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운더 블로그
·9분·에세이·조회

긍정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긍정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내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으며, 삶 전체가 당장 무너질 만큼 기반이 취약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떤 순간의 강도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생 전체가 불행했다는 말과, 삶의 방향을 뒤흔드는 시간을 지나왔다는

긍정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내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으며, 삶 전체가 당장 무너질 만큼 기반이 취약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떤 순간의 강도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생 전체가 불행했다는 말과, 삶의 방향을 뒤흔드는 시간을 지나왔다는 말은 서로 다르다. 나는 후자를 겪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돈이 없어서도, 일이 잘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믿는 순간이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내가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 몸과 삶에 관한 결정이 내려질 때였다.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내 판단이 무시되고,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이유로 내 선택권이 사라질 때, 사람은 단순히 기분이 상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언제나 올바른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 사람의 삶과 몸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라면, 걱정과 보호라는 말만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지워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은 그 사람을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자기 삶을 판단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탱하는 일이어야 한다.

당시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앞이 어둡게만 느껴질 때.

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야만 한다.

삶의 이유를.

무한한 가능성을.

분명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영향을,

분명히 사람은, 이를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다.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이 시작이다.

만약 더 상황이 낫다면,

두 다리와 두 손을 움직일 수 있다.

눈동자를 움직여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바꾸고,

두 다리와 두 손을 이용해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절대로 거짓과 비관에 속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거짓과 비관에 속으며,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주변이, 앞이 어둡게 보이면 보일수록,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눈동자를, 두 다리를, 두 손을.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 다시 읽으면 이 글의 핵심은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다”는 문장에 있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떤 공간에 머무르는지,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지, 어떤 평가를 반복해서 받아들이는지가 생각과 감정을 바꾼다. 계속해서 비관적인 말만 들으면 가능성이 작아 보이고, 누군가가 자신의 판단을 대신하는 환경에 오래 머물면 스스로 판단할 힘도 약해진다. 사람은 의지만으로 환경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환경이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더라도 시선을 옮길 수 있다.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내가 처한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선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만나는 사람과 머무르는 공간이 달라진다. 그렇게 환경이 바뀌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선택지도 생긴다. 거대한 변화는 때로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내가 말하는 긍정은 현실이 좋다고 믿는 태도가 아니다. 현실이 엉망인데도 괜찮다고 우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실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아직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찾는 태도다. 긍정은 어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비관은 자주 현실적인 태도로 포장된다. 안 될 이유를 말하는 사람은 냉정해 보이고,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은 순진해 보인다. 물론 근거 없는 낙관은 위험하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실수할 수 있고, 무리한 확신은 자신과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안 될 이유를 많이 말한다고 해서 현실을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가능한지는 예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움직이고, 결과를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면서 비로소 드러난다.

나는 이제 그 차이를 사업에서도 확인하고 있다. 누군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많은 돈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작은 사업자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회사가 돌아가려면 사람이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에는 과거의 조건에서 형성된 근거가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바뀌고, 도구가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기존의 전제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어제까지 어려웠던 일이 오늘도 불가능하다는 보장은 없다.

MAEUM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시스템이 사람의 삶을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고객은 반복되는 업무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사업자는 필요한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이용하며, 운영하는 사람도 끝없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회사는 계속 움직이지만 그 안의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구조, 기술이 사람을 더 바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구조다.

물론 이런 생각이 현실이 되려면 말보다 결과가 필요하다. 고객의 업무시간이 실제로 줄어드는지, 비용이 합리적인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만드는 사람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구조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긍정이 힘을 가지려면 설계가 필요하고, 설계가 현실이 되려면 실행과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내가 믿는 긍정은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작동하는 제품과 달라진 생활, 그리고 반복 가능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요즘은 지키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부모님이 있고,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고,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고객들이 있다.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내 삶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만드는 구조가 다른 사람의 삶까지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성공하고 싶다는 말도 전과는 조금 다른 뜻이 되었다. 단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각자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고 싶어서다.

잠깐 갑자기 눈물이 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과거가 비참해서가 아니다. 내 인생을 고난의 서사로 꾸미고 싶지 않다. 다만 한때는 눈동자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삶의 방향을 붙잡아야 했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미래를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조금 벅차게 느껴진다. 혼자만 믿고 밀어붙이던 가능성이 고객과 제품, 관계와 일상 속에서 현실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면, 그때의 감정은 단순한 자신감과 다르다.

나는 아직 세상이 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판단은 여전히 반복되고,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환경에서 오래 버티며, 제도와 관행은 때때로 사람의 삶보다 자신들의 익숙함을 먼저 지킨다. 그렇다고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말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지금의 방식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회사의 운영 방식도, 노동의 형태도, 사람을 대하는 제도도,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준도 결국 사람이 만들었고, 그렇다면 사람에 의해 다시 바뀔 수 있다.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눈동자를 움직일 수 있다. 시선을 바꾸고, 손과 발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제품을 만들고,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한 사람의 하루가 달라지고, 한 회사의 운영 방식이 달라지고, 같은 변화가 반복되면 처음에는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였던 일이 나중에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내가 믿는 긍정은 바로 그런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지 않는 태도가 아니라,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 직접 확인하는 태도다. 사람에게 상처가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어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태도다. 세상이 좋은 곳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움직이는 태도다.

그때는 살아가기 위해 눈동자를 움직였다. 이제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결국 긍정은 기분이 아니다.

긍정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다.

https://m.blog.naver.com/ldh_0826/223667988644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8월 25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L
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mail protected] 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