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려치기의 사슬: 왜 한국에는 확장의 서사가 없었는가
후려치기의 사슬: 왜 한국에는 확장의 서사가 없는가 1.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한국사에는 확장의 서사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희박하다. 대부분은 방어의 이야기다. 침략을 견디고, 버티고, 회복하는 서사. 광개토대왕이 늘 소환되는 것이 오히려 그 부재를 증명한다 — 확장의 기억이 흔했다면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한국사에는 확장의 서사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희박하다. 대부분은 방어의 이야기다. 침략을 견디고, 버티고, 회복하는 서사. 광개토대왕이 늘 소환되는 것이 오히려 그 부재를 증명한다 — 확장의 기억이 흔했다면 하나를 그렇게까지 반복해서 불러내지 않는다.
이것을 한탄으로 읽으면 거기서 멈춘다. 나는 다르게 읽는다. 확장의 서사가 없다는 것은 민족의 기질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구조는 분석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그 구조를 아래로 한 층씩 내려가 보려 한다. 재벌에서 시작해, 국가 권력의 재원 구조를 지나, 단가표의 맨 끝단까지.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위를 올려다볼 것이다. 거기엔 삼성도 하청인 더 큰 사슬이 있다.
먼저 하나의 렌즈를 놓자.
세계사에서 판을 쥐는 방법은 시대마다 갈아치워졌다. 고대에는 땅이었다. 로마는 지중해를 법과 도로로 묶었다. 중세에는 제도와 종교였다. 근대에는 무역과 해군이었고 —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식회사라는 발명으로 판을 쥐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공장과 자본이었다. 20세기에는 표준과 기축통화와 기술 프로토콜이었다. 미국은 달러와 인터넷 표준으로 세계를 엮었다.
땅 → 무역 → 자본 → 표준 → 프로토콜. 확장의 매개가 계속 이동했다.
이 이동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다. 매개가 바뀌면 위계가 뒤집힌다. 땅이 매개일 때 강했던 플레이어가, 표준이 매개가 되면 밀려난다. 반대로 땅에서 불리했던 작은 플레이어가 금융이나 표준에서는 꼭대기에 설 수 있다. 네덜란드가 그랬다.
한국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역사의 대부분은, 판의 매개가 땅과 군사였던 시대의 이야기다. 작고, 끼여 있고, 늘 더 큰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 있었다. 영토가 매개인 게임에서 한국의 지리는 구조적 불리함이었다. 이건 바꿀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매개는 이미 옮겨갔다. 지금 판을 쥐는 것은 땅이 아니라 IP·표준·병목이다. 이 전제를 깔고, 이제 한국의 내부 구조로 내려가자.
한국의 권력 구조를 멀리서 보면 두 축이 보인다.
한 축은 서사를 쥔다. 정부는 애국의 언어로 사람을 붙잡는다. "우리가 뭉쳐야 산다", "국익", "안보". 다른 한 축은 자본을 쥔다. 실제 현금과 기술은 삼성과 하이닉스 같은 소수 그룹에 있다.
이 둘은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정부는 재벌 없이는 성과(수출·고용·GDP)를 내지 못하고, 재벌은 정부 없이는 규제와 정책과 면죄부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 붙잡아준다.
여기서 나는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쓴다. 이것은 밀실의 담합이 아니다. 그렇게 프레이밍하면 "증거를 대라"는 반박에 무너진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 단단한 것이다 — 각자가 자기 인센티브를 따라갔을 뿐인데 그 경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균형점에 수렴한 상태. 누구도 악하지 않아도 이 구조는 성립한다. 오히려 악인이 없기 때문에 더 안정적이다.
그리고 이 구조에서 애국 서사가 하는 기능이 핵심이다. 애국 서사는 확장 서사의 대체재로 작동한다. "지켜야 한다"는 방어의 언어는 현 구조의 유지를 정당화한다. "지금 이룬 것을 지키자"는 곧 "판을 흔들지 말자"이고, 그것은 정확히 이 균형이 원하는 바다. 반면 확장의 언어 — "새 판을 짜자, 밖으로 나가자" — 는 위험하다. 기존 통로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어 서사가 재생산되고 확장 서사는 억눌린다. 1장에서 말한 "확장 서사의 부재"는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서사-자본의 균형이 방어의 언어를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의 노드에서 현미경으로 보자. 국가정보원이다.
흔히 국정원을 강력한 기관으로만 생각한다. 예산 규모로 보면 실제로 작지 않다. 2024년 본예산만 약 9천억 원 규모이고, 다른 기관에 숨겨놓은 정보예산까지 더하면 전체는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전액 특수활동비로 편성되어 외부 감시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모가 크다는 것과 자립했다는 것은 다르다. 국정원은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한다. 재벌은 자기 현금흐름이 있지만, 국정원의 재원은 전적으로 배정에 종속된다. 매년 국회가 삭감할 수 있는 예산에 100% 의존한다.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자생적 재원이 없다는 것 자체가, 외부의 자원과 붙을 구조적 유인이 된다. 자립한 기관은 굳이 붙을 이유가 없다. 종속된 기관은 붙어야 한다. 그리고 현대 정보활동의 실제 자원 — 반도체, 통신, 데이터, 기술 — 은 민간 대기업에 있다.
세 가지가 겹친다. 불투명성(밖에서 안 보인다), 재원 종속(스스로 못 번다), 강한 권한(정보·수사·인허가라는 줄 것이 있다). 이 삼박자는 자본과 권한이 은밀하게 교환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돈 없는 권한과 권한 없는 돈이 서로를 정확히 채워준다.
분명히 해두자. 이것은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사실 주장이 아니다. "이런 구조는 카르텔을 유발하기 쉽다"는 구조 진단이다. 이 선을 넘지 않는다. 구조 분석에는 증거가 필요 없지만, 사실 주장에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3장의 서사-자본 분업이 미시적으로 어떻게 붙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일 뿐이다.
이제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 보자.
위에서 서사와 자본이 판을 고정하면, 그 안정의 비용은 아래로 전가된다. 대기업은 원청으로서 하청 중소·중견기업의 납품단가를 깎는다. 하청은 떠날 수 없다. 다른 판로가 없기 때문이다 — 이것이 3장에서 말한 "확장 통로 봉쇄"의 결과다. 떠나면 죽으니까, 후려쳐져도 남는다.
그래서 마진은 위로 빨려 올라가고, 하청에는 R&D도 임금 인상도 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 여기서 결정적인 지점이 있다. 단가 후려치기는 단순한 불공정이 아니라, 확장 통로를 물리적으로 봉쇄하는 장치다. 마진을 남기지 못하면 자체 기술·브랜드·해외 판로에 투자할 종잣돈이 생기지 않는다. 종잣돈이 없으면 원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가지 못하면 의존은 더 깊어진다. 이 순환이 하청을 "판을 짜는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에서 잘라낸다.
3장의 "확장 서사 매몰"이 개별 기업 단위에서 집행되는 방식이 이것이다. 서사가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몰시키는 구체적인 손이 있다. 그 손이 단가표다.
여기서도 균형을 지키자. 이것을 "악한 대기업이 착한 중소기업을 착취한다"로 그리면 반쪽짜리다. 원청도 생존 논리로 움직인다. 글로벌 경쟁에서 원가 압박을 받으니 아래로 전가하는 것이다. 원청 역시 위에서 후려쳐지고 있다. 그러니 정확한 그림은 이렇다 — 원가 압박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사슬이 있고, 그 맨 끝에는 더 전가할 곳이 없어서, 자본 축적이 아니라 생존으로 소진되는 층이 있다. 악인이 아니라 구조가 비용을 맨 아래로 흘려보낸다.
그런데 이 사슬은 국경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내에서 원청인 대기업은, 글로벌 사슬에서는 하청이다. 엔비디아가 GPU의 설계와 공급과 우선순위를 쥐면, 삼성과 하이닉스도 그 밑에서 스펙에 맞추고 물량을 조정당하는 하청이 된다. HBM을 납품하고, 파운드리에서 경쟁에 밀리고. 사슬은 이렇게 이어진다:
엔비디아 → 삼성·하이닉스 → 국내 중견·중소 → 그 아래.
각 층이 위에 후려쳐지고 아래로 전가한다. 5장의 국내 구조는 사실 더 큰 사슬의 한 토막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 왜 엔비디아가 맨 위인가. 제조를 제일 잘해서가 아니다. 엔비디아는 공장이 없다. 팹리스다. 땅도 공장도 없는데 사슬의 꼭대기에 있다. 무엇을 쥐었길래?
병목을 쥐었다. 설계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표준(CUDA), 생태계 락인. 즉 2장에서 말한 그것이다 — 판의 매개가 제조에서 표준·IP로 옮겨갔다. 삼성은 제조를 쥐었고(이전 시대의 매개), 엔비디아는 표준을 쥐었다(현 시대의 매개). 그래서 제조를 아무리 잘해도, 표준을 쥔 쪽 밑으로 들어간다.
제조 강자가 표준 강자 아래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개가 이미 넘어갔다는 증거다. 2장의 렌즈가 반도체 사슬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확장 통로가 봉쇄된 구조에서, 뚫는 길은 무엇인가.
답은 사슬 안에서 더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제조 하청, API 재판매 — 이런 자리로 들어가면 영원히 후려쳐진다. 위에 더 전가할 곳이 없는 끝단에서 생존으로 소진될 뿐이다.
뚫는 유일한 길은 병목을 쥐는 것이다. 엔비디아가 공장 없이 꼭대기에 섰듯, 표준·IP·통제권을 쥐면 규모가 작아도 사슬의 위쪽에 설 수 있다. 매개가 IP로 옮겨간 시대의 유일한 비대칭 전략이다. 이것이 네덜란드가 땅 없이 판을 쥔 방식의 현대판이다.
내가 온디바이스 추론 엔진을 짓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규제 산업과 공공, 국방이 원하는 것은 "우리 데이터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우리가 통제하는 AI"다. 국력이 밀리는 나라일수록, 프론티어를 쥐지 못하는 기관일수록, 이 주권에 대한 수요는 커진다. 클라우드 종속에서 벗어난 통제권 — 그것은 곧 작은 기관과 개인도 병목의 한 조각을 쥐는 일이다.
특허로 IP를 묶고, 자체 런타임으로 성능의 근거를 쥐고, 온프렘으로 통제권을 상품화한다. 이것은 제조 하청의 반대 방향이다. 후려쳐지는 층이 아니라, 후려칠 수 없는 층에 서려는 시도다.
한국사에 확장의 서사가 없었던 것은, 확장의 매개가 땅이었던 시대의 이야기다. 매개는 이미 IP와 표준과 통제권으로 넘어왔다. 땅에서 밀린 플레이어에게, 지금이 유일하게 열린 창이다.
없는 것에서 시작했다. 없는 서사는, 이제 쓰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