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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다 盡人事取天命 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를 확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감각내가 왜 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의 확장을 할 적임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단순하게 답할 수 있다.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나는 고향을 출생지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내가 태어난 곳은 분명 나의 뿌리다.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곳, 사람을

盡人事取天命

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를 확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감각내가 왜 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의 확장을 할 적임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단순하게 답할 수 있다.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나는 고향을 출생지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내가 태어난 곳은 분명 나의 뿌리다.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곳,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곳,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곳 역시 내게는 고향이다.서울에 있으면 서울이 내 삶의 현장이고,도쿄에 있으면 도쿄가 내 삶의 현장이고,뉴욕에 있으면 뉴욕이 내 삶의 현장이 된다.어디에 있든 나는 그곳을 잠시 머무르는 외국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지금 책임지고 살아가는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편이다.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어떤 사람은 자기 나라를 중심에 놓고 바깥을 바라본다.어떤 사람은 더 강한 나라로 이동하고 싶어 한다.어떤 사람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러 간다.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 한다.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나는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그곳을 내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그곳에 사는 사람이 하루에 세 시간을 의미 없는 반복업무에 쓰고 있다면, 그것은 남의 나라의 비효율이 아니다.내가 그곳에 있다면 내 문제다.작은 사업자가 하루 종일 예약 문자를 보내고, 견적서를 옮겨 적고, 고객 문의에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그 나라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내 눈앞에 있다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공장에서 사람이 기계가 할 일을 반복하고 있고, 사무실에서 사람이 프로그램 사이의 데이터를 옮기는 데 인생을 쓰고 있으며,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행정과 보고와 승인 때문에 자기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나는 먼저 이렇게 생각한다.왜 사람이 이것을 하고 있지?내가 생각하는 인공지능 인간해방은 여기서 시작한다.---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의 가치를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로 측정해왔다.몇 시간 일했는가.얼마나 많은 문서를 처리했는가.몇 통의 전화를 받았는가.얼마나 많은 보고서를 작성했는가.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가.산업사회에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 합리적이었다.생산량을 늘리려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일해야 했고, 많은 업무가 인간의 손을 반드시 필요로 했다.하지만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이 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문서를 읽을 수 있다.말을 이해할 수 있다.그림과 도면을 분석할 수 있다.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수많은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다.사람 대신 전화를 받을 수도 있고, 일정과 주문과 고객관계를 관리할 수도 있다.그러면 질문이 바뀐다.더 이상“AI가 사람의 일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만 물을 것이 아니다.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처음부터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는가?»나는 인간이 반복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간의 가치가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반대로 본다.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일에서 풀려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산업혁명은 인간의 근육을 기계에서 해방시켰다.자동차는 사람이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필요를 줄였고, 세탁기는 손으로 빨래해야 하는 시간을 없앴고, 계산기는 사람이 반복적인 계산에 써야 했던 시간을 줄였다.그 누구도 세탁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그 시간을 다른 곳에 쓰게 되었을 뿐이다.인공지능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다만 이번에는 근육이 아니라 인지 노동의 상당 부분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규모가 훨씬 크다.그래서 나는 지금의 변화를 단순한 AI 산업의 성장이라고 보지 않는다.인간이 자기 시간을 되찾는 시대의 시작이라고 본다.---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변화에는 국경을 넘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AI가 정말 인간해방의 도구라면, 그것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미국 사람만 반복노동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한국 사람만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일본의 작은 가게 주인도, 동남아시아의 제조업 노동자도, 유럽의 사무직 노동자도, 아프리카의 젊은 창업가도 같은 인간이다.사람에게 돌려줘야 할 시간에는 국적이 없다.그러나 기술은 아무 곳에나 그대로 꽂는다고 작동하지 않는다.이 지점이 중요하다.사람은 같지만 사회는 다르다.언어가 다르고,결제 방식이 다르고,회사 문화가 다르고,노동관계가 다르고,법률이 다르고,사업자가 고객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다르다.한국의 시스템을 일본에 그대로 가져간다고 일본인의 삶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미국에서 성공한 SaaS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한국 기업의 업무방식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진짜 확장은 복제가 아니다.그곳에 들어가 다시 이해하는 것이다.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무엇을 불편해하는가.왜 기존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가.누가 변화 때문에 손해를 보는가.누가 이 기술을 사용하면 더 자유로워지는가.어떤 문화적 문법을 건드리면 안 되는가.어느 부분은 바꾸고 어느 부분은 지켜야 하는가.이것을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그래서 나는 인공지능 인간해방의 확장에는 기술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한다.이 문장은 내가 어느 나라에도 애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오히려 반대다.한 곳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나는 어떤 사회에 들어가면서“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아?”라고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그곳에서 조금씩“우리는 왜 이렇게 일하고 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그들’이 ‘우리’로 바뀌는 것.나는 이것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에게 상당히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사람을 숫자로만 보면 시장이 보인다.사람을 삶으로 보면 사회가 보인다.그리고 사람의 시간을 자기 시간처럼 느끼기 시작하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가 보인다.하루에 두 시간을 불필요한 행정에 쓰는 사람 백만 명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생산성 손실이 아니다.매일 이백만 시간의 인간 생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그 시간을 줄이는 기술은 단순한 업무자동화 제품이 아니다.사람들에게 일부의 삶을 돌려주는 기술이다.나는 바로 이 관점에서 AI를 바라본다.---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은 회사 역시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사람이 하는 일을 관찰한다.불필요한 반복을 발견한다.프로세스를 다시 설계한다.기계가 해도 되는 일은 기계에게 넘긴다.그리고 인간에게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남긴다.판단하는 것.관계를 맺는 것.사랑하는 것.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호기심을 따라가는 것.사람을 이해하는 것.쉬는 것.여행하는 것.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친구와 긴 대화를 나누는 것.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 인간에게는 허용되어야 한다.생산성이 높아지는 목적은 인간을 더 빨리 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이제는 그만 뛰어도 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나는 그것을 인간해방이라고 부른다.---그러나 이것을 세계에 확장하려면 하나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자신이 가진 답이 보편적인 답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역사에서 수많은 제국과 기업과 사상은 자신들이 가진 질서를 다른 사회에 그대로 가져가려 했다.그 과정에서 현지의 삶은 종종 사라졌다.그래서 나는 인간해방을 말하면서 동시에 지역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표준화된 감옥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AI가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해방은 아니다.오히려 반대다.기술이 반복적인 일을 가져가고 나면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여지가 더 커져야 한다.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답게.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답게.어떤 작은 마을은 그 마을답게.그리고 한 사람은 그 사람답게.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해방의 최종 목적은 생산성 그 자체가 아니다.다양하게 살 수 있는 자유다.---이 지점에서“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다.”라는 문장이 다시 중요해진다.고향이라고 생각하면 행동이 달라진다.여행자는 불편하면 떠나면 된다.투자자는 수익이 떨어지면 자본을 빼면 된다.정복자는 필요한 것을 가져가면 된다.하지만 고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도로가 이상하면 고치려고 하고,가게가 망하면 아쉬워하고,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이유를 생각한다.그곳이 잘되기를 바라게 된다.그래서 나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다.점점 넓어지는 고향으로 바라보고 싶다.오늘 내가 살아가는 곳이 내 고향이고,내일 새로운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을 시작한다면 그곳 역시 내 고향이 된다.그곳에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그곳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의 확장을 하나의 국가가 세계에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느 나라가 중심이고 어느 나라가 주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기술은 여러 곳에서 만들어질 것이다.미국에서 모델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한국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일본에서 새로운 로봇이 등장할 수도 있고,중국에서 새로운 제조시스템이 나올 수도 있고,우리가 아직 주목하지 않는 도시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회사가 탄생할 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출처가 아니다.그 기술이 인간의 삶을 실제로 더 자유롭게 만드는가.나는 그 기준으로 기술을 보고 싶다.OpenAI든,Anthropic이든,Google이든,어느 작은 연구실에서 나온 모델이든,필요하다면 사용한다.그리고 필요 없으면 바꾼다.기술은 목적이 아니다.인간이 목적이다.---그래서 내가 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의 확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가장 뛰어난 AI 연구자이기 때문이 아니다.모든 나라를 알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오히려 훨씬 단순하다.나는 어디에 가든 다시 배울 수 있다.그곳의 사람을 만나고,그곳의 일을 보고,그곳의 언어를 배우고,그곳의 문제를 이해하고,그곳 사람들과 함께 시스템을 다시 만들 수 있다.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한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남의 나라가 아니다.내가 책임져야 하는 세계의 일부가 된다.---인공지능 인간해방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선언되어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수많은 작은 현장에서 시작될 것이다.어느 작은 회사의 사장이 매일 밤 하던 정산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순간.한 직원이 매주 작성하던 의미 없는 보고서가 사라지는 순간.한 교사가 행정 대신 학생과 이야기할 시간을 얻는 순간.한 의사가 컴퓨터 화면 대신 환자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한 부모가 야근 대신 집에 일찍 돌아갈 수 있게 되는 순간.한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했던 반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순간.그 수많은 순간이 누적되면 우리는 어느 날 뒤를 돌아보고 알게 될 것이다.우리가 이미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나는 그 변화가 특정 도시에서만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특정 계층만 누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그 변화가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다.그곳의 언어로 듣고,그곳의 방식으로 이해하고,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왜냐하면 나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나는 반대로,가는 곳마다 돌아온 사람처럼 살고 싶다.그래서 나는 말한다.나는 내가 있는 곳이 고향이다.그리고 인간해방의 시대가 정말 세계로 확장된다면, 그것 역시 이런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하나의 중심에서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수많은 장소 안으로 들어가그곳을 자기 고향처럼 대하는 사람들이하나씩 인간의 시간을 되찾아주는 것.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확장이다.세계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세계가 점점 고향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브런치 · 2026년 8월 29일에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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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Lee의 청사진
Founder, MAEUM.io · 기술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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