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마다 다른 사람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
2016년 봄, 자퇴 이후의 지옥에서 첫 600만 원 매출까지 | 나는 1년마다 다른 사람이었다2016년 봄, 자퇴 이후의 지옥에서 첫 600만 원 매출까지지금의 나만 보고 과거를 거꾸로 설명하면 내 인생은 상당 부분 거짓말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고,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남들보다 일찍 발견해 오랫동안 준비했던 사람도 아니었으며, 회계사가 평생의 꿈이라 CPA를 공부한 사람
나는 1년마다 다른 사람이었다
2016년 봄, 자퇴 이후의 지옥에서 첫 600만 원 매출까지
지금의 나만 보고 과거를 거꾸로 설명하면 내 인생은 상당 부분 거짓말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고,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남들보다 일찍 발견해 오랫동안 준비했던 사람도 아니었으며, 회계사가 평생의 꿈이라 CPA를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AI를 처음 실제로 사용한 것은 2025년 3월이고, CPA를 준비했던 이유에 대해 내가 지금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답은 돈이다. 당시의 내 자기평가는 단순했다. 돈을 빼면 나는 스스로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내가 완벽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당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본인 직접 진술〕
그래서 내 지난 10년을 하나의 목표를 향한 성장서사로 만들면 안 된다. 실제로는 그때그때 전혀 다른 세계가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세계에서는 시험을 봤고, 어느 세계에서는 대학생으로 놀았고, 어느 세계에서는 독서실에 틀어박혀 CPA를 공부했고, 어느 날 처음 AI를 사용했고, 몇 달 뒤에는 사업자를 냈고, 다시 몇 달 뒤에는 고객에게 600만 원을 받았다. 목적은 계속 달라졌고 내가 나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도 계속 바뀌었다. 그런데 그 변화들 아래에서 이상할 정도로 오래 유지된 생활의 리듬이 하나 있었다. 자퇴 뒤 약 1년의 지옥을 지나고 나서는, 그냥 일어나면 씻고 나갔다. 〔본인 직접 진술·해석〕
시작은 2016년 봄이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본인 직접 진술〕 지금의 나를 알고 이 장면을 보면 “기존 질서에서 일찍 탈출한 사람”, “남들이 정한 경로를 거부한 사람”, 심지어 “창업가적 독립성이 처음 나타난 사건” 같은 설명을 붙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후적인 이야기다. 당시 내가 지금의 사업을 구상했다는 근거도 없고 AI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근거도 없다. 더구나 시기적으로도 2016년 봄의 자퇴를 그해 하반기 한국의 정치적 격변에 대한 반응처럼 읽을 수도 없다. 헌법재판소가 정리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의 배경을 보면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보도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2016년 7월경, 최순실의 국정개입 관련 핵심 보도는 10월 24일이었고, 실제 파면 결정은 2017년 3월 10일이었다. 즉 내가 학교를 나온 것은 그 사건들이 본격화되기 전이다. 그러므로 자퇴에 지금의 정치적·사업적 세계관을 소급해 붙이는 것은 근거가 없다. 〔해석〕
그리고 자퇴 다음에 자유가 온 것도 아니다. 이것이 내 연대기에서 가장 먼저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할 부분이다. 자퇴 뒤 약 1년 동안 나는 집에 누워 있었다. 그 시절은 지금 기억도 거의 없다. 나는 그 시기를 “힘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옥 같았다”고도 하지 않는다. 지옥이었다. 왜 그것이 지옥이었는지에 대해 내가 여기서 말하지 않은 원인이나 심리를 뒤에서 만들어 붙일 필요도 없다. 현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자퇴 뒤 약 1년을 집에 누워 보냈다는 것, 그 시간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시간을 지옥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본인 직접 진술〕 공교롭게도 그 지옥의 후반부와 겹쳐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회가 2016년 12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기의 한국 사회가 겪던 사건이고, 내 개인적 지옥의 원인이라고 연결할 근거는 없다. 둘은 같은 시간에 존재했을 뿐이다. 〔해석상의 제한〕
그 약 1년이 지나고부터 내 생활에서 이상할 정도로 단순한 패턴이 시작됐다. 내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오늘부터 인생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는 기억은 없다. “다시는 침대에 누워 있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이야기도 내가 한 적이 없다. 그런 영웅서사를 만들면 오히려 실제에서 멀어진다. 그냥 어느 시점부터 일어나면 씻고 나갔다. 〔본인 직접 진술〕 이것은 2022년과 2023년에 대학생활을 재미있게 했기 때문에 생긴 습관도 아니었다. 훨씬 이전부터 이어진 생활의 기본값이었다. 이후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계속 달라졌지만, 아침의 첫 동작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일어나고, 씻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러므로 이 시기 이후 내 인생의 연속성을 굳이 하나 찾는다면 “한 목표를 10년 동안 밀어붙였다”가 아니라 목표가 없어도 일단 하루 안으로 들어갔다는 데 더 가깝다. 〔본인 직접 진술·해석〕
그 뒤 나는 다시 입시라는 아주 전통적인 한국의 게임으로 들어갔다. 자퇴했다고 해서 시험도 대학도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수능을 준비했고, 2019년에 2020학년도 수능을 치렀다. 국어 2등급, 영어 1등급, 수학 1등급, 세계사 1등급을 받았고 세계사는 만점이었다. 동아시아사는 3등급이었다. 이후 중앙대학교 경영학과에 논술전형으로 진학했다. 〔본인 직접 진술〕 이 사실은 내 자퇴를 “제도에 대한 영구적인 거부”라고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필요하면 나는 다시 시험을 봤고, 필요하면 대학에도 들어갔다. 내가 싫었던 것이 모든 제도였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실제 행동만 보면 나는 제도의 바깥에 영원히 머무르기보다, 그때 필요하다고 본 게임에 다시 들어가는 쪽이었다. 〔해석〕
그리고 2020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하필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멈췄다. 2020년 3월 교육부는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면서 대학들이 원격수업을 폭넓게 운영할 수 있도록 1학기 원격수업 규제를 완화했고, 대학이 원격수업 교과목과 콘텐츠 구성 등을 자체 편성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같은 달 코로나19 상황에서 교실수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대비해 체계적인 원격수업 운영 기준까지 마련했다. 그러므로 내가 대학에 들어간 2020년은 평범한 신입생이 캠퍼스에 들어간 해와 조건 자체가 달랐다. 대학생은 되었지만 내가 나중에 경험하게 될 대면 중심의 대학생활은 곧바로 열리지 않았다. 〔본인 직접 진술 + 공적 자료〕
여기서도 지금의 나를 2020년의 나에게 넣으면 안 된다. 그때의 나는 사업가가 아니었다. CPA 수험생도 아니었고, AI를 사용한 적도 없었다. 〔본인 직접 진술〕 지금처럼 기업의 생산구조를 보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묘사할 근거도 없다. 2020년의 나는 코로나 속에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었다. 그리고 2021년을 지나면서 그 막혀 있던 생활이 서서히 다른 모양을 갖기 시작했다. 내 개인사에서 분명한 날짜 하나가 있다. 2021년 10월, 나는 처음 연애를 했다. 〔본인 직접 진술〕 이 시점 전후부터 사람과 관계가 내 대학생활 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2021년 하반기를 지나 2022년과 2023년으로 가면서 나는 대학생활을 정말 많이 즐겼다. 〔본인 직접 진술〕
첫 연애는 2022년 4~5월쯤 끝났다. 〔본인 직접 진술〕 그런데 거의 정확히 그 무렵 한국 사회의 코로나 생활규칙도 크게 바뀌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 4월 18일부터 운영시간, 사적모임, 행사·집회 등에 적용되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약 2년 1개월 만에 해제했다. 이것이 내가 대학생활을 즐긴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2022~2023년을 대면으로 사람을 만나며 대학생활을 아주 많이 즐긴 시기로 기억한다는 사실과, 한국 사회가 2022년 봄부터 실제로 대면활동의 제약을 크게 걷어냈다는 사실은 시간상 정확히 맞물린다. 〔본인 직접 진술 + 공적 자료 + 제한적 해석〕
2022년과 2023년의 나를 지금의 언어로 거창하게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미래의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네트워크를 쌓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AI 시대를 대비해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의 인구구조와 산업 생산성을 분석하며 하루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냥 대학생활을 존나 재미있게 했다. 〔본인 직접 진술〕 사람을 만났고, 놀았고, 학교에 갔고, 약속이 있으면 나갔고, 하루가 끝나면 돌아왔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면 씻고 나갔다. 2023년 말까지 그렇게 정말 많이 놀았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본인 직접 진술〕 이 시기의 의미를 굳이 지금 붙인다면 “미래를 준비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현재로 살았던 시간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지금 돌아보며 붙이는 해석일 뿐이다. 〔해석〕
그런데 바깥의 한국 사회는 그 사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2022년 한국의 총인구는 5,163만 명으로, 통계청은 총인구가 2020년 5,184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고 정리했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당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였고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5%였다. 2023년 청년층 행정통계를 보면 15~39세 청년층 인구는 전년보다 29만1천 명 감소했고, 소득이 있는 청년층의 연평균 근로·사업소득은 2,950만 원, 주택소유 비율은 11.5%였다. 이런 수치는 당시 한국 청년의 경제적 환경을 설명하는 배경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2022~2023년의 내가 매일 그런 통계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시기를 즐겁게 보냈다고 명확하게 기억한다. 〔본인 직접 진술 + 시대배경과 개인경험의 구분〕
그리고 2023년이 끝났다. 여기서 내 연대기의 분위기가 거의 칼로 자른 것처럼 바뀐다. 2024년 나는 광주 본가로 내려갔고, 독서실에서 KICPA 공부만 했다. 〔본인 직접 진술〕 바로 전해까지 사람을 만나고 대학생활을 아주 재미있게 하던 사람이 다음 해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회계학, 세법, 재무관리, 경제학과 문제풀이에 썼다. 〔본인 직접 진술〕 이 변화를 “점점 철이 들어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완만하게 쓰고 싶지 않다. 내 기억에서 2023년과 2024년은 그냥 생활의 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행동의 뼈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3년에도 일어나면 씻고 나갔고, 2024년에도 일어나면 씻고 나갔다. 단지 2023년에 밖에서 기다리던 것이 학교와 사람이었다면, 2024년에는 독서실과 CPA 책이었다. 〔본인 직접 진술·해석〕
그리고 왜 CPA였는지를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나는 회계사가 나의 운명이라고 느껴 시험을 준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해서도 아니었다. 돈이었다. 당시 나는 돈을 제외하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인간 평가가 아니라 당시의 자기인식이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가 되어야 비로소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느꼈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이미 크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봤고 현실적으로 없는 자원이 돈이라고 판단했다. 〔본인 직접 진술〕 따라서 당시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기보다 “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가까웠다. 〔해석〕 CPA는 그 질문에 대해 2024년의 내가 선택한 구체적인 답이었다. 시험을 통과해 전문직 자격을 얻고, 희소성이 있는 노동을 제공하고, 높은 소득을 만드는 경로였다. 〔본인 직접 진술 + 경제적 구조에 대한 해석〕
특히 중요한 것은 2024년의 나를 AI 전환의 전야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절대 쓰면 안 된다는 점이다. 나는 2024년에 AI를 실제로 사용한 적이 없다. 〔본인 직접 진술〕 세계에서는 이미 ChatGPT가 2022년 11월 30일 공개되어 있었지만, 내가 처음 AI를 사용한 것은 그로부터 약 2년 3~4개월 뒤인 2025년 3월이다. 〔본인 직접 진술 + 공개일 기준 계산〕 따라서 나는 생성형 AI의 초창기부터 기술을 추적한 얼리어답터가 아니다. ChatGPT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빠르게 확산되는 동안, 2024년의 나는 광주의 독서실에서 CPA를 공부하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다. 〔본인 직접 진술 + OpenAI 공개일〕
2025년 봄 나는 다시 학교로 복학했다. 막학기를 다니며 졸업요건을 채웠고, 그 복학 시기인 2025년 3월에 처음 AI를 사용했다. 〔본인 직접 진술〕 이 장면부터 현재와의 시간적 거리가 갑자기 짧아진다. 2024년 12월까지의 나는 CPA 독서실에 있던 사람이고, 2025년 3월에는 이제 막 AI를 처음 만난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해 8월에는 학교에서 필요한 학업을 사실상 모두 마쳤고, 2025년 9월 사업자등록을 했다. 〔본인 직접 진술〕 AI를 처음 사용한 뒤 사업자가 되기까지 대략 반 년이다. 이것은 몇 년 동안 AI 제품을 연구해 창업한 사람의 시간표가 아니다. 실제 날짜가 그렇다. 〔날짜에 근거한 해석〕
이때 한국 사회에서도 AI는 이미 “신기한 챗봇”에서 산업의 도구로 이동하고 있었다. 정부는 2025년을 전후해 산업과 공공부문 전반으로 AI 도입을 확대하는 국가 차원의 AI 전환 정책을 추진했고, 이후 2026년 업무계획에서는 지역 산업을 대상으로 한 AX 사업과 제조·물류·조선 등에서의 Physical AI 확산까지 명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가 국가 정책을 미리 읽고 사업에 들어갔다”는 증거는 아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훨씬 단순하다. 나는 2025년 3월에 AI를 처음 사용했고, 그 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을 빠르게 경험했다. 〔본인 직접 진술〕 시대와 개인의 방향이 결과적으로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는 것과, 개인이 그 시대를 예측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해석상의 제한〕
AI가 내게 중요했던 이유는 2024년에 내가 풀려고 했던 문제와 연결해서 보면 더 분명하다. 2024년의 해답은 “내 노동의 가격을 올린다”였다. CPA 시험을 통과하고 자격을 얻고, 시장에서 희소한 전문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받는 구조다. 〔본인 동기 + 경제적 해석〕 그런데 AI를 사용하면서 내가 생각한 생산의 범위가 달라졌다. 내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한 번 만든 것이 반복해서 작동할 수 있고, 예전에는 여러 사람과 더 많은 자본이 필요했을 것 같은 일을 한 사람이 훨씬 빠르게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다. 〔본인 직접 진술〕 그러면 같은 “돈”이라는 문제를 풀더라도 해법은 달라질 수 있었다. 내 노동시간을 비싸게 파는 대신, 가치가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CPA를 포기하면서 돈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돈이라는 문제에 대해 더 다른 답을 발견했다는 해석에 가깝다. 〔해석〕
2025년 8월에는 대학에서의 학업을 실질적으로 마쳤다. 〔본인 직접 진술〕 행정적으로는 졸업유예가 남아 있었지만 내가 말하는 실질적인 졸업 시점은 2025년 8월이다. 〔본인 직접 진술〕 그리고 한 달 뒤인 9월 사업자를 냈다. 〔본인 직접 진술〕 이 순서를 그대로 놓으면 꽤 이상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2023년 말까지는 대학생활을 정말 많이 즐겼다. 2024년에는 광주 독서실에서 CPA만 공부했다. 2025년 3월에 처음 AI를 썼다. 같은 해 봄 막학기를 다녔고, 8월 학업을 마쳤고, 9월 사업자가 됐다. 〔본인 직접 진술〕 이것을 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경력개발 단계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매해 다른 버전이 연속해서 교체됐다고 표현하는 편이 실제 연대기에 더 가깝다. 〔해석〕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시기의 한국 경제도 폭발적인 호황은 아니었다. 한국은행의 현재 확정에 가까운 2025년 연간 국민계정 잠정치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1.1%였다. 2025년 5월 기준 15~29세 청년 인구는 전년보다 20만 명 줄었고 청년 고용률도 전년보다 0.7%포인트 하락한 46.2%였다. 그러므로 내가 사업자를 낸 시기를 “한국 내수가 강하게 팽창하고 청년에게 기회가 넘치던 시기”라고 설명할 객관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저성장과 청년인구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던 경제였다. 〔공적 자료에 근거한 해석〕 이 배경은 훗날 내가 사람을 계속 늘리는 방식보다 소프트웨어와 자동화로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환경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이것 역시 처음부터 그런 거시경제 분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뜻은 아니다. 〔해석상의 제한〕
2026년 2월에는 졸업유예가 끝났고 졸업식과 함께 중앙대학교 경영학과를 공식적으로 졸업했다. 〔본인 직접 진술〕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20년에는 교육부가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의 원격수업 규칙을 긴급하게 바꾸고 있었고, 내가 대학을 공식적으로 나오는 2026년에는 정부 정책의 언어 자체가 이미 산업 전반의 AI Transformation, AX로 바뀌어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2026년 업무계획에서 4개 권역의 산업 AX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하겠다고 명시했다. 입학과 졸업 사이가 단 6년이지만, 내가 들어갈 때의 대학과 나올 때의 산업환경은 같은 기술적 세계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공적 자료에 근거한 해석〕
그리고 공식 졸업 두 달 뒤인 2026년 4월, 첫 고객에게서 600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본인 직접 진술〕 이 장면은 내 개인 연대기에서 중요하다. 사업자등록증을 내는 것과 실제 고객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 사업 해석〕 누군가에게 실제 문제가 있었고, 내가 제공하는 해결에 가격이 붙었고, 그 결과 600만 원이라는 매출이 발생했다. 〔본인 직접 진술 + 해석〕 무엇보다 2024년과 나란히 놓으면 대비가 선명하다. 2024년의 나는 돈을 만들기 위해 CPA를 공부하고 있었다. 2026년 4월의 나는 CPA 자격으로 받은 월급이 아니라 내 사업의 고객에게서 600만 원을 받았다. 〔본인 직접 진술〕 질문은 여전히 돈이었다. 그런데 답이 달라졌다. 〔해석〕
이후 내가 보게 된 문제의 크기도 달라졌다. 나는 2025년에 AI 코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실제 고객의 업무흐름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본인 직접 진술〕 견적, 수주, 현장관리, 발주, 정산, CRM, 예약, 데이터 처리처럼 기업이 실제로 매일 반복하는 일이 작업 대상이 됐다. 〔본인 직접 진술〕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이 왜 같은 숫자를 여러 번 옮기는지, 왜 회사가 커질수록 전달과 관리가 늘어나는지, 무엇을 사람이 해야 하고 무엇을 소프트웨어에 넘겨야 하는지 같은 질문으로 관심이 커졌다. 〔본인 직접 진술〕 그리고 2026년 현재 한국 정부 역시 제조·물류·조선 등 실제 산업을 AI로 전환하는 Physical AI와 산업 AX를 정책 과제로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정부 정책을 따라 사업을 설계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고객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가 한국 사회가 국가 차원에서 AX라고 부르기 시작한 문제와 같은 시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해석〕
이렇게 2016년 봄부터 2026년까지 그대로 놓고 보면,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직업이나 하나의 목표를 찾기는 어렵다. 2016년에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 뒤 약 1년은 집에 누워 있었고 기억도 거의 없다. 지옥이었다. 그 뒤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수능을 준비해 중앙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2020년에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코로나를 만났다. 2021년 10월에는 처음 연애했다. 2022년 4~5월에는 처음 헤어졌다. 2022년과 2023년에는 대학생활을 존나 재미있게 했다. 2024년에는 광주로 내려가 독서실에서 CPA만 공부했다. 그 이유는 돈이었다. 2025년 3월에 처음 AI를 썼다. 봄에는 막학기에 복학해 졸업요건을 채웠다. 8월에는 학업을 실질적으로 끝냈다. 9월에는 사업자를 냈다. 2026년 2월에는 공식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4월에는 첫 고객에게서 600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이 문단의 개인사 전체는 내가 직접 제시한 연대기다. 〔본인 직접 진술〕
그래서 “나는 1년마다 다른 사람이었다”는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2023년의 나는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대학생활을 즐기던 사람이었고, 몇 달 뒤 2024년의 나는 광주에서 CPA 문제를 풀었다. 2025년 3월에는 생전 처음 AI를 사용했고, 약 반 년 뒤에는 사업자가 됐다. 다시 약 7개월 뒤에는 첫 고객에게서 600만 원을 받았다. 〔본인 직접 진술 + 날짜 계산〕 2024년의 나에게 2026년의 직업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넣으면 틀리고, 2022년의 나에게 2024년의 목적을 넣어도 틀린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미완성품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세계를 살았다. 〔해석〕
하지만 완전히 끊어진 사람들의 연속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상할 정도로 단순한 하나가 남는다. 2016년 봄 자퇴 뒤 약 1년의 지옥을 지나고부터는 그냥 일어나면 씻고 나갔다. 〔본인 직접 진술〕 입시를 할 때도 나갔다. 대학생일 때도 나갔다. 연애할 때도 나갔다. 헤어진 뒤에도 나갔다. 2022년과 2023년에 존나 놀 때도 나갔다. 2024년에는 독서실로 나갔다. 2025년에는 다시 학교로 나갔고, 그해 처음 AI를 만났다. 사업자가 된 뒤에는 사업의 세계로 나갔고, 2026년에는 고객에게서 실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인 직접 진술〕
그러니 내 삶의 연속성을 목표에서 찾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회계사를 향해 10년 달려온 것도 아니고, 창업을 향해 10년 달려온 것도 아니고, AI를 향해 10년 달려온 것도 아니다.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때 밖에 무엇이 있었느냐가 계속 달라졌다. 〔해석: 전체 개인 연대기에 근거〕 2018년의 밖에는 입시가 있었고, 2022년의 밖에는 사람이 있었고, 2024년의 밖에는 독서실이 있었고, 2025년의 밖에는 AI가 있었고, 2026년의 밖에는 고객과 회사가 있었다. 정확한 연도별 경계가 명시되지 않은 입시 초기 구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장면은 내가 직접 제시한 날짜와 사건에 근거한다. 〔본인 직접 진술·범위 제한〕
그리고 그 10년 동안 한국 역시 한 사회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자퇴한 2016년 봄 몇 달 뒤에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위기가 시작됐고 2017년 3월 대통령이 파면됐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의 수업방식 자체가 원격으로 바뀌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본격적으로 즐기던 2022년 봄에는 약 2년 1개월간 이어진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됐다. 같은 해 한국은 총인구 감소와 0.78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생으로 놀고 있던 2022년 11월 30일에는 ChatGPT가 세상에 공개됐지만, 나는 그것을 바로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다음 해에도 대학생활을 했고, 2024년에는 AI가 아니라 CPA를 공부했다. 2025년 3월이 되어서야 처음 AI를 직접 사용했다. 〔본인 직접 진술〕 그리고 내가 대학을 공식적으로 졸업한 2026년에는 한국 정부가 산업 전체의 AI 전환을 AX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 변화의 속도를 순전히 개인의 의지로만 설명하는 것도, 순전히 시대가 밀어붙인 결과로 설명하는 것도 둘 다 부족하다. 시대는 계속 다른 문을 만들었지만 그 문을 모두 내가 미리 알고 기다린 것은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제로 만나고 나서 들어갔다. 〔해석〕 특히 AI가 그렇다. ChatGPT 공개 후 약 2년 3~4개월 동안 나는 AI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사이 대학생활을 했으며 CPA를 공부했다. 〔본인 직접 진술 + 공개일 계산〕 그런데 2025년 3월 처음 사용한 뒤 약 반 년 만에 사업자를 냈고, 다시 약 7개월 뒤 첫 600만 원 고객 매출이 발생했다. 〔본인 직접 진술 + 날짜 계산〕 내 특징이 있다면 모든 변화를 일찍 예언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앞에 나타난 변화가 유효하다고 판단했을 때 이전의 나를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답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해석〕
2016년의 나는 지옥에 있었다. 2022년의 나는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2024년의 나는 돈을 위해 CPA를 공부했다. 2025년의 나는 처음 AI를 만났다. 2026년의 나는 고객의 회사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고 있다. 〔본인 직접 진술〕 서로를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의 아름다운 복선으로 묶고 싶지 않다. 인생 전체가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설계돼 있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더 단순하다.
2016년 봄에 학교를 나왔다. 그 뒤 약 1년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그냥 일어나면 씻고 나갔다.
그 뒤로 내가 나갈 때마다 밖에 있는 세계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도 같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