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2025년 5월 초, 나는 대학교 막학기였다. |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2025년 5월 초, 나는 대학교 막학기였다. 졸업은 가까워지고 있었고, 진로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작년에는 회계사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내게 “너 뭐 하냐”, “회계사 공부 안 하냐”고 물었던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던 일이었고
2025년 5월 초, 나는 대학교 막학기였다. 졸업은 가까워지고 있었고, 진로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작년에는 회계사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내게 “너 뭐 하냐”, “회계사 공부 안 하냐”고 물었던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던 일이었고, 아직 나는 아무런 결과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그 말이 유독 아팠다. 그냥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찌르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부모님과 크게 싸웠다. 정확히는 대판 싸우고, 가방을 들고집을 나왔다. 더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이 길을 가려는지, 왜 지금 회계사나 취업 준비가 아니라 AI 앱을 만들려고 하는지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다. 아직 결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은 너무 약했다. 아무리 “이건 될 것 같다”고 말해도,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으면 결국 걱정으로 되돌아왔다. 그 걱정이 사랑에서 나온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 걱정 안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나와 새벽 버스를 탔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거의 이를 악물고 있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빨리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더 이상 나를 걱정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설명하는 대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남긴 대화 기록이 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조금 아찔하다. 저건 목표라기보다 거의 생존 선언에 가까웠다. 월세 70만 원, 보증금 2천만 원, 생활비 월 200만 원. 나는 숫자까지 적어두고 있었다. 현실을 숫자로 붙잡아야 내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너무 조급했고, 너무 날카로웠고, 너무 절박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막학기였다. 아직 학생이었지만, 사회는 이미 문 앞까지 와 있었다. 졸업하고도 바로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고, 돈을 벌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많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시간을 내 삶에 허락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붙잡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카톡 대화를 캡처해서 올리면, AI가 감정 흐름을 읽고, 상대의 말투를 분석하고, 다음에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추천해주는 앱. 처음 이름은 마음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대학교 막학기 학생이 회계사 공부도, 취업 준비도 아닌, AI로 카톡 대화를 분석해서 연애 상담을 해주는 앱을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허황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관계 앞에서 얼마나 자주 말을 잃는지 알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있다. 서운한데 무너지기는 싫고, 붙잡고 싶은데 매달리는 사람처럼 보이기는 싫은 순간이 있다. 상대의 말 하나를 몇 번씩 다시 읽으면서,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내가 답장을 보내도 되는 건지, 보내면 뭐라고 해야 하는지 혼자 생각하다가 지치는 순간이 있다.
마음결은 그런 순간을 위한 앱이었다. 누군가가 대신 사랑을 해주는 앱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조금 더 잘 닿을 수 있도록 다음 한 문장을 도와주는 앱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투박했다. Streamlit으로 화면을 띄우고, OpenAI API를 붙이고, 카톡 캡처를 읽기 위해 OCR을 붙였다. Firebase에 감정 기록을 저장하려고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너무 서툴렀다. API 호출 방식 하나 때문에 막혔고, OCR은 카톡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Firebase 설정도 버거웠다. 공용 와이파이에서 VPN을 켤지 끌지도 고민해야 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10분이면 넘길 것 같은 문제들이 그때는 하루를 잡아먹는 전투였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막히면 묻고, 고치고, 다시 실행했다. 또 막히면 다시 물었다. 그렇게 마음결의 첫 화면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내가 계속 붙잡았던 말이 있다.
지금 봐도 맞는 말이다. 이 앱은 단순히 답장을 생성하는 앱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 한 문장을 도와주는 앱이어야 했다. 그래서 추천 멘트가 설명문이면 안 됐다.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같은 조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실제 카톡창에 그대로 넣을 수 있는 말이었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지만 마음이 담긴 말,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지만 관계의 흐름을 조금 앞으로 움직이는 말, 사용자가 복사해서 보내도 어색하지 않은 한 문장. 나는 그걸 만들고 싶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이것도 지금 봐도 맞는 말이다. 연애 대화는 텍스트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ㅎㅎ”도 상황에 따라 다르고, 같은 “바빠”도 관계의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앱은 단순히 대화를 분석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됐다. 필요한 맥락을 잘 물어봐야 했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지, 최근 분위기는 어땠는지, 사용자는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가 평소에도 이런 말투인지. 그런 정보를 모아야 추천 문장이 진짜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기술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꽤 정확히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말을 잃는다. AI는 그 순간의 감정과 맥락을 읽고, 다음 한 문장을 도와줄 수 있다. 그 한 문장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마음을 다루는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5월의 나는 새벽 버스에서 마음결을 시작했다. 여름에는 OCR, GPT API, Firebase, 사용자 감정 분석, 답장 추천을 붙이며 MVP를 만들었다. 그리고 9월에는 처음으로 온디바이스 AI 런타임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서버에 기대어 마음을 분석하는 앱이었지만, 점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마음을 다루는 AI라면 더 가까운 곳에서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 더 빠르고, 더 조용하고, 더 사적인 방식으로 사용자의 손 안에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카톡 대화, 감정 흐름, 상대 심리, 추가 질문, 다음 답장, 개인화, 그리고 더 사적인 AI. 지금 와서 돌아보면 방향은 처음부터 거의 같았다.
그래서 요즘 다시 기록을 읽으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그때의 방향이 완전히 틀린 게 아니었다. 아니, 거의 그대로였다. 1년 뒤, 마음결은 love.maeum.ai로 이어졌다. 마음의 캠프파이어라는 이름으로 구글플레이에 올라갔다. 2026년 3월부터는 실제 매출도 나기 시작했다.
처음의 목표였던 “2025년 11월 경제적 독립”은 실패했다. 나는 그때 말한 기한 안에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 보증금 2천만 원도, 안정적인 월수입도, 내가 상상했던 속도의 결과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가 바뀌었고, 이름이 바뀌었고, 기술도 바뀌었지만, 문제의식은 그대로 남았다.
한동안 나는 그때를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냥 다음 기능을 만들고, 다음 배포를 준비하고, 사용자 반응을 보고, 매출을 확인하고, 또 고쳤다. 사람이 힘든 기억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정확히는 잊는다기보다, 살기 위해 덮어두는 것 같다. 그런데기록을 다시 보면 시간이 갑자기 접힌다. 내가 그때 진짜 절박했구나. 내가 그때 진짜 외로웠구나. 내가 그때진짜 이걸 만들려고 했구나. 뒤늦게 그런 생각이 밀려온다.
그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감각이었다.
정말 그랬다. 내 생각에는 맞았다. AI가 사람의 대화를읽고, 감정의 흐름을 분석하고, 다음 말을 도와주는 방향은 분명히 올 것 같았다.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 자주 흔들리고, 그 순간에 AI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겉만 봤다. 대학교 막학기, 회계사 공부 안 함, 취업 준비처럼 보이지 않음, 돈 아직 못 범, AI로 연애 상담 앱 만든다고 함. 그 조합만 보면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던 본질은 달랐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말을 잃는다. AI는 그 순간을 도울 수 있다. 감정과 맥락을 읽고, 사람이 사람에게 더 잘 닿을 수 있게 다음 한 문장을 도와줄 수 있다. 나는 그걸 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냥 응원을 받지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보고 있는 방향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이 안 되는 선택처럼 보였다. 그게 가장 외로웠다. 내가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설명하려고 할수록 더 이상한 사람이 되는 상태. 그래서 더 만들고 싶었다. 설명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창업가의 첫 장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 나는 창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창한 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멋진 기획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남으려고 만들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안에는 창업가의 여정이 다 있었다. 가족과의 충돌, 진로 불안, 돈 압박,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디어, 허접한 MVP, 기술 삽질, 사용자 로그, 첫 매출,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는 회고까지.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내 창업가로서의 첫 장면이었다.
물론 지금도 화가 나는 감정은 있다. 왜 아무도 못 봤을까. 왜 그렇게 겉만 봤을까. 왜 돈, 직함, 시험, 취업, 안정적인 루트만 현실이라고 말했을까. 그 시절 내가 부딪힌 한국식 현실감은 너무 좁았다.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증명 전까지는 아무 말도 믿어주지 않는다. 정해진 경로 밖으로 나가면 바로 불안정한 사람처럼 본다. 그때의 나는 그 분위기가 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고 싶지는 않다. 분노는 불씨가 될 수 있지만, 집이 될 수는 없으니까.
대신 이렇게 남기고 싶다.
완전히 틀린 게 아니었다. 거의 그 방향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미숙했고, 조급했고, 날카로웠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헛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제품이 없었을 뿐이다. 아직 매출이 없었을 뿐이다. 아직 아무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증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방향은 있었다.
그 방향은 마음결이 되었고, 마음결은 마음의 캠프파이어가 되었고, 마음의 캠프파이어는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 옆에서 작은 불을 피우고 있다. 처음엔 내가 살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돕는 앱이 되어 있었다.
2026년 6월 28일, 나는 1년 전의 대화 기록을 다시 읽었다. 울컥했다. 짜증도 났고, 서럽기도 했고, 조금은 대견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목표도 밀렸고, 계획도 서툴렀고, 많은 것을 몰랐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날 나는 멈추지 않았다. 부모님과 크게 싸우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고, 새벽 버스를 탔고, 서울로 가는 길에 마음결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도망친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보는 방향이 완전히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을 내가 붙잡기 위해서.
그게 마음결의 첫 번째 결이었다. 완성된 제품도, 대단한 성공도 아니었다. 다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을 내가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