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보다가, 어떻게 늙고 싶은지 생각했다
사주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흰 큰개’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비유라고 생각했다. 겉은 노란 토끼인데 본체는 흰 큰개이고, 그 안에는 큰 쇠가 들어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큰개가 아주 오래 살아 늙었을 때, 자기 삶을 돌아보며 무엇을 보고 “그래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사주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흰 큰개’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비유라고 생각했다. 겉은 노란 토끼인데 본체는 흰 큰개이고, 그 안에는 큰 쇠가 들어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큰개가 아주 오래 살아 늙었을 때, 자기 삶을 돌아보며 무엇을 보고 “그래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힘이 있다고 해서 그 힘을 매번 쓸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잘못된 것도 많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많지만, 보이는 모든 문제에 달려들면 결국 상대보다 내가 먼저 지친다. 시간도 잃고, 사람도 잃고, 정작 지켜야 할 것을 돌볼 힘까지 잃는다. 그래서 나는 강함이란 무엇이든 물어뜯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물 수 있음에도 무엇을 물지 않을지 판단할 수 있는 상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신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오래됐다는 이유 하나로 유지되는 방식, 아무도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절차, 누군가가 계속 고통받고 있는데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구조가 있다면 한 번쯤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싶다. 다만 처음부터 부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보고, 아직 필요한 이유가 있는지 확인하고, 고쳐서 살릴 수 있는 것인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옳고 오래된 것은 언제나 틀렸다는 생각 역시 또 하나의 고집일 뿐이기 때문이다. 살릴 수 있다면 살리고, 정말 수명을 다했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걷어내고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것. 내가 바라는 강함은 그런 종류다.
그러나 늙어서 가장 먼저 떠올리고 싶은 것은 내가 바꾼 구조보다 사람일 것 같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친구와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결국 더 오래 남는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만들었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내 곁에서 늘 긴장해야 했다면 그것을 좋은 인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었고, 힘든 날 찾아갈 수 있었으며, 중요한 순간에 자리를 지켜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많은 것을 해낸 셈이라고 생각한다. 큰개가 존재하는 이유도 어쩌면 계속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사람들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에서도 비슷한 것을 남기고 싶다. 평생 내가 직접 움직여야만 유지되는 것을 만드는 데 그치고 싶지는 않다. 회사든 제품이든 시스템이든, 혹은 내가 함께 일했던 사람이든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나서도 잘 굴러갔으면 한다. 내가 없는데도 누군가의 일이 조금 편해지고, 내가 만든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고, 내가 세운 것이 다음 사람이 더 좋은 것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한 것보다 오래 남는 성과일 것이다. 좋은 구조는 만든 사람에게 영원히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든 사람이 물러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돈 역시 충분히 벌고 싶다. 돈이 삶의 최종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돈이 부족하면 원하지 않는 싸움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할 자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자유, 늙어서도 생존을 위해 계속 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될 자유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과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은 반드시 반대편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충분히 벌어두었기에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삶,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삶이 내가 원하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 편하게 쉬고 싶다. 젊을 때 열심히 움직였다는 이유로 평생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쉬는 순간마다 불안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면 결국 내가 만든 일에 내가 붙잡힌 셈이다. 잘 산다는 것은 많이 만들어내는 능력만큼이나 어느 순간에는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할 것이다.
그래서 아주 늙은 날의 모습을 가끔 상상해본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큰개 한 마리가 느긋하게 누워 있다. 주변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고, 젊었을 때 만들어놓은 것들도 이제는 굳이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간다. 여전히 세상에는 고칠 것이 많고 이상한 냄새도 풍기겠지만, 모든 냄새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잠깐 고개를 들어보고, 내가 나설 일이 아니라면 다시 편하게 눕는다.
그때 내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어야 할 것은 함부로 물지 않고 제대로 골라 물었다. 지켜야 할 사람은 끝까지 지켰다. 살릴 것은 살렸고, 바꿔야 할 것은 바꾸었으며, 내가 떠난 뒤에도 남아 있을 것을 몇 가지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시간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 아마 충분하다. 많이 이긴 큰개가 아니라, 지킬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큰개.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이 햇볕 아래 배를 보이고 편하게 누울 수 있는 큰개. 나는 그런 식으로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