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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분·정치·시사·조회

더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더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나는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를 상당히 강하게 신뢰한다. 시장은 중앙의 단일한 계획자가 보유하기 어려운 분산된 정보를 가격과 경쟁을 통해 조정하고, 경쟁은 기업과 생산방식의 선택을 압박하며, 이윤은 소비자의 수요에 반응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다. 하이에크는 경제문제를 모든 관련 정보를 한곳에 모아 계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나는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를 상당히 강하게 신뢰한다.

시장은 중앙의 단일한 계획자가 보유하기 어려운 분산된 정보를 가격과 경쟁을 통해 조정하고, 경쟁은 기업과 생산방식의 선택을 압박하며, 이윤은 소비자의 수요에 반응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다. 하이에크는 경제문제를 모든 관련 정보를 한곳에 모아 계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 흩어진 지식을 활용하는 문제로 보았고, 코스 역시 가격체계가 경제를 조정하는 동시에 그 가격체계를 사용하는 데에는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은 조직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실제로 OECD 역시 오늘날 정부가 직면한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를 정부의 규모 자체가 아니라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여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어떤 일을 한다면 그 일은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더 많은 공무원, 더 많은 규정, 더 많은 예산이 자동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OECD 자료에서도 일반정부 고용의 비중과 구조는 국가마다 크게 다르며, 어떤 국가에서는 의료·교육·응급서비스를 공공부문이 직접 제공하고 다른 국가에서는 민간이나 비영리 부문을 통해 제공한다는 점이 나타난다. 즉, 동일한 사회적 서비스를 어떤 조직구조로 생산할 것인가는 별도의 설계 문제다.

그래서 내가 국가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국가의 크기보다 국가의 생산성이다.

희소성이 바뀌면 정책의 가능성도 바뀐다

경제학의 출발점에는 희소성이 있다.

인간의 욕구와 원하는 재화·서비스는 가용한 자원보다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동시에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선택과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노동·토지·자본과 같은 생산요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는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를 확대하려면 의료서비스를 생산할 자원이 필요하고, 교육을 확대하려면 교사와 시설 등의 자원이 필요하며, 복지제도를 운영하려면 재원을 조달하고 대상자를 확인하고 지급하고 집행하는 행정적 자원도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비용의 문제다.

코스가 지적했듯이 현실의 경제에서는 거래 자체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가격을 발견하고, 협상하고, 계약을 작성하고, 이행을 확인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 모두 자원을 필요로 한다. 노스 역시 제도와 기술이 생산에 필요한 거래·전환 비용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사회정책이 충분히 실행되지 못했다면 그 이유를 반드시 그 정책의 가치에만 돌릴 수는 없다.

그 정책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생산성과 행정능력이 충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요한 구분이다.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가와 어떤 정책이 현재의 기술·재정·행정능력으로 실행 가능한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기술은 경제적 가능성의 경계를 움직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 발전이 중요해진다.

기술은 생산함수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특정 작업에서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해 비용을 낮추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동시에 자동화된 작업을 수행하던 노동자에게는 일자리 감소라는 조정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자동화 연구의 핵심적인 결과다.

AI 역시 단순한 추상적 가능성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실증연구에서 5,179명의 고객지원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생성형 AI 도입은 시간당 처리 가능한 문제 수로 측정한 생산성을 평균 약 14% 높였으며, 초보·저숙련 노동자에게서 효과가 특히 크게 나타났다.

OECD의 2024년 분석 역시 AI가 장기적으로 생산성 증가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는 범용기술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효과의 크기와 분배효과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OECD가 여러 연구를 종합해 추정한 시나리오에서는 향후 10년 동안 AI가 연간 총요소생산성을 약 0.25~0.6%포인트, 노동생산성을 약 0.4~0.9%포인트 높일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는 예측치이지 확정된 결과는 아니지만, AI가 경제의 생산가능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설에 구체적인 정량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기술이 사회주의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기술은 정치가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의 집합을 변화시킨다.

과거에는 너무 비쌌던 것이 더 싸질 수 있고, 과거에는 사람이 해야 했던 일이 자동화될 수 있으며, 과거에는 관리하기 어려웠던 규모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재정적으로 또는 행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정책이 미래에는 새로운 선택지로 들어올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기술이 비용을 낮춘다고 해서 모든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 역시 데이터센터와 전력·반도체·네트워크 같은 물리적 인프라에 의존하고, AI의 경제적 효과 역시 기술 자체뿐 아니라 실제 도입률과 조직의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기술 발전은 희소성을 없애기보다는 희소한 자원의 구성을 바꾸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정치의 질문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어떤 정책을 논의할 때,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이 생산성과 행정능력을 높인다면 여기에 새로운 질문이 추가된다.

“기술 발전으로 그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실제 정책논의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IMF는 생성형 AI가 생산성 증가뿐 아니라 공공서비스 전달을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 충격과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보호와 조세제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즉 기술 발전은 단순히 “더 많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다.

생산성 증가를 어떻게 사회적 결과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정책문제를 함께 만들어낸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정치가 시작된다.

더 많은 서비스를, 더 작은 행정비용으로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국가관료제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회적 결과를 확대하면서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정의 비용은 낮추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OECD는 AI가 정부 내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공공서비스를 더 빠르고 맞춤형으로 제공하며, 의사결정과 정책설계를 지원하고, 부정행위를 탐지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반복적인 데이터 입력, 급여 처리, 기본적인 민원응대, 정보 검증과 분류 같은 업무는 AI와 자동화의 적용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제시된다.

OECD가 분석한 200개의 정부 AI 활용사례에서도 AI 활용은 공공서비스와 내부 운영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생산성·대응성·책임성을 높이는 것이 주요 목표로 나타난다.

따라서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다면 더 많은 서비스를 더 적은 행정노동으로 제공하는 국가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나는 한 가지를 구분하고 싶다.

AI가 업무를 자동화한다고 해서 공무원 수가 자동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절감한 인력이 새로운 업무로 재배치될 수도 있고, 기존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데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OECD 역시 정부 AI 도입의 효과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조직·데이터·인력·제도적 조건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내가 주장하는 것은 “AI를 도입하면 공무원을 해고하자”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행정체계를 만들고, 자동화 가능한 업무에 사람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 구조를 없애자는 것이다.

국가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더 똑똑해지는 것.

공무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공무원 한 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

규제를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

데이터와 기술을 이용해 필요한 규제를 더 정밀하게 집행하는 것.

그리고 같은 재원으로 더 많은 시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 방향은 단순한 이념적 주장이 아니라 OECD가 제시하는 디지털 정부의 핵심 방향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OECD는 데이터·디지털 도구·AI가 정부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으며, 규제 단순화와 데이터 활용, AI 활용, 예산·조달 시스템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시장 대 국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묻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정치가 단순히 좌파와 우파의 대립으로만 설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제도가 주어진 자원으로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가가 될 것이다.

시장과 정부 모두 자원배분의 방식이고, 현실의 제도는 어느 하나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코스가 강조했듯이 현실의 경제에는 시장뿐 아니라 조직 내부의 계획과 행정적 조정도 존재하며, 어떤 조정방식이 효율적인지는 각각의 거래비용과 조직구조에 달려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시장인가 국가인가”라는 추상적 질문만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가.

어떤 방식이 더 강한 인센티브를 만드는가.

어떤 방식이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하는가.

어떤 방식이 실패했을 때 더 빠르게 수정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이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가.

이것이 내가 시장주의자로서 국가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적으로 보이는 정책’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장주의자인 내가 미래의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사회주의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이름이 아니라 경제적 실행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AI와 자동화가 생산성을 높이고, 디지털 인프라가 행정비용을 낮추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복잡한 정책대상을 더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면, 과거에는 비용 때문에 어려웠던 일부 사회적 보장제도의 실행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IMF와 OECD 모두 AI의 생산성·공공서비스 개선 가능성과 동시에 분배·고용 충격을 함께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곧바로 “기술이 사회주의를 증명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AI의 효과는 자동적으로 평등을 가져오지 않는다.

IMF의 2025년 연구는 AI가 고소득 노동자의 일부 업무를 대체하면서 임금불평등을 낮출 수도 있지만, 동시에 고숙련 노동자와 자본 보유자가 AI의 보완성과 자본수익 증가를 통해 더 큰 이익을 얻으면서 부의 불평등을 확대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즉 기술은 특정 정치체제를 자동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기술은 선택 가능한 정책의 공간을 넓히지만, 그 공간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정치와 제도의 문제다.

시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성공을 활용하는 것

그래서 나는 시장을 버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시장이 더 강력해지기를 원한다.

기업은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하고, 경쟁은 생산성을 높여야 하며, 새로운 기술은 기존 생산방식을 끊임없이 대체해야 한다.

실제로 자동화와 AI의 생산성 효과에 관한 연구는 기술이 생산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노동대체와 분배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술 발전의 핵심은 단순히 “일자리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동시에 그 생산성 증가의 편익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결정하는 새로운 제도적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IMF 역시 AI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시장 충격과 불평등 문제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조세·사회보호제도가 그 이익을 더 넓게 분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시장의 패배일 필요는 없다.

충분한 생산성이 만들어낸 풍요의 일부를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반대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생산성에 대한 하나의 제도적 선택일 수도 있다.

결국 Lee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미래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 가장 적은 자원으로 가장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시장이 더 잘하는 것은 시장에 맡긴다.

국가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맡을 수 있다.

민간과 국가가 함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그렇게 한다.

그리고 기존의 어떤 제도도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면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이것은 시장주의의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주의를 수단에 대한 종교가 아니라 성과에 대한 원칙으로 이해하는 것에 가깝다.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제거하고 독점을 보호한다면 시장의 원리와 모순될 수 있다.

반대로 국가가 어떤 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과 더 높은 품질로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을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시장적이라고 배제할 이유도 없다.

코스의 핵심적인 통찰 역시 모든 경제활동을 시장 또는 정부 가운데 하나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래비용을 고려했을 때 어떤 조정방식이 더 효율적인지를 현실에서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책의 이름이 아니다.

생산성이다.

비용이다.

인센티브다.

정보다.

그리고 결과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여기서 나는 조금 더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싶다.

기술이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노동의 양을 실제로 줄일 수 있다면, 그 생산성 증가로 만들어진 풍요를 우리는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 질문은 아직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AI가 노동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생산성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소비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자본축적에 사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산업과 기술에 재투자할 수도 있다.

혹은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과 선택권을 돌려주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나는 마지막 가능성을 보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교육받을 수 있는 사회.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이유 때문에 기본적인 삶의 선택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태어난 환경이 평생의 선택지를 결정하는 정도를 낮추는 사회다.

이것은 현재의 불평등을 단순히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가능성이 확대될 때, 그 확대된 가능성을 인간의 자유와 기회로 얼마나 전환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IMF가 AI 정책을 논의하면서 생산성 향상과 함께 사회보호·교육·조세체계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기술의 경제적 효과가 자동적으로 사회적 편익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

그래서 나는 시장을 믿는다.

나는 기술을 믿는다.

그러나 시장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언제나 자동적으로 인간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지는 않는다.

시장에는 경쟁과 혁신의 힘이 있지만, 시장은 동시에 독점과 외부효과와 분배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술에도 생산성 향상의 힘이 있지만, 기술은 노동대체와 불평등을 확대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도 아니고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도 아니다.

현실의 제약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 실제로 가능한가.

그 비용은 얼마인가.

기술은 그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가.

어떤 인센티브를 만드는가.

어떤 부작용을 만드는가.

그리고 생산성 향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가능성을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정치경제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국가는 커질 필요가 없다.

더 생산적이면 된다.

복지의 이름으로 비효율적인 관료제를 영구히 보호할 필요도 없다.

공공서비스는 더 좋아지고, 행정비용은 더 낮아지면 된다.

시장을 버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시장이 더 많은 생산성을 만들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이 과거의 희소성을 완화한다면, 우리는 그때 새롭게 생겨난 선택지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나는 그 선택지가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돌려주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교육.

더 나은 의료.

더 넓은 기회.

더 많은 선택권.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시간.

그것이 내가 말하는 미래다.

시장경제를 버리는 미래가 아니다.

기술을 거부하는 미래도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만들어낸 생산성과 기술이 만들어낸 풍요를 기반으로, 과거에는 비용 때문에 불가능했던 인간적 목표를 다시 계산해보는 미래다.

더 냉철한 머리로 현실의 제약을 계산하고,
더 뜨거운 가슴으로 그 제약이 사라진 뒤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
아마 미래의 정치경제는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다시 쓰일 것이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9월 6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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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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