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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정치·시사·조회

나는 스물두 살까지 광주에서 살았다.

사람은 선동으로 붙잡을 수 있어도 인재는 붙잡을 수 없다. | 나는 스물두 살까지 광주에서 살았다. 그래서 광주를 비판할 때 굳이 외부인의 시선을 빌릴 필요가 없다. 나는 그 안에서 자랐고, 그 지역의 분위기와 언어와 사고방식을 직접 겪었다. 내가 느낀 광주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지역 기득권이 오랫동안 피해의식, 감성팔이, 비이성적 사고, 선동을 이용해 내부를 결집시키고, 그

나는 스물두 살까지 광주에서 살았다.

그래서 광주를 비판할 때 굳이 외부인의 시선을 빌릴 필요가 없다. 나는 그 안에서 자랐고, 그 지역의 분위기와 언어와 사고방식을 직접 겪었다.

내가 느낀 광주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지역 기득권이 오랫동안 피해의식, 감성팔이, 비이성적 사고, 선동을 이용해 내부를 결집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전의식을 갉아먹어 왔다는 것이다.

광주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과거가 현재보다 크다.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 때도 과거를 이야기한다. 산업을 이야기해야 할 때도 차별을 이야기한다. 경쟁력을 이야기해야 할 때도 서러움을 이야기한다. 왜 우리가 뒤처졌는지 냉정하게 내부를 뜯어봐야 할 때도 외부가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말한다.

이 문화가 광주를 망가뜨린 핵심 중 하나이다.

물론 광주에는 실제로 아픈 역사가 있다. 5·18은 명백한 국가폭력이었고, 호남이 정치·경제적으로 차별받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역사적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피해를 수십 년 동안 현재의 정치적 자산으로 재생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기억은 필요하다.

하지만 피해의식의 재생산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이 둘을 섞어왔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는 피해자다”, “우리는 차별받았다”, “우리는 억울하다”라는 감정을 지역 정체성으로 만들고, 그 감정을 반복해서 자극하면서 내부를 결집시키는 방식이 굳어졌다.

이 방식은 정치적으로는 편하다.

복잡한 현실을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 산업이 약한가.

왜 임금이 낮은가.

왜 좋은 기업이 부족한가.

왜 젊은 사람이 떠나는가.

왜 창업가와 기술자가 굳이 광주를 선택해야 하는가.

이런 불편한 질문에 답하는 대신,

“중앙이 문제다.”

“수도권이 다 가져갔다.”

“우리는 오랫동안 차별받았다.”

이렇게 말하는 자위는 아무 도움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말이 너무 오래, 너무 편리하게 면죄부처럼 사용됐다는 것이다.

광주의 청년 유출은 이미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2025년 광주의 19~34세 청년 순유출률은 2.5%로 7대 특·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해 순유출된 청년은 7천 명을 넘었고, 광주는 2000년대 초반 이후 청년 순유출이 장기간 이어졌다.

사람들이 떠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당연히 일자리와 임금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왜 수십 년 동안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는가.

광주에서 젊은 사람에게 “고향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사랑할 이유를 만든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좋은 기업을 만들었는가.

높은 임금을 만들었는가.

세계와 연결되는 산업을 만들었는가.

창업가가 몰려오는 도시를 만들었는가.

능력 있는 사람이 학연·지연·기득권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는가.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도시를 만들었는가.

그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느낀 것도 이것이다.

광주 출신 젊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 고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굳이 광주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한다.

지방 출신이라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자기가 나온 지역이 계속 과거에 매달리고, 피해의식을 반복하고, 감정적인 언어로 사람을 결집시키고, 발전보다 명분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생기는 피로감이 있다.

특히 야망이 있고, 경쟁하고 싶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싶고, 세계로 나가고 싶은 젊은 사람에게 이런 문화는 숨이 막힌다.

민형배 시장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미래 산업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과거의 차별과 서러움, 전라도의 역사와 영혼 같은 언어를 끌어온다.

나는 이게 정말 싫다.

반도체를 유치하고 싶으면 반도체 이야기를 하면 된다.

광주에 전력이 얼마나 있는가. 있다

부지가 얼마나 있는가. 있다

인재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지금부터

기업에 어떤 비용 우위가 있는가. 있다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지금부터

용인, 평택, 이천, 청주와 경쟁해서 왜 광주가 선택받아야 하는가. 증명하라

이걸 말하면 된다.

“산업은 서러움으로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기업은 “우리가 천 년 동안 억울했다”는 말을 듣고 공장을 짓지 않는다.

전력, 인재, 비용, 공급망, 시장, 규제, 생산성, 수익성을 보고 움직인다.

2026년에 미래 산업을 이야기하면서까지 과거의 피해 서사를 끌고 오는 것 자체가 내가 말하는 문제의 상징이다.

광주가 정말 변하고 싶다면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왜 경쟁에서 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누가 우리를 차별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좋은 기업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무엇을 받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피해자의 언어에서는 발전이 나오기 어렵다.

발전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산업이 약하면 약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인재가 빠져나가면 왜 빠져나가는지 내부부터 봐야 한다.

도시가 매력 없으면 매력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고칠 수 있다.

그런데 계속 외부 탓, 역사 탓, 차별 탓만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광주가 불쌍한 도시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강한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광주를 배려해줘야 하는 도시가 아니라, 기업과 인재가 광주에 들어가고 싶어서 경쟁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광주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구걸하는 도시가 아니라,

“광주를 무시하면 당신이 손해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려면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

피해의식으로 내부를 결집시키는 습관.

감성팔이로 논리를 덮는 습관.

비이성적인 선동으로 편을 가르는 습관.

실패의 원인을 계속 밖에서 찾는 습관.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권력 자산으로 소비하는 습관.

광주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위로가 아니다.

더 많은 경쟁이다.

더 많은 기업이다.

더 많은 돈이다.

더 높은 생산성이다.

더 강한 기술이다.

더 좋은 일자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강한 발전의식이다.”

청년에게 광주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마라.

“광주를 사랑할 이유를 만들어라.”

사람은 선동으로 붙잡을 수 있어도 인재는 붙잡을 수 없다.

인재는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8월 13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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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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