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운더 블로그
·2분·에세이·조회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말

"너 그러다 번아웃 온다. 좀 쉬어." |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말 "너 그러다 번아웃 온다. 좀 쉬어." 한동안 이 말이 고마운 것도 같았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결국 이 말이 상당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은 아무 비용이 들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시간도, 주의도, 개입할 각오도. 그저 걱정하는 모양새만 취하고, 문제 전체를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말

"너 그러다 번아웃 온다. 좀 쉬어."

한동안 이 말이 고마운 것도 같았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결국 이 말이 상당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은 아무 비용이 들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시간도, 주의도, 개입할 각오도.

그저 걱정하는 모양새만 취하고,

문제 전체를 다시 나에게 곱게 돌려준다.

겉은 배려인데 속은 회피다.

위로의 형식을 빌린 손 떼기다.

게다가 이 말에는 은근한 판단이 깔려 있다.

'넌 네 한계를 모른다. 무모하다.'

말하는 사람은 나보다 한 뼘 위,

더 현명한 자리에 선다.

나는 자기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상대는 그걸 일깨워주는 사람이 된다.

걱정의 문법을 쓰지만,

실은 은근한 위계의 문법이다.

진짜 좋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비싸다.

자기 시간과 주의를,

경우에 따라 실제 노동을 걸어야 하는 말이다.

그 비용이 이 말을 진짜로 만든다.

그리고 이 말은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넌 네가 뭘 하는지 안다를 전제하고,

그냥 옆에 서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신 곁에 나란히.

물론 상대가 정말로 자기가 무너지는 걸 못 볼 때는 "쉬어"가 맞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때조차 차이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개입할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이냐,

대화를 끝내려고 던지는 말이냐.

결국 이건 책임의 문제다.

"쉬어"라고 말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그 순간을 일회성 회피로 대한 것이다.

한 번 배려한 척하고 빠지면 그만인 판.

반면 "도울 게 있을까"라고 묻는 사람은 지속적인 협업 의사를 밝히고 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함께 있을 사람의 말투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문장으로 사람을 구분하게 됐다.

누가 나와 진짜 같은 판에 서 있는지는,

위로의 온도가 아니라 위로의 비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싼 위로는 거절이다. 다만 리본을 달았을 뿐이다.

(.. ㅎㅎ 근데 내일이라도 좀 쉬긴 해야할듯 하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7월 4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L
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mail protected] 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