 이미 무슨 뜻인지 안다고 판단하고 대화를 끝내버린다.
나는 되도록 그 사람이 끝까지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듣는다.
잘 안들리면 몸을 기울여서 듣는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시 묻고, 그 안에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그 이유는 특별히 배려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말도 내 말과 똑같이 끝까지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평등은 거창한 선언보다 이런 작은 행동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 것.
그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잘 안들리면 몸을 기울여서 듣는 것.
그리고 되도록 끝까지 듣는 것.
안 들리면 다시 물어보고.
나는 누군가의 말이 느리다고 해서 생각까지 얕다고 보지 않는다.
내게는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친구가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쓰고 때로는 집착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안다.
오히려 한국 사회 자체가, 사람을 그냥 한 사람으로 보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끝까지 기다려 들을 줄 모르는 심각한 장애를 가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이 느리면 중간에 끊고, 대신 말하고, 대충 알아들었다고 생각한다. 편견을 가지고 먼저 판단하기도 한다.
나는 그냥 기다린다.
무슨 말을 하는지 끝까지 듣는다.
잘 안들리면 몸을 기울여서 듣는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히려 이 친구가 나보다 더 깊게 생각한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말의 속도와 생각의 깊이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평등은 이런 것이다.
사람을 처음부터 아래에 두지 않는 것.
말이 조금 느리더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실제로 끝까지 듣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