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 성공한다
성공한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 성공한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말을 조심해야 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고, 괜히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한다. 회사가 커지면 더욱 그렇다. 직원이 생기고, 고객이 생기고, 이름이 알려지면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대표가 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 성공한다
사람들은 성공하면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말을 조심해야 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고,
괜히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한다.
회사가 커지면 더욱 그렇다.
직원이 생기고, 고객이 생기고, 이름이 알려지면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대표가 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고 성공하는 건가?
나는 글을 자주 쓴다.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브런치에 쓴다.
그래도 지금은 꽤 정제해서 올리는 편이다.
논리를 다듬고,
근거를 확인하고,
문장을 고치고,
너무 거친 표현은 걷어낸다.
그리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성공하면 더 조심해야겠지.
회사가 커지고 내가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말 한마디의 비용도 커질 테니까.
그런데 일론 머스크의 X를 보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 사람은 나보다 비교도 안 되게 성공했다.
가진 회사도 크고, 자산도 많고, 영향력도 크다.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된다.
그런데 X에서는 별걸 다 쓴다.
자기 생각을 던지고,
농담하고,
밈을 올리고,
한두 단어만 쓰고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브런치 글 하나를 정제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가 중 한 명은 인터넷에 똥글을 쓰고 있다.
웃겼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게 단순히 웃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성공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통 성공을 이렇게 생각한다.
성공하면 가진 것이 많아진다.
가진 것이 많아지면 잃을 것도 많아진다.
잃을 것이 많아지면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성공할수록 자유는 줄어든다.
논리적으로 그럴듯하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 방향도 가능하다.
성공하면 남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줄어든다.
돈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도 줄어든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해야 할 필요도 줄어든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 공식에 맞출 필요도 줄어든다.
그러면 성공할수록 자유가 늘어난다.
성공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이 존재한다.
성공해서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는 방향.
그리고 성공해서 더 이상 허락받을 필요가 없어지는 방향.
나는 가능하면 두 번째 방향으로 가고 싶다.
생각해보면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도 결국 비슷하다.
좋은 차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비싼 옷을 입기 위해서도 아니다.
사람들에게 성공했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더욱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선택권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선택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선택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갈 선택권.
실패할 선택권.
다시 시작할 선택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선택권.
그것을 얻기 위해 성공했는데,
성공한 다음부터
“이제 성공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라는 새로운 규칙에 들어가야 한다면 조금 이상하다.
가난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서
체면이라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물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말과 행동의 결과도 커진다.
틀린 사실을 퍼뜨렸다면 고쳐야 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책임과 얽매임은 다르다.
책임은 내가 선택한 행동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다.
얽매임은 선택하기도 전에
“그런 사람은 원래 그렇게 하면 안 돼.”
라는 이유로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나는 전자는 받아들일 수 있다.
후자는 별로다.
어쩌면 성공의 가장 위험한 함정은 실패가 아닐지도 모른다.
성공하고 나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번다.
그런데 돈을 벌고 나면 체면을 지켜야 한다.
체면을 지키다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오래 연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돈은 예전보다 많아졌는데
할 수 있는 행동은 오히려 줄어든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행동의 자유도는 낮아진다.
나는 이것을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성공의 기준을 이렇게 잡아볼 수도 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늘어났는가.
돈도 그 선택지를 늘리는 수단이다.
기술도 그렇다.
지식도 그렇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회사를 만드는 것도 결국 내가 세상에 행사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성공은 단순히 숫자가 커지는 과정이 아니다.
가능한 행동의 공간이 넓어지는 과정이다.
이 관점에서는 성공했는데 더 많은 것에 얽매이는 것이 꽤 이상해진다.
자산은 늘었는데 자유도가 줄었다면,
정말 성공한 것인가?
그래서 나중의 내가 지금보다 유명해진다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더 조심스럽게 글을 쓸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보다 훨씬 막 쓸 수도 있다.
오늘은 긴 글을 쓰고,
내일은 한 문장만 쓸 수도 있다.
어느 날에는 꽤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에는 별 의미 없는 농담을 올릴 수도 있다.
생각이 바뀌면 그냥 이렇게 쓸 수도 있다.
“어제 생각 틀렸음.”
끝.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틀릴 자유가 있고 고칠 자유가 있는 사람.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는 사람.
어쩌면 진짜 성공은
더 좋은 감옥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다.
돈의 감옥에서 나왔더니 명예의 감옥이 있고,
명예의 감옥에서 나왔더니 체면의 감옥이 있고,
체면의 감옥에서 나왔더니
“성공한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면,
끝까지 나가면 된다.
그래서 나는 성공하고 싶다.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성공한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아주 진지한 글을 하나 쓴 다음
다음 날에는 별 의미 없는 똥글 하나를 올리고 싶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허락받을 필요가 없으니까.